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유정란

한겨울 도심에서 벌 키우는 재미? 꿀맛이죠

화이트보스 2015. 12. 16. 14:47

한겨울 도심에서 벌 키우는 재미? 꿀맛이죠

입력 : 2015.12.16 05:01 | 수정 : 2015.12.16 10:09

도시양봉가 '어반비즈서울' 박진

겨우살이에 들어간 벌과 달리 도시의 양봉가(養蜂家)는 겨울에도 분주하다. 2년 전부터 서울 한복판에서 벌을 키우고 있는 박진(33)씨는 현재 13곳인 서울 지역 양봉장을 내년 말까지 50곳으로 확대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허니 뱅크'라는 사업은 도시 양봉장을 늘리는 데 투자를 받고 나중에 수확한 벌꿀로 보상해주는 방식이에요. 투자자를 대신해 일정 교육을 받은 저소득층이 벌을 기르니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죠." 도시에서 벌을 키운다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도시 양봉'을 2년 넘게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서울 숭실대 진리관 옥상에 올라선 박진씨가 방충모자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박씨는“꿀벌 서식지가 늘수록 도시 생태계도 확대되고 사람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주택가에서 키우지 않는 게 원칙…
내년까지 50곳으로 확대할 예정

박씨는 2013년 서울 노들섬을 시작으로 명동 유네스코회관, 서대문구청 옥상 등 서울·경기 지역 19곳에서 벌을 키우고 있다. "서울에서 벌을 키워 망가진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며 4년 넘게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아내 '몰래' 박차고 나온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아직 철이 안 들었다"며 혀를 찼다.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지난 때였다.

도시양봉은 2000년대 중반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꿀벌 개체 수가 줄고 있다는 관측 때문이었다. 도심에서 벌을 키우기 시작한 박씨는 어반비즈서울(Urban Bees Seoul)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도시양봉 전도에 나섰다. "지난 2년간 저한테 양봉을 배운 교육생만 400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도시에서 벌을 기르고 있죠."

도시양봉이라 해서 아무 데서나 벌을 키우는 건 아니다. 주로 공공기관 옥상이나 도심 곳곳에 있는 텃밭에서 기른다. 그는 "벌을 싫어하는 주민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택가에서는 키우지 않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주택가에 벌통을 수십 개 갖다 놓고 이웃에 피해를 주는 건 분명 잘못됐습니다. 도시양봉의 취지는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람과 벌의 공존에 있기 때문이죠." 박씨는 도시양봉의 목적이 꿀을 얻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벌을 기르면 자연스럽게 벌의 먹이가 되는 해바라기나 사과나무 같은 밀원식물(蜜源植物)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녹지도 많아지고 도시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죠."

도시양봉가 박진 어반비즈 대표. /이태경 기자

"벌 살려면 사과나무 등 심어야 해…
자연스럽게 생태계 회복될 것"

박진씨

여왕벌의 일탈로 곤란을 겪은 적도 있다. 지난 4월 숭실대 교내 건물 옥상에 설치된 벌통에서 여왕벌이 탈출했다. 일벌 수만 마리가 뒤를 따랐다. 캠퍼스를 뒤덮은 벌떼를 보고 학생들이 다급하게 몸을 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별다른 피해 없이 1시간 만에 수습됐는데 현장 사진에 '렛잇비(Let it bee)'나 '허니버터대학교'라는 제목이 붙어 SNS를 통해 퍼졌어요. 도시양봉에 대해 안 좋은 여론이 생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재밌게 웃고 넘기는 분이 더 많더라고요."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우려가 "농촌보다 대기오염이 심한 도시에서 생산된 꿀이 건강에 해롭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박씨는 "명동, 노들섬, 서초동 등에서 생산한 꿀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했는데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았고 먹어도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도시에서 취미로 벌을 기르는 사람들은 일부 전업 양봉업자처럼 항생제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요. 또 수확량을 늘리려 벌통을 옮겨 다니거나 벌에게 설탕물을 먹이지도 않아요. 그러니 오히려 더 믿고 먹을 수 있죠."

그가 하는 일을 못마땅해 하던 아내도 지금은 생활비를 잘 챙겨다주는 남편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박씨의 목표는 2009년 발생한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괴질 바이러스로 90% 이상 멸종된 토종벌을 복원하는 것이다. "지금까진 주로 비용이 저렴한 서양벌을 길렀지만 앞으로 설치하는 벌통엔 토종벌을 들일 겁니다. 도시에서 토종벌 개체 수를 늘린 다음에 이들을 다시 시골로 전파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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