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파괴력은 어디서 오는가중앙일보 입력 2016.03.07. 00:47 수정 2016.03.07. 06:29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이하 경칭 생략)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바지사장’이나 ‘얼굴마담’이란 비아냥은 쏙 들어갔다. 그는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고, 개성공단 폐쇄에도 “정부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북한 궤멸론을 꺼내지 않나, 군 위안부 문제엔 “일본과 다시 협상하긴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여간 강심장이 아니고, 보통 내공이 아니다. 그의 원형질이 궁금해 20년 넘게 김종인과 자주 만나온 보수·진보 쪽 두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 김종인은 책사로만 알려져 있었다.
“책사를 하기엔 그릇이 크고 성격이 너무 강하다. 그를 ‘경제학자’로 여기는 것도 오해다. 저서라곤 2012년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뿐이다. 오히려 김종인의 본질은 정치가다. 그는 할아버지인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무릎에서 정치를 배우며 자랐다. 20대 시절 가인의 정치비서로 입문했고, 40세 이후부터 줄곧 국회의원·경제수석·장관 등 정치판에 몸담았다.”
- 여야를 넘나들어 ‘철새’라는 비난이 나온다.
“김종인은 현실주의적 개혁가다. 유학 때 전공한 독일 재정학은 국가자본주의 색채가 짙다. 그가 사회복지와 재벌개혁을 앞세우는 이유다. 그러면서 안보에는 보수이고 외교는 철저한 친미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었지만 내 원칙이나 철학을 바꾼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진영논리로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 그의 리더십과 파괴력은 어디서 오는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한국의 야당은 중도로 갈 때 이겼고, 좌로 가면 패배하지 않았는가. ‘열광하는 지지자들만 갖고 선거를 끌고 갈 수 없다. 정치를 운동권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건 평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국민 정서를 정확히 읽고 두서너 수 앞을 내다본다. 야권통합도 무서운 카드다. 그는 통합을 핑계로 공천 과정에서 친노운동권을 쳐낼 명분을 얻었다.”
- 과연 운동권 출신을 제대로 물갈이할까.
“김종인은 ‘마음을 비웠다’는 게 최대 경쟁력이다. 적지 않은 유산을 받았고 부부 교수 출신이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미련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친노운동권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야당을 얼마나 수술할지는 앞으로 열흘 정도의 공천 과정이 분수령일 것이다.”
- 운동권 출신들은 노련한 싸움꾼인데.
“지금 김종인도 인생 최고의 전성기다. 매일 헬스장에서 건강을 챙기고 기억력도 비상하다. 대단한 초식에다 노회하기도 하다. 운동권 출신들이 어설픈 논리로 덤벼들기 힘든 상대다. 76세 노정객이 ‘당신들 언제 어느 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단칼에 자르면 맞서기 어렵다. 그의 네트워크도 정운찬·박영선에서 심상정·노회찬까지 의외로 넓고 깊다.”
- 김종인의 유통기한은 총선까지일까.
“그가 비례대표로 입후보하는 순간 리더십은 흔들릴 것이다. 노욕(老慾)이다. 그는 파산 기업에 법정관리인으로 간 셈이다. 이사회( 비대위) 등 거버넌스를 확 바꾸고, 구조개혁으로 흑자가 나면 박수받을 때 물러나야 한다. 제대로 어른 노릇 한번 한 뒤 내려오는 게 최선이다.”
- 대선까지 야권통합 등 숙제가 남아 있는데.
“최근 조국 서울대 교수가 SNS에 ‘그의 짜르식 리더십에 맹종해선 안 된다. 4월 이후 킹 메이커가 되려 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솔직히 김종인의 ‘노련한 승부수’ ‘단칼 화법’이 언제 ‘독선적 결정’ ‘고집불통’으로 몰릴지 모른다. 3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토사구팽당한 뒤 김종인이 캠프를 해산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의 오랜 측근인 김모 보좌관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제 대통령을 만들어주기보다 스스로 도전해 보시라’고 했더니 김종인은 빙그레 웃기만 하더라….”
김종인이 침몰하던 더민주를 재빨리 일으켜 세우고 있다. 지금은 야당보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더 실망감을 안겨줄 정도다. 오랫동안 진영논리와 계파싸움으로 찌든 한국 정치판에 새로운 리더십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 자체가 인상적이다. 과연 김종인의 파괴력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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