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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작은 기적

화이트보스 2016. 2. 25. 11:01



할머니들의 작은 기적

입력 : 2016.02.24 10:08

요즘 세상은 참 각박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살벌하기까지 합니다. 부모가 애를 학대하고 때론 숨지게 해 암매장하기도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때리거나 살해하는 일도 보도되곤 합니다. “이런 일이 예전보다 잦아진걸까?” “예전에 비해 미디어들이 많아지고 뉴스들이 늘어나 그런걸까?”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우울을 조금이나마 씻어주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부산 북구의 A(82)할머니와 영도구의 B(79)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이들 두 할머니는 모두 기초수급자였습니다. A할머니는 최근 부산대 발전기금재단에 6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작년 말에도 1000만원을 이 재단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재단 측은 “얼마 전 A할머니가 ‘집에 좀 와달라’고 해 갔더니 600만원을 ‘가져가라’며 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당시 “혹시나 해서 비상금으로 남겨놓은 것인데 매달 나오는 연금이 있으니 필요없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재단 측에 따르면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외동딸을 키우며 살았다 합니다. 그 외동딸이 지난 1980년 부산대 사범대에 합격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딸을 인생의 낙으로 삼으며 살던 할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지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대학생 손녀가 사망하자
기초생활금 조금씩 모은 돈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

하지만 그 딸이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4학년 1학기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지고, 애간장이 녹았다 합니다. 재단 측은 “할머니가 먼저 떠난 딸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눈물로 살았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다 이내 맘을 다잡은 할머니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30년 모은 돈 1000만원을 작년말 부산대 재단에 맡겼던 거지요. 재단 관계자는 “‘공부하기를 원했던 딸의 한을 풀어준 것 같아 여한이 없다’며 울멱이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혹시나 해 비상금으로 남겨뒀던 600만원도 아낌없이 기탁한 겁니다.

영도구의 B할머니는 지난달 중순 친하게 지내는 통장(65)을 찾아 10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이 통장은 “할머니도 어려운데 이럴 필요가 있느냐”며 만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그동안 나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죽기 전에 이웃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얼굴없는 할머니'의 선행. /조선일보 DB

작은 선행이 돌아
사회 속에 선행 불씨 붙여

이 할머니 역시 작년 1월에도 “힘든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2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B할머니도 영도로 시집와 조선소에서 배의 녹을 긁어내는 일명 ‘깡깡이’ 일을 하며 힘겹게 살았습니다.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는 “집주인이 밑반찬 등 먹을거리를 나눠 먹어서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아 돈을 조금씩 모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이들 할머니에 대해 작은 존경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또 이들 할머니의 ‘작은 기적’이 바이러스처럼 다른 ‘작은 기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임용 후보자는 얼마 전 A할머니 집을 찾아 안부인사를 드렸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인근 병원으로 모시고 가 의료진들에게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또 A할머니 딸이 다녔던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동문들은 할머니 기부금 1600만원을 종자돈으로 ‘역사교육과 장학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영도구 측은 지난달 말 B할머니를 모시고 조촐한 장학금 전달식을 열었습니다. 이들 두 할머니는 모두 외부에 이름 등 신상을 밝히는 걸 거절했습니다. 어윤태 영도구청장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꾹 참고 어렵사리 돈을 모았을 할머니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하더라”며 “억만금을 주고도 못사는, 우리 사회가 모두 간직해야 할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 너무나 오래된, 너무나 당연해서 지금은 아득히 잊혀져 가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낡은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으로 골동품이 돼버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인심이 각박해질수록, 세상이 살벌해질수록 더 그리워지고 간절해지는, 사라져서는 안되는 용어입니다. ‘어머니의 마음’.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