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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0 17:25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한명인 고영태(40) 전 더블루K 이사의 부모가 고은 시인의 대표작 ‘만인보(萬人譜)’에 수록된 사실이 알려졌다.
고은 시인을 노벨문학상 후보 대열에 올린 대표작 ‘만인보’는 1986년부터 2010년 4월까지 23년 동안 총 30권 3800여편으로 써낸 한국 최대의 연작시 작품으로, 인물 5600여명의 삶이 녹아있다.
고영태씨의 부모는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편과 ‘3355번-이숙자’에 등장한다.
고규석씨는 마흔 살이던 1980년 5월 21일, 광주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실종됐다. 부인 이숙자씨는 전남대 병원, 조선대 병원, 상무관, 도청 등 사방을 돌아다니며 고씨를 찾아다녔다. 열흘 만에 만에 광주교도소 암매장 터에서 찾아낸 고씨는 가슴 부위에 총을 맞아 숨진 시신인 상태였다.
이숙자씨는 남편이 숨진 뒤 망월동 묘역 관리소 인부로 일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인물로 그려졌다. 여섯 가구가 수도꼭지 하나를 나눠쓰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던 이씨의 이야기는 펜싱 선수 막내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걸고 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펜싱 선수 막내가 고영태씨다.
고씨의 부친은 5·18 유공자로, 5·18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이 지난 10월 31일 광주매일신문의 보도로 알려졌다. 신문은 담양에 살던 고씨 부친이 1980년 5월 21일 광주에 볼일을 보러 가다 옛 광주교도소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기 중이던 제3여단 소속 군인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보도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구술한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에는 남편을 떠나보낸 뒤 2남 3녀를 돌보며 고생한 모친 이씨의 내용도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고영태씨의 양친이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 수록돼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다음은 만인보 고규석·이숙자편 원문이다.
만인보 단상 3353-고규석
이장 노릇/새마을지도자 노릇/소방대장 노릇/예비군 소대장 노릇/왕대 한 다발도 번쩍 들었지/(중략)
동네방네 이 소식 저 소식 다 꿰었지/싸움 다 말렸지/사화 붙여/사홧술 한잔 마시고/껄껄껄 웃고 말았지/(중략)
누구네 집 서울 간 막내아들/달마다 담배 사보내는 것도 알고/누구네 집 마누라가/영감 몰래/논물 몰래 대어/옆논 임자하고 싸운 일도 알고/
아니 아니/누구네 집 삽 두 자루/누구네 집 나락 열 가마/남은 것도 아는 사내/고규석/
다 알았지/다 알았지/그러다가 딱 하나 몰랐던가/
하필이면/5월 21일/광주에 볼일 보러 가/영 돌아올 줄 몰랐지/마누라 이숙자가/아들딸 다섯 놔두고/찾으러 나섰지/
전남대 병원/조선대 병원/상무관/도청/...중략.../그렇게 열흘을/넋 나간 채/넋 읽은 채/헤집고 다녔지/
이윽고/광주교도소 암매장터/그 흙구덩이 속에서/짓이겨진 남편의 썩은 얼굴 나왔지/가슴 펑 뚫린 채/마흔살 되어 썩은 주검으로/거기 있었지/
아이고 이보시오/(중략)
/다섯 아이 어쩌라고/이렇게 누워만 있소 속 없는 양반
만인보 단상3355 이숙자
고규석의 마누라 살려고 나섰다/(중략)/담양 촌구석 마누
광주 변두리/방 한 칸 얻었다/
여섯 가구가/수도꼭지 하나로/살려고 버둥쳤다/
여섯 가구가/수도꼭지하나로 물밥는집/(중략)
남편 죽어간 세월/조금씩/조금씩 나아졌다/망월동 묘역 관리소 잡부로 채용되었다/그동안 딸 셋 시집갔다/
막내놈 그놈은/펜싱 선수로/아시안 게임 금메달 걸고 돌아왔다/
늙어버린 가슴에 남편얼굴/희끄무레 새겨져 해가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