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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두 얼굴.. 세계 곳곳 농작물 덮치는 골칫거리이자, 고기 못지않은 영양 갖춘 식품

화이트보스 2017. 5. 20. 09:32

식량 파괴자인가 식량의 미래인가최인준 기자 입력 2017.05.20. 03:03 수정 2017.05.20. 09:20 댓글 0

 
곤충의 두 얼굴.. 세계 곳곳 농작물 덮치는 골칫거리이자, 고기 못지않은 영양 갖춘 식품

지난달 초 아프리카 케냐에서 낟알 절반이 시커멓게 변한 옥수수가 발견됐다. 이후 몇 주 사이에 수백㎢의 옥수수밭에서 똑같은 피해가 일어났다. 영국에 위치한 비영리단체인 국제농업생명공학연구소(CABI)는 지난 1일 밤나방(fall armyworms) 애벌레로 인해 앞으로 1년 동안 아프리카의 옥수수 농사에서 30억달러(한화 약 3조36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전 세계가 해충의 습격에 무방비로 당하고 있다. 밤나방 애벌레는 지난해 1월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빠른 속도로 아프리카 전역을 덮치고 있다. 처음 발견된 지 1년도 안 된 지난해 11월엔 토고와 가나·카메룬 등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 국가까지 피해를 입었고, 올해 2월에는 피해 면적 2230㎢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잠비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전체의 3분의 1이 밤나방으로 옥수수 농사를 망쳤다.

◇아프리카·남미·러시아에 번진 곤충떼

이번의 밤나방 애벌레는 수백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면서 강하고 예리한 턱으로 아프리카의 농작물에 해를 입혔다. 낮에는 옥수수 줄기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려도 큰 효과가 없었다. 전파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자 일부에선 "이 해충이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이나 아시아로 옮겨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메뚜기떼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 2월 남미 볼리비아의 카베사스 지역은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옥수수·사탕수수·땅콩 등 모든 농작물이 초토화됐다. 볼리비아 전체 농업의 80%를 차지하는 카베사스가 흔들리자 정부는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 남부 지역에 메뚜기떼 수백만 마리가 출몰해 700㎢에 이르는 평야를 휩쓸고 사라졌다. 이는 러시아 남부 농지의 10%에 이르는 면적이다. 어른 손바닥만 한 '괴물 메뚜기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2015년 러시아 남부, 2011년 호주에서 몸 크기가 8㎝가 넘는 대형 메뚜기가 떼로 출몰해 큰 피해를 입혔다.

◇가뭄과 먹이 부족이 스트레스 호르몬 촉발

메뚜기떼와 밤나방 유충처럼 곤충이 떼를 지어 다니며 작물에 해를 입히는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대부분 곤충떼의 출현은 예고 없이 불규칙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진다.

일단 메뚜기는 먹이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공격성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메뚜기는 평소 단독 생활을 한다. 행동도 순하다. 하지만 무리를 이루면 논밭과 숲을 폐허로 만들 정도로 맹렬한 공격성을 띤다. 이는 사람의 기분을 기분을 좌우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이 메뚜기들의 잠자던 공격성을 깨우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은 기분과 수면·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가뭄으로 먹이가 줄어들면 메뚜기에서 세로토닌 분비량이 3배로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메뚜기들은 이제 무리를 이루며 공격성을 나타낸다. 식량 감소로 인한 스트레스가 단체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 기록에도 가뭄이 발생한 시기와 메뚜기떼가 나타난 시기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지구온난화도 곤충떼 습격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한반도 곤충의 번식 시기는 평균 15일 정도 앞당겨졌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온도가 높은 곳에서 자란 곤충이 더 빠르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온난화로 일부 곤충이 이상 증식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지면서 곤충떼가 출몰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최원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곤충은 원래 안정된 밀도를 유지하는데 메뚜기떼와 같은 대발생은 생태계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신호"라며 "곤충떼의 출현은 또 다른 이상 현상으로 이어질 징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삼국시대 신라가 메뚜기떼 피해 가장 많아

인간과 곤충의 전쟁은 처음이 아니다. 구약성서에 이집트 왕이 유대인들이 떠나는 것을 막자 메뚜기떼가 나타났다고 나와 있듯 곤충들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다. 삼국사기에도 신라가 19번이나 메뚜기떼 피해를 입었고. 고구려와 백제도 각각 8번과 5번 메뚜기떼 공격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수천년을 넘어 다시 곤충떼의 공포가 지구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곤충은 지구온난화로부터 인류를 지켜낼 고품질의 식량 자원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과연 곤충은 인류를 멸망시킬 파괴자일까, 아니면 세상을 구할 희망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