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고령화에 대한 준비

남은 여생 살던 집서 살게… 日, 사별한 배우자에 거주권리 준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기사 인쇄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스크랩 글꼴 선택 글자 크게

화이트보스 2018. 1. 18. 11:14


남은 여생 살던 집서 살게… 日, 사별한 배우자에 거주권리 준다

입력 : 2018.01.18 03:03 | 수정 : 2018.01.18 04:01

- 38년만에 민법 상속조항 개정키로
자식이 집팔아 자기몫 못챙기게 매매 불가 '배우자 거주권' 도입
홀로 남은 고령의 노인들 보호… 집을 뺀 재산 50%는 배우자 몫

다카다 미치코(가명·79)씨는 일본 수도권 연립주택에서 은퇴한 남편과 단둘이 산다. 당장은 괜찮지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면 지금 사는 집에 계속 살 수 있을지 늘 걱정이다.

부부의 재산은 남편 명의의 5000만엔짜리 집 한 채와 예금 1000여만엔을 합쳐 6000만엔 안팎이다. 지금까지 일본 민법에서는 아내가 절반을 받고, 자식들이 나머지 절반을 사람 수대로 나눠 가졌다. 다카다씨의 자녀들이 법대로 당장 자기 몫을 받겠다고 나오면 다카다씨는 난감해진다. 살던 집 팔아서 자식 몫을 떼어준 뒤, 남은 돈으로 새로 살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실제 이런 사례가 있었다. 치매 앓는 아내를 보살피던 70대 A씨가 숨졌다. 부부는 주택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해 매달 수십만원씩 연금을 받으며 생활해왔다. A씨 사후 자녀들은 "집을 처분해 각자 몫을 정산하자"며 재산 분할 소송을 냈다. 결국 치매 어머니는 주택연금을 계속 받지 못하고 집에서도 쫓기듯 나와야 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 법무성이 1980년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민법 중 상속 관련 조항을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고 17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숨졌을 때, 남은 배우자가 살던 집에 계속 살 수 있도록 '배우자 거주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예컨대 고인이 아내와 두 자녀에게 3000만엔짜리 집과 현금 2000만엔을 남기고 별세할 경우, 지금까지는 전 재산 5000만엔 중 아내 몫이 2500만엔, 자녀들이 나머지 2500만엔으로 분할해서 나눠 가졌다. 자녀가 당장 상속분 분할을 요구하면 현금으로는 부족하다. 이럴 경우 아내는 원치 않게 살던 집에서 떠나야 한다. 일본에선 이 문제로 소송도 빈발한다. "상속이 아니라 쟁족(爭族)"이란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상속과 쟁족은 둘 다 일본말 발음이 '소조쿠'로 같다.

민법 개정을 통해 '배우자 거주권'이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주권은 소유권과 별도의 개념이다. 소유권과 달리 사고팔 수는 없다. 대신 소유권이 남에게 넘어가도 거주권은 소멸하지 않는다. 본인만 원하면 평생 거기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남긴 집에 어머니가 평생 살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다. 집 한 채가 재산 전부인 서민 가정의 경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자식들이 집 팔아서 자기 몫 챙기는 게 불가능해진다. 혼자 남은 배우자를 최대한 보호하는 한편, 거주권에 금전적인 가치를 매겨서 전체 유산을 분할하는 실용적인 잣대로도 쓰겠다는 게 법무성의 구상이다.

고인이 생전에 아내 앞으로 집 명의를 바꿔주면 일이 더 간단해진다. 지금까지는 생전에 배우자에게 넘긴 집도 전체 유산 분할 대상이라고 봤지만, 앞으로는 배우자에게 이미 넘긴 집은 유산 분할에서 빼기로 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자기 살 집을 확보한 상태에서, 남은 유산을 자식들과 나눠 가지면 된다는 뜻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7%로 세계 1위다. 전체 가구 네 집에 한 집이 노인 혼자 혹은 노부부만 사는 집이다(26%). 75세 이상에서는 여자 100명에 남자 63명꼴이다. 남편이 간 뒤 아내 혼자 남는 경우가 그만큼 많고, 그들 대다수가 자식과 사는 대신 혼자 살게 되는 구조다. 아사히신문은 "고인의 배우자가 안심하고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배려하는 조치"라고 보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8/20180118000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