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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마지막 선거’

화이트보스 2016. 3. 22. 15:46



朴대통령의 ‘마지막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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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 논설실장

누구든 배신을 싫어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만큼 철두철미하게 증오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이런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공개 지목한 인사가 유승민 의원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지난해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여당 원내사령탑(유 의원)도 경제살리기에 얼마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면서 “배신의 정치는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유승민 공천 파문의 뿌리가 있다. 그러나 유 의원을 응징한다고 해서, 진박(眞朴) 후보들을 골라 지원한다고 해서 ‘배신의 정치’를 막을 수는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 여당 공천에서 배제된 진영 의원의 야당 입당은 뼈아픈 일이다. 진 의원은 20일 기자회견에서 “권위주의에 맞서는 민주정치”까지 외쳤다. 그나마 유 의원이 지난해 7월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했던 것은 점잖은 반발이었다. 따지고 보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이상돈 국민의당 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제2, 제3의 유승민·진영은 계속 나오고, 총선 뒤에는 더 많아질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밑바닥까지 경험한 박 대통령이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다. 속마음은 이럴 것이다. ‘2012년 4·11 총선에서 여당은 100석 확보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내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단독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그 덕에 수십 명이 더 배지를 달았다. 그러면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당 대표, 원내대표, 국회의장 모두 비박(非朴)을 뽑은 것도 모자라 시급한 법안 처리조차 뒷전이다. 대구·경북 의원들이 특히 문제다. 임기 초에도 이랬는데, 무리를 하더라도 ‘진실한 사람’으로 물갈이하지 않으면 임기 말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런 박 대통령의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거의 여왕’답게 자신의 구상을 상당히 관철했다. 김무성 대표가 추진한 완전국민경선제의 빈틈을 정밀 타격해 대세를 뒤집었다. 막판에 일부 진박 예비후보들이 경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임기 후반의 박 대통령이 이런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김무성, 유승민, 황우여, 진영, 이혜훈, 전여옥… ‘원박(元朴)’이었다가 잘린 ‘짤박’들이다. 박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로서 어느 정도 이들을 포용하려 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아마 지금 ‘진박’들은 변신에 더 민첩할지 모른다. 이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하산(下山)길에 접어들었다. 이번 총선은 박 대통령에게 사실상 ‘마지막 선거’다. 투표가 끝나면 박 대통령과 국회의원 사이의 정치적 갑을관계는 역전된다. 당선자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보다 내년 대선의 향배와 다음 공천 권력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아무리 ‘진박당’으로 개조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찬반과 호불호가 극명하지만, 그의 진정성과 애국심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과거가 현재를 이길 수 없고, 현재가 미래를 이길 수 없다. 누구든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물론 박 대통령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로서 동원할 수 있는 카드는 많다. 극단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꺼냈던 ‘대연정’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레임덕을 줄이고 늦추는 길은 ‘소통’과 ‘설득’에 있다. 불통과 만기친람은 이제 국정 추진력이 아니라 그것을 갉아먹는 정치적 독(毒)이다. 비박은 물론 야당까지 끌어들이는 정치를 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이 야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야당을 바꾸고 있다.

내년 이때쯤이면 대선 바람이 한창일 것이다. 실제로 국정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은 1년 남짓이다. 배신자 심판에 매달리기에는 그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공천과 총선 승패도 중요하지만, 박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한 사람이 배신하면 열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열린 리더십’으로의 전환이다. 그러면 정치적 득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설혹 단기적 전과를 올리더라도 국정은 더 어지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