
김경민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
난사(南沙)군도의 산호초를 둘러싼 영유권 다툼이 본격화된 것은 1968년부터다. 유엔 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난사군도의 얕은 해저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량 묻혀 있다고 발표한 후 중국·베트남·필리핀 등 국가들이 영유권 확보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중국 남단 하이난(海南)섬으로부터 960㎞나 멀리 떨어진 난사군도를 공략하기 위한 해·공군력이 부족했던 중국은 460㎞ 하단의 중간지점에 있던 베트남 소유의 시사(西沙)군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74년 1 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14년에 걸친 공사 끝에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2600m의 활주로와 4000t급의 군함이 정박할 수 있는 부두를 건설해 중간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 사실은 88년 중국 외교부장을 지냈던 첸치천(錢其琛)이 공식 확인한 바 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도 93년 8월 4일 1면 기사에 일본의 해양관측위성 ‘모모-b’가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해 시사군도의 실체를 공식 보도했다. 그 후 중국은 속도를 높여 난사군도의 산호초에 군사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영서초에 3125m의 활주로와 위성통신시설을 건설하고 있고 미스치프 환초에도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장악하기 위한 중국의 확고한 의지는 40여 년에 걸쳐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해양패권 다툼은 현재진행형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 예측에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 받은 중국이 첨단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이에 맞서 미국도 해군력 60%를 태평양에 집중시킬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니미츠급 항공모함 10척 가운데 6척이 태평양에 배치된 것도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를 방증한다. 요코스카항에 배치된 로널드 레이건 항모는 건조 순서로 볼 때 10척 중 두 번째의 최신예 함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젖줄이나 다름없는 해상수송로에 문제가 생긴다면 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경제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대립하는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안보형국을 타개하기 위해 관련국들과 긴밀한 외교 협의를 해야 한다. 초강대국 G2인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일이라고 손을 놓고 방관할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고 치밀하게 다루겠다는 외교 의지부터 다져야 한다.
둘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인 한국은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고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중국과 대립할 때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불필요한 물음이지만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면 “한국의 평화와 안보, 그리고 경제 번영의 최고 정점에 주한미군이 있다”는 말로 대답하면 될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 증명하듯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강력한 억지 수단이었고, 동북아의 군사적 균형자로서 분명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이 미국의 확고한 군사동맹이라는 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처럼 미군 철수라는 카드도 던질 수 있는 게 미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한국이 해상수송로를 자주적으로 지킬 수 있는 해군력을 갖추어야 한다. 북한은 한국에 대항해 재래식무기보다 돈이 덜 드는 비대칭전력에 집중해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도 군사력이 월등한 주변국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비대칭전력인 잠수함을 집중적으로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3000t급 이상의 잠수함에 주력해 동중국해를 넘어 남중국해에 이르는 해상수송로의 물길을 손금 보듯 파악해 나가야 한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군사력을 급속히 증강시키고 있지만 미국이 느긋한 이유는 잠수함 전력 때문이다. 항행의 자유를 한국 스스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해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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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