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 30대 한국인 여성이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억울하게 240일째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멕시코 교민들은 이 여성에 대한 구명운동에 나섰다. 또 이 사건과 관련한 우리 대사관의 부실한 초기 대처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양현정씨가 한국에 있을 당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찍은 셀카 사진.
그런데 자정 무렵 검은 복면을 쓰고 기관총과 권총 등으로 중무장한 건장한 남성 수십 명이 노래방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검찰 수사관들로 양씨와 한국인 여종업원 5명, 웨이터 등 멕시코인 3명, 한국인 손님 2명 등 11명을 검찰청으로 연행했다. 검찰은 W노래방의 여종업원들이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와 감시 속에서 매춘행위를 강요받고 임금도 갈취당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양씨는 한인 마피아의 조직원이자 종업원들을 감금, 착취한 핵심 피의자로 지목받았다.
이후 진행된 멕시코 검찰의 조사가 대단히 강압적이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틀간 조사를 받고 풀려난 한국인 종업원 진모씨는 “잠도 재우지 않았고 물과 식사, 화장실 사용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감금당한 적도, 매춘을 한 적도, 임금을 갈취당하지도 않았다고 하는데도 정반대로 작성된 조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양씨 역시 통역도 없는 상태에서 혐의를 인정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이러한 과정에서 주멕시코 한국 대사관에서 나온 이모 영사(총경)의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인 종업원들은 석방 뒤 우리 정부에 자필 탄원서를 보냈다. 이 탄원서에는 “허위진술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30시간 이상 버텼다. 그런데 멕시코 검찰과 얘기를 나누고 온 영사가 ‘나중에 2차 진술서를 만들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준다고 검찰이 약속했으니 나를 믿고 우선 서명부터 하라’고 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진술서는 그대로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됐고 양씨는 반인권 중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멕시코시티의 산타마르타 교도소에 구속 수감됐다.
양씨가 구속 수감된 뒤 5명의 한국인 종업원들이 자필로 쓴 탄원서. 조사과정에서 멕시코 검찰의 강압적이고 반인권적 행위가 있었고,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영사의 설득에 허위 진술서에 서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양씨 사건이 교민사회에 알려지고 대사관의 부실한 대처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이 영사는 “(양씨는) 강제로 일을 시키고 돈을 안준 중범죄”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양씨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교민 사업가 홍금표(판트란스 대표)씨는 “대사관이 사건 초기에 사실 관계만 제대로 확인하고 도움을 줬더라면 양씨가 구속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경찰 영사 이모 총경이 지난 6월 인터넷에 올린 해명 글. 이 영사는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양씨에 대해 `강제로 일 시키고 돈 안 주고 착취하는 중범죄인` `이 중범죄자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요청하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멕시코 법원에 낸 이의제기에 희망= 현재 양씨는 미결수 신분으로 본재판을 앞두고 멕시코 법원에 구속 수감이 부당하고 수사과정과 절차가 불법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임팔라’(이의제기 절차)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일단 법원의 심리 과정에선 멕시코 검찰이 제출한 증거 대부분이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법원 기록에 따르면 사건을 검찰에 제보했다는 여성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멕시코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로 판명됐다. 또 검찰이 제출한 노래방과 주변의 CCTV 영상에는 종업원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양씨가 낸 이의제기에 관련된 현지 법원 자료. 법원이 정부 행정기관에 요청해 확인해보니 W노래방의 불법 행위를 검찰에 제보한 것으로 돼 있는 ABC라는 여성은 선거인 명부(우리의 주민등록명부에 해당)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답답하고 공포스러운 심경을 담아 양현정씨가 옥중에서 그린 그림.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양씨 자신의 현실을, 바닥에 뒹굴고 있는 해골은 죽음과 가까이에 있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민 보호 못하는 해외공관 실태
지난해 12월 20일 부산에 사는 임모(31)씨는 아내와 함께 태국의 유명 휴양지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섬으로 들어가는 크루즈선에서 충전 중인 휴대전화를 발견한 임씨는 함께 배를 탄 한국인 일행의 것으로 착각하고 가이드에게 이를 전달했다. 휴대전화가 있던 방에는 10여 명의 한국인 일행 외에 태국인 2명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섬에 도착한 후 휴대전화 주인인 태국인이 문제를 삼았다. 그는 “전화기가 없어져 몇 번이고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며 임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졸지에 절도범으로 몰린 임씨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고 코사무이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됐다. 임씨는 16시간 정도 유치장에 갇혀있다가 300여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일단 풀려났다. 하지만 출국이 금지된 상태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야만 했다. 아내는 하는 수없이 지난 1월초 남편을 남겨두고 귀국길에 올랐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가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대사관 측은 한달 뒤인 1월 18일에야 임씨가 있는 코사무이로 영사를 보냈다. 국회 상임위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외교부는 사건 직후 현지 영사협력원이 태국경찰과 접촉해 보석 신청절차 등을 협조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보고했다.그러나 실제로는 사건이 발생하고 한달여 동안 현지 영사협력원이 임씨 등을 접촉한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태국 검찰이 임씨의 스마트폰 절도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임씨는 경찰에 입건된 지 46일 만인 2월 4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국회 외통위 소속 김세연 의원은 “한 달이 지나서야 사건 현장으로 영사를 보낸 것은 외교부의 명백한 초동대처 부실”이라고 비판했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전경.
DA 300
이 때문에 우리 해외 공관들의 국민 보호를 위한 대처 능력이 선진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멕시코에서 30년 가까이 중계 무역에 종사하고 있는 이모(58)씨는 “해외에서 어려움에 처하면 대사관보다 한인 교회를 먼저 찾아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중앙 10월호(13일 발매)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