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23 11:58 | 수정 : 2015.11.23 14:04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飮水思源(음수사원).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를 깊이 애도하면서”라고 적었다.
음수사원이란 물을 마실 때 수원(水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갈증을 해소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근본인 우물을 누가 팠는지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음수사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이기도 하다.
이 전 총재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호인 ‘거산(巨山)’ 만큼 거대한 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음수사원’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생활화돼서 공기처럼 민주주의가 존재한다”며 “민주주의에 오기까지의 많은 족적을 잊기 쉽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은 (민주화) 주역 역할을 한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에 기여한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조문을 하면서 상주 자리에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도 여러 대화를 나눴다. 이 전 총재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오면 기싸움한 얘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며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 서로 기싸움을 하신 모양인데 꽉 눌러줬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생을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사신 양반이다. 일생을 풍미했다"며 "여러가지 곡절이 있지만 호(號) 그대로 거대한 정치를 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는 김 전 대통령이 발굴해 대선에 도전했던 인물.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초기이던 1993년 대법관을 했던 이 전 총재를 감사원장에 발탁한 데 이어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비록 이 전 총재가 헌법에 규정된 총리 역할을 강조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충돌해 4개월 만에 경질됐지만 결국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당 선대위 의장을 맡으면서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이 전 총재와 당내 다른 대선 주자들과의 마찰이 빚어지는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 전 총재를 향해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고 비판하고, 이 전 총재가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맞서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이 전 총재는 대선 과정에서 '3김(金) 정치 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결국 97년 김 전 대통령은 탈당했고,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이날 빈소에는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찾아와 조문을 했다. 이 전 총재는 유 전 원내대표를 보자 부친인 고(故) 유수호 전 의원의 상을 잘 치렀는지 물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인사도 못드리고 죄송합니 다”라고 했다.
한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과 관련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문에 민주화 개혁의 여러가지가 묻혀졌다”며 “그 어른이 다시 재조명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의 리더십은 용기와 결단이었다. 용기가 아무리 있어도 결단을 못하면 개혁을 못한다. 고인은 이를 실천하신 분”이라고도 했다.
음수사원이란 물을 마실 때 수원(水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갈증을 해소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근본인 우물을 누가 팠는지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음수사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이기도 하다.
이 전 총재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호인 ‘거산(巨山)’ 만큼 거대한 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음수사원’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생활화돼서 공기처럼 민주주의가 존재한다”며 “민주주의에 오기까지의 많은 족적을 잊기 쉽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은 (민주화) 주역 역할을 한 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주주의에 기여한 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조문을 하면서 상주 자리에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도 여러 대화를 나눴다. 이 전 총재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오면 기싸움한 얘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며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 서로 기싸움을 하신 모양인데 꽉 눌러줬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생을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사신 양반이다. 일생을 풍미했다"며 "여러가지 곡절이 있지만 호(號) 그대로 거대한 정치를 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는 김 전 대통령이 발굴해 대선에 도전했던 인물.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초기이던 1993년 대법관을 했던 이 전 총재를 감사원장에 발탁한 데 이어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비록 이 전 총재가 헌법에 규정된 총리 역할을 강조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충돌해 4개월 만에 경질됐지만 결국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당 선대위 의장을 맡으면서 여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이 전 총재와 당내 다른 대선 주자들과의 마찰이 빚어지는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 전 총재를 향해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고 비판하고, 이 전 총재가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맞서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이 전 총재는 대선 과정에서 '3김(金) 정치 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결국 97년 김 전 대통령은 탈당했고,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이날 빈소에는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찾아와 조문을 했다. 이 전 총재는 유 전 원내대표를 보자 부친인 고(故) 유수호 전 의원의 상을 잘 치렀는지 물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인사도 못드리고 죄송합니
한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대통령과 관련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문에 민주화 개혁의 여러가지가 묻혀졌다”며 “그 어른이 다시 재조명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의 리더십은 용기와 결단이었다. 용기가 아무리 있어도 결단을 못하면 개혁을 못한다. 고인은 이를 실천하신 분”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