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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가 말해야 할 때다

화이트보스 2016. 4. 8. 16:15


침묵하는 다수’가 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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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직 / 편집국 부국장

“엄동설한에도 서명하러 나선 사람이 160만 명에 달했습니다. 기업 하는 사람으로서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 경제의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제활성화법 처리가 절실합니다.”

6개 경제단체와 함께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을 펼쳐온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지난 3월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회를 향해 7개 경제활성화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며 쏟아냈던 하소연이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국민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법 등 경제활성화법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계의 이 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만 선거법과 연계해 가까스로 통과했을 뿐 나머지 6개 법안은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경제계 안팎에서 “19대 국회가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장탄식이 터져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1개월… 한국 정치권의 놀라운 변신 앞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지난 3월 31일 시작된 4·13 국회의원 총선거 공식 선거운동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문제는 경제다!’ 당의 얼굴도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인 씨를 내세우고 현 정부의 경제심판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경제계 일각에서 ‘경제외면당(黨)’ ‘경제발목당’이란 비판을 받았던 더민주가 ‘경제정당’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한 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변신도 놀랍다.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진박(眞朴)’ 논란과 ‘옥새투쟁’ 등 사생결단식 당내 계파 싸움으로 국민의 정치 혐오증에 불을 확 질러놓더니만 요즘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참회와 반성 모드로 무릎 꿇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다면 그 일등공신은 단연 새누리당 지도부일 것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돌변한 여야의 모습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노조의 극한투쟁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민주노총을 향해 날렸던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돌직구가 총선 이후 과격노조·귀족노조의 특권을 견제하는 형태로 당 정책노선에 반영될 수 있을까.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을 공개하며 유권자 앞에서 사죄했던 친박·비박계가 총선 이후에도 국민만 생각하며 손을 잡고 나갈 수 있을까. 표(票)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키스한다는 게 정치의 속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선에 임박해 여야의 ‘연출’된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보는 유권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이번 20대 총선은 세계 경제가 동반침체하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실전배치 초읽기에 들어간 북핵 위기라는 경제·안보 복합위기 국면에서 치러진다는 점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어떤 지역일꾼을 뽑느냐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경제·안보 복합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정치지형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 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이 복합위기 국면에서 어떤 이들에게 우리 미래를 맡겨야 할지에 대한 국민적 결단이 총선으로 표출돼야 한다.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한 여당의 공천 파동, 평소에는 편 가르기 정치를 해오다가 선거 때만 되면 합치자는 야권 행태 등을 지켜봐 온 유권자 입장에선 20대 총선을 아예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를 향한 한탄과 원망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 정치인들 꼴도 보기 싫다고 외면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국의 명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는 “신사들이 의회로 돌아오지 않을 때 이 제국은 멸망할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선거에서 신사들을 뽑지 않고 선동꾼이나 거짓말쟁이를 선출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의미다. 한국 정치 현실이 혐오스럽다고 20대 총선을 외면한다면 절체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20대 국회는 또다시 ‘그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상 최악으로 평가됐던 19대 국회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를 정치꾼들의 손에만 맡겨놓기에는 주어진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4·13 심판의 날’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역사는 ‘침묵하는 다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가 말할 때’ 이뤄진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