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윤봉길 의사, 높은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

화이트보스 2017. 10. 15. 13:28



윤봉길 의사, 높은 기개를 지닌 선비였다


길이 날릴 명성 선비의 기개 맑고
그 선비의 기개 맑고 맑아 만고에 빛나리니
만고에 빛나는 밝은 마음 모두가 학문 속에 있으니
그 모두가 배움을 행하는 데 있으므로 그 이름 영원하리라

매헌 윤봉길 의사가 열여섯 살 때 지은 '옥련환시(玉連環詩)'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1년 겨울 대한민국임시정부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축하연(천장절)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행사가 함께 진행되는 단상에 폭탄을 던짐으로써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여 조선인의 기개를 한껏 드높인 분입니다.

이날 의거는 단상에 있던 상하이 파견군총사령관과 일본거류민단장을 죽이고, 제3함대 사령관, 육군 제9사단장 등에게 중상을 입힌 엄청난 거사였지요. 당시 이 소식을 듣고 중국 국민당 총통 장개석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이를 계기로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윤봉길 의사 하면 의거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천자문》, 《소학》, 《동몽선습》을 익혔으며 열두 살 때부터는 매곡 성주록의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체계적으로 학문을 닦았고, 열여덟 살에는 《오추(嗚推)》, 《옥수(玉睡)》, 《임추(壬椎)》 같은 시집을 내기도 했지요. 윤봉길 의사가 남긴 시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고 시작하는 거사 전날 두 아들에게 남긴 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를 합쳐 모두 500편에 이르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윤봉길 의사는 올곧은 기개를 지닌 선비의 삶이 무엇인가를 터득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