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102동 702호

애완견 몽이,

화이트보스 2016. 2. 24. 11:06



내 삶에 선물로 온 유기견 몽이

입력 : 2016.02.24 03:00

아픔·상처 큰 유기견 돌보며 성가시고 귀찮다 생각했지만
애완견이 준 위로와 웃음은 나의 수고로움보다 값진 선물
아픔 함께한 지인에게 잊지 말고 감사 전해야

길해연 배우
길해연 배우
"벅 벅 벅 벅."

또 문을 긁어댄다. 벌써 열다섯 번째다. 화내기도 지친 나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준다. 쪼르르 달려들어 온 몽이는 힐끔 내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모른 척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아 있다. 두고 봐라. 3분도 채 안 돼 다시 문 열어 달라고 벅벅거릴 게 분명하다.

아, 이번엔 내 예상이 어긋났다. 2분도 안 되었는데 문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몽이가 앞발을 쳐들기 전에 나는 잽싸게 문을 열어 준다. 몽이 뜻대로 방문을 열어 두면 그리로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져 들어올 터인지라 차라리 문 여닫는 수고 쪽을 선택하고 "으아!" 혼자 입을 막고 비명을 지른다.

몽이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이다. 몽이를 만난 건 10년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늦은 봄에서 여름 사이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김치찌개를 끓이겠다는 생각에 나는 정육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육점 앞 전봇대에 묶인 몽이와 마주쳤다. 유기견인데 맨 처음 발견해서 집에 데려갔던 분이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몽이를 안락사시키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만 주인이 나타날지 모르니 일주일만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좀 더 신중한 사람이었다면 그 키울 수 없게 된 상황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겠지만 나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다. 덥석 그 강아지를 안고, 돼지고기 사는 것도 잊은 채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왔다.

"잘했다 길해연! 암, 넌 잘한 거야!"라며 뿌듯해하는 것은 잠깐이었다. 내 품 안에 안긴 낯선 강아지를 본 순간 어머니는 들고 있던 수건을 냅다 바닥에 내팽개쳤다.

"지금 개 키울 때냐?"

씨 뿌릴 때가 따로 있는 것처럼 개 키울 때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야 맨날 밖에 나가 있고 내가 그 개 수발 다 들어야 하는데 난 싫다. 내가 왜 이 나이에 개 수발까지 들어야 하니? 당장 내보내."

내가 돈을 벌어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뒷부분 대사는 이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둘 다 당장 나가."

[ESSAY] 내 삶에 선물로 온 유기견 몽이
/이철원 기자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한집에서 살게 됐다. 우리의 몽이는 타고난 영민함과 눈치로 내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심지어 어머니에게 아침마다 "웰웰웰~" 말싸움을 걸어 어머니 입에서 "졌다, 졌어!" 소리를 듣기도 하는 위치가 됐다. 그런데 같이 살아보니 이 녀석, 꽤나 골치 아픈 존재였다. 선천적인 아토피에 심각한 중이염, 관절염까지 골치 아픈 병의 집합체인데다 몇 번이나 버려졌던 탓인지 불안증이 심하고 의심 많고 공격성까지 갖췄다. 게다가 신경이 예민해지면 사람을 무는 버릇이 있어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제 새 주인을 만나 사랑과 믿음으로 차츰 몽이의 행동이 나아졌다. 이런 가슴 훈훈한 이야기를 기대할까 봐 미리 못 박아 두지만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며 치매 증세가 생긴 건지 벽 보고 혼자 짓기, 죽은 척해서 사람 놀라게 만들기, 대소변 아무 데나 보기 등 기이한 행적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가끔 고소하다는 듯 몽이와 나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게 왜 골칫덩어리를 데리고 와 사서 고생이니?"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몽이의 조금씩 굽어 가는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시는 걸 보면 어머니도 내 마음 같으신가 보다.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한 그 시간 동안 몽이 덕분에 우리는 참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몽이야 몽이야 아무리 불러도 지 기분 좋지 않으면 어딘가 숨어 나오지 않는 바람에 몽이가 없어졌다고 야단법석을 떨었고, 몰래 무언가를 훔쳐 먹다가 걸렸을 때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선 채로 30분을 버티는 바람에 어이없어 웃기도 했다. 낮에 좋지 않은 일을 겪고 방문 닫아걸고 우는 밤에는 몽이가 마주 보고 앉아 눈물도 핥아 주었다. 돌이켜 보니 '몽이가 우리 가족에게 준 선물이 참 많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화도 나고 몸이 고단할 때는 조금 귀찮고 성가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태 웃음과 위로라는 큰 선물을 받아먹었으니 나도 무언가는 내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감사의 표시로 내 알량한 휴식시간 쪼개 주는 것을 아까워한다면 나는 너무 파렴치한 사람일 것이다.

비단 우리 몽이와의 관계뿐이겠는가? 내게 웃음을 주었던 사람들, 내게 용기를 주었던 사람들, 부족한 내게 괜찮다며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 화난 나를 옆에서 토닥여 달래준 사람들…. 요즘 바쁘다고 정신없다고 그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난 김에 오늘은 고맙고 보고픈 이들에게 전화라도 걸어 어찌 지내는지 안부라도 물어야겠다. 벅벅벅 몽이가 또 문을 긁어댄다. 나는 끙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열여섯 번째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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