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 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학‘2018 인구절벽이 온다’의 저자인 미래학자 해리 덴트는 세계 각국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유효수요 부족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오게 되는 상황인 인구절벽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그는 같은 시기에 한국에도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지만 반대의 주장을 하는 전문가도 있다. 앨런 와이즈먼은 그의 저서 ‘인구 쇼크’에서 4.5일마다 100만 명씩 증가하고 있는 세계인구가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와 식량 사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했던 토머스 맬서스와 맥을 같이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저출산 현상은 오히려 다행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생산가능인구가 내년에 정점(頂點)을 찍은 뒤 201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50년에는 현재보다 1000만 명 안팎이 줄어든 2535만 명으로 된다는 것이 통계청의 전망이다. 이렇게 볼 때 인구 쇼크 주장보다는 인구절벽 주장이 더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국가들 대부분과 일본·한국은 인구감소국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가 시작되기 이전에 경제
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왔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시대가 현재에서 보면 잘 살지 못했던 시기로 그려지지만, 경제성장률 측면에서는 정점인 시기였다. 그 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3% 성장도 힘든 시대에 이르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은 우리를 더욱 어둡게 만들지만, 막연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고용률은 6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0%대 수준보다는 10%포인트 이상 낮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여성고용률과 청년실업이 다수 있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감소한다 하더라도 2017년 이후 당분간은 여성고용률 제고와 청년실업 해소의 기간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기회의 시간이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해마다 태어나는 출생아 수는 45만 명 정도 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처럼 매년 100만 명이 태어났던 시기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이 정도만이라도 계속 태어난다면 4300만 명대의 인구를
유지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나마 태어나는 것은 인구층이 두꺼운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가 가임여성기에 있어, 낮은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45만 명선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45만 명 안팎이 태어난 아이 세대가 가임여성 시기에 이르면 현재의 출산율로는 출생아가 25만 명대로 뚝 떨어지고 총인구는 장기적으로 2000만 명대로 줄어들게 될 때면 문제가 된다. 그러한 인구 추세가 현실화하는 20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인구 버퍼도 사라지고 인구절벽 위기가 닥치게 된다. 지금부터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여서 가임여성의 감소에 대응해 출산율을 역으로 높이면 인구절벽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취업·
결혼·출산이 모두 늦어지고 있는 이른바 ‘N포 세대’의 현실을 타개해서 출산율을 상승세로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2017년에 예정돼 있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세 전환이 바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루하루가 어렵다 보니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만 보려고 하는 심리가 인구절벽 문제도 당장의 일로 몰아가서 경제 불안을 필요 이상으로 가중시키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를 지금 힘들게 하는 것은 인구감소가 아니라, 변변한 부존자원도 제대로 없는 10만㎢ 국토 면적에 5000만 명이 넘게 사는 높은 인구 밀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제력이 아직은 증가하고 있는 인구를 충분히 부양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선을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등의 불은 ‘인구절벽’이 아니라, 생산한 것을 팔 수 있는 ‘국가경쟁력’의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