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97%가 행복하다고 믿는 나라 '부탄'을 가다
여행자와 눈 마주치면 '방긋' 미소 짓는 사람들
나쁜 도로 사정에도 서두르거나 불평하는 일 없어
자유여행 없이 하루 200~250달러 패키지만 가능
이토록 간절한 걸음·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있었던가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4분의 1, 인구라고 해봐야 75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 부탄. 히말라야 동쪽에 숨은 듯 자리 잡은 이 나라는 자유 여행을 허가하지 않고 환경세 개념으로 하루에 여행 경비를 200~250달러 내야 하는 패키지 투어만 이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베테랑 여행자 가운데서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부탄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은 약 20만명, 이 가운데 한국인 여행객은 1000명 정도라고 한다.
부탄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는 '행복'이다. 행복 지수 세계 1위.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왜 행복하다고 느낄까. 1인당 국민소득이 2800달러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이들이 왜 우리보다 행복할까. 부탄행 두르크(Druk)에어 항공기에 오르며 품었던 이 의문은 부탄을 여행하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 어쩌면 나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97% "나는 행복하다"
여행의 첫 목적지는 수도 팀푸(Thimphu). 수도라고 해봐야 인구 12만 정도의 소도시다. 긴 협곡을 따라 전통 양식으로 지은 고만고만한 건물이 이어진다. 첫 인상은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같은 여느 아시아 국가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거리는 부탄 전통 복장인 '고'와 '키라'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아이들이 거리를 뛰어다닌다. 붉은 옷을 입은 승려들은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느라 바쁘다. 길가 조그만 구멍가게에서는 코카콜라를 잔뜩 쌓아놓고 판다.
그리고 여행자와 눈이 마주치면 빙긋하며 미소를 띠는 부탄 사람들. 팀푸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고 사흘을 보내는 동안, 이들의 미소 덕분이었을까 마음 한편에는 어떤 잔잔한 일렁임 같은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거리에 울려 퍼지는 새벽 타종 소리와 함께 눈을 떴을 때, 숙소 밖으로 몰려든 자욱한 우윳빛 안개를 보며 내 속에 무언가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도하곤 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잃어버렸던 어떤 음악을 비로소 찾아 듣게 됐을 때와 비슷한 감정 같기도 했고, 손에 따뜻한 조약돌 하나를 꼭 쥐고 서 있는 듯한 기분 같기도 했다.
◇'숲 면적 국토 60% 이상 유지' 헌법에 명기
부탄에 가서 부탄을 겪어보면 이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도로는 포장 상태도 엉망이지만 서두르는 법 없는 부탄 사람들은 도로 사정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쁜 도로 사정을 탓하는 건 오직 관광객뿐이다. 히말라야에서 쏟아져 내린 풍부한 수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인도에 팔고 그 돈으로 모든 공산품을 수입해서 쓴다. 그러니 미세 먼지나 공해 따위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관광산업에서 얻는 수익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를 실시하는 재원이 된다.
여행하는 외국인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는다. 1999년 부탄의 국가 행복 지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행복을 보급’하고자 만든 ‘부탄행복연구소’ 도지펜졸 소장은 “부탄은 국민의 행복을 모든 정책 중심에 놓고 국가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어떤 정책도 ‘국민 행복’과 부합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않는다. 실제로 모든 정책은 10~15명으로 구성한 ‘국민총행복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총점 78점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 헌법에 숲 면적을 국토 면적의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나라가 부탄이다.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1955~)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의회민주주의 이양을 선택했다. 그 결과 2008년 총선을 실시해 지금은 총리가 수반이 돼 부탄을 통치하고 있다. 하루 7시간 노동도 철저히 지켜진다.
◇간절한 걸음, 행복한 얼굴
부탄은 불교 국가다. 부처가 세운 나라다. 국민의 거의 100%가 불교 신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부탄의 불교는 8세기경 인도 북부에서 태어난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가 전했다. 거리 곳곳에는 불경을 적은 깃발 룽다가 펄럭이고 사람들은 곳곳에 설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 팀푸 중앙에 3대 국왕을 추모하려고 세운 거대한 탑인 메모리얼 초르텐(Memorial Chorten)이 있는데 팀푸 사람들은 출근할 때 이 탑을 세 바퀴 돌고 퇴근할 때 다시 세 바퀴 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토록 간절한 걸음과 아득한 눈빛은 본 적은 없고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탄 여행은 주로 종(Dzong)과 사원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이루어진다. ‘종’이란 행정과 종교를 관할하는 성을 일컫는 것으로, 처음에는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해 세웠지만 지금은 행정부와 사법부, 지역 관할 사찰이 함께 들어선 부탄만의 독특한 복합 청사 역할을 한다. 스무 도시가 있는 부탄에는 과거에 쓴 것을 합쳐 종이 수십 곳 있다.
여러 종 가운데 꼭 가봐야 할 곳은 푸나카에 자리 잡은 푸나카종이다. 1637년에 부탄의 국조 샵둥 스님이 창건했다. ‘대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부탄 전역 수십 종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탁상사원은 부탄을 찾은 모든 여행자가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불교를 전파하러 부탄에 온 파드마삼바바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명상에 잠겼다. 해발 3120m 지점,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탁상사원은 부탄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시간쯤 트레킹을 해야 닿는다. 만만한 길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무거운 걸음을 떼며 이곳에 오른다.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시간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부탄에서도 단지 여행자일 뿐이었다. 마카오와 방콕을 거치는 힘든 여정을 거쳐 부탄에 왔지만 나는 그들이 가진 행복의 1만분의 1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의 삶에 단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럴 거면서 그 먼 데를 왜 가느냐 묻는다면 그냥 궁금했을 뿐이라고밖에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까치발을 하고서는 잠시 담장 너머를 엿보는 것, 여행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펄럭이는 라타 아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모두 하루라는 카드가 주어져 있다. 예전엔 참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내 손에 하루라는 카드가 몇 장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카드를 놓치지 않으려 꼭 쥐고 있지만 여행 중 차창 밖을 바라보다 보면 흘려버리고 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앉은 책상에서 졸다 보면 카드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가지고 싶지만 더 가질 수 없는 하루라는 카드. 하루에 한 장씩 꼭 사라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해야 할 것이다. 우린 점점 희미해지고 사라져가고 있으니까. 불행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이튿날, 파로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봐야겠다. 내겐 분명 내게 맞는 행복이 있을 테니까.
부탄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방콕이나 델리, 카트만두를 거쳐야 한다. 화폐는 눌트룸(Ngultrum). 1달러=약 60눌트룸. 부탄은 개별 여행이 금지돼 있다. 1일 최소 200달러 체류비를 내고 부탄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체류비에는 숙박·교통·가이드·식사비 등이 포함돼 있다.
오는 6~8월에 한국·부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부탄우호협회와 부탄문화원(02-518-5012)은 다양한 행사와 수교 프로그램을 진행·운영한다. 한국인에게는 이 기간 1일 체류비를 65달러로 낮춰준다. 부탄은 금연 국가다. 입국 때 가져간 담배는 신고해야 한다. 흡연은 지정된 구역에서만 할 수 있다. 담배를 거래하면 처벌받는다. 여행에 관한 문의는 부탄문화원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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