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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과 강동석

화이트보스 2016. 3. 3. 17:27


박태준과 강동석

1969년 12월 새벽 4시 찬 모래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포항 앞바다. 박태준 사장은 걸음마 단계인 포철(포스코)의 전 직원을 비상소집했다. 그는 “선조들의 ‘피맺힌 돈’으로 제철소를 짓는다”며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을 각오를 하라”고 외쳤다. 미국 등 5개국 8개사로 구성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이 자본·기술지원 약속을 깨자 포철은 위기에 직면했다.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대일청구권자금 잔여분에 매달렸다. 일본의 2차대전 패배 배상금은 원래 농림수산개발에 지원될 돈이었는데 전용한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이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라”며 포항에 내려갔다. 준공 때까지 작업복과 작업화를 벗지 않은 채 잠을 잤다.

천문학적인 조달사업이 시작되자 외압이 잇따랐다. 집권당인 공화당의 재정위원장(김성곤)이 특정업체를 낙찰하라고 지시했다. 이 일본 회사는 5번이나 입찰에서 미끄러졌다. 입찰가가 최저보다 20%나 높았다. 그때마다 박 사장은 재정위원장 집으로 불려갔다. 그는 “권력실세들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수십번 곤경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한용걸 논설위원
오늘날의 포스코는 이러한 난관과 외압을 딛고 일어섰다. 주식회사로 시작했지만 일본의 배상금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권력 눈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 사장은 사표를 가슴에 품고 청와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꿋꿋하던 포스코가 바람을 타고 있다. 에너지·소재사업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손실이 단순히 경영적 판단 미스나 환율 때문이 아니라 외풍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태준씨의 땀과 눈물이 오버랩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마저 일게 한다. 정부에 빌린 돈을 다 갚았는데도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포스코 못지않게 야심차게 출발한 곳이 또 있다. 인천공항공사이다. 오명 건교부 장관은 교통안전진흥공단 이사장이던 강동석씨를 삼고초려해 초대 사장으로 앉혔다. 강 사장은 2년간 영종도 컨테이너 막사에서 먹고 자면서 기반을 닦았다. 환갑도 거기서 맞았다. 그는 “우리 함께 불타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인천공항 건설 공사에는 5조6000억원이 들어 최대 이권사업이었다. 하도급이 수백억원에 달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면세점에 관광공사를 입점시키라고 전화했다가 거절당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박지원은 “그 놈의 사장 대단해. 내가 청탁하는데도 거절하더라”고 했다. 경쟁입찰 원칙은 하늘의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력도 어쩌지 못했다. 강 사장 재직 기간에 새로 부임하는 인천지검장들이 한 건 하려고 뒤졌지만 한 명도 구속하지 못했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제2의 포철신화”를 거론하며 격려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외환위기에 몰린 이명박정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게 인천공항 매각일 정도로 단기간에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제는 갖가지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수화물이 항공기에 실리지 않거나 불법입국자가 증발하는 등 관리 허점이 불거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가 부임했다가 출마한다며 자리를 비우고 나간 게 두 번째이다. 경영의 연속성이 끊어졌다. 자리를 정계 진출의 디딤돌로 삼는 것을 본 구성원들은 공통의 목표를 상실하고 있다. 최근 거쳐간 인사들은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한다. 관료들의 입김에 휘둘려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조직이 유기적이지 못한 데다 소극적이 되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시아공항평가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포스코와 인천공항공사는 창업일꾼들이 바닷물에 빠져죽을 각오를 하고 일구었다. 이들은 오늘날 회사 소식을 들으면서 혀를 차고 있다. 정부와 권력기관의 지나친 간여가 세계적으로 우뚝 일어설 의지를 잘라버리는 게 아닌지, 일꾼들을 자포자기하게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간섭은 구성원들이 잠재력 발현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는 데 생채기를 낸다. 한때 잘나가던 이들 기업이 왜 죽을 쑤고 있는지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 비록 전 정부에서 빚어진 일이라도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이제 바람을 막는 것은 리더 혼자의 일이 아닌 상황이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