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씨의 강요 미수 혐의에 대한 10차 공판 막바지에 최씨는 증인으로 불려 나온 이영국 제일기획 스포츠사업단 상무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특유의 빠르고 공격적인 질문에 이 상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검사나 변호사의 신문을 뺨치는 최씨의 증인신문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최씨는 사건 당사자만 아는 사실에 근거한 ‘족집게식 질문’과 미리 준비한 일련의 질문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압박 질문’으로 증인들을 얼어붙게 했다. 가끔은 “국민들에게 죄송스럽지만…” “안고 갈 건 안고 가야겠지만…” 등의 말로 분위기를 잡는 여유도 보였다.
최씨가 자신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에게만 맡기지 않고 직접 증인신문에 나선건 지난 1월31일 직권남용 혐의에 관한 8차 공판 때부터였다. 재판 말미에 최씨는 재판장(형사22부 김세윤 부장판사)에게 “내가 하지 않은 이야기나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게 증인에게 질문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씨의 첫 타깃은 공교롭게도 ‘불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고영태씨였다.
지난 2월6일 최씨는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6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고씨를 매섭게 추궁했다. “포스코 갈 때 ‘고민우’라고 명함을 파서 갔는데, ‘고민우’라고 개명하려다가 마약 전과가 나와서 못하지 않았느냐” “가이드러너나 장애인 펜싱팀은 특히 고영태씨의 호남 선배인 감독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것 아니냐” “류상영(더블루K부장)은 고영태가 한 달만 쓰자고 사정했던 것 아니냐”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고씨는 최씨와 눈도 맞추지 않은 채 “사실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등 부인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다른 국정농단의 공모자들도 ‘최 검사’ 앞에선 위축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른 피고인들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갈 때도 최씨는 검찰과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다. 지난달 17일 김종 전 차관 등의 강요 미수 혐의에 관한 8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씨는 “엄모씨 등한테 지시해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사실상 운영한 거 아니냐”는 검찰 측의 추궁에 “영재센터 일을 전혀 안 했다. 증거를 대시고 얘기를 하시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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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뇌물혐의에 관한 1차 공판에서 최씨는 “특검은 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네들이 뇌물죄라고 정해놓고 거기에 따라 저한테 진술을 요구했다”며 “아무리 대통령 곁에 있다고 해도, 재벌 총수 이름은 알지만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특검이 너무 강압적으로 언어 폭력을 가하고 인간취급도 안 했다”고 주장했다.
최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최씨가 증인신문 내용을 꼼꼼하게 듣고 이런 이야기를 물어봐도 되는지 종이에 써서 묻곤한다. 입법부ㆍ사법부ㆍ헌법재판소 모두에 불려나가 질문을 받으니 내공이 쌓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씨의 재판을 지켜 본 한 법조인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어서 가끔 혐의와 무관한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사실관계를 제일 잘 아는 만큼 변호인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을 할 때가 있어 놀랐다”고 평가했다.
김선미ㆍ문현경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