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넘어 아프리카도 ‘新파나마병’에 멸종 위기
곰팡이 감염돼 枯死 ‘바나나癌’
필리핀 노동자가 阿 감염시켜
1400㏊ 농장이 100㏊만 남아
확산 막을 농약조차 못 만들어
저항력 강한 품종 개발 못하면
10년내 食用바나나 못 볼 수도 세계적으로 흔한 과일 중 하나인 바나나가 멸종을 앞두고 있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지 모르지만 가짜뉴스가 아니다. 바나나를 썩게 만드는 ‘파나마병’이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대륙으로 확산되면서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나나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50∼60년 전에도 파나마병이 창궐하면서 먹는 바나나 품종이 멸종을 맞았다. 일부 전문가는 앞으로 바나나는 ‘멸종위기 생물구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며, 2030년에 가면 멸종 과일로 분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나나의 암 ‘파나마병’
지난 1일 아프리카 최대 바나나 산지 중 한 곳인 모잠비크의 마타누스카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 입구. 이곳에서는 반도체 공장에서 집진실을 통과하듯 바나나 농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소독약에 손과 발을 담그는 풍경이 이제 일상이 됐다. 자동차들도 파나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소독약을 뒤집어써야 한다. 5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파나마병이 발병한 뒤로는 지금도 바나나의 건강을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영국 공영 BBC방송은 최근 “지금 아프리카는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한 대규모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나마병은 1903년 중남미 파나마에서 처음 발병되면서 이름이 붙었다. 바나나 나무 뿌리가 곰팡이 병원체에 감염되면서 잎과 뿌리가 갈색으로 변한 후 말라죽게 된다. 이 병은 한 번 감염되면 회복할 수 없고 빠른 속도로 다른 나무에 전염되면서 ‘바나나의 암’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병이 발생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농약조차 개발되지 못했다.
파나마병은 이미 1960년대 우리가 가장 많이 먹었던 ‘그로 미셸(Gros Michel)’ 바나나를 멸종시킨 바 있다. 바나나는 400여 가지의 다양한 품종이 있지만 그때까지 먹는 바나나는 그로 미셸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파나마에서 발병한 이 곰팡이균이 세계로 퍼지면서 그로 미셸의 95%가 멸종하고 재배가 대규모로 중단됐다. 바나나 업계는 대만에서 재배되던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이 파나마병에 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대량재배에 나서면서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바나나가 됐다. 캐번디시는 그로 미셸보다 맛도 없고 껍질도 두껍지만, 파나마병에 저항력을 가진 유일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신종 파나마병(TR4)의 발병
세계는 바나나를 멸종에서 구한 줄 알았다. 캐번디시의 확산으로 바나나 소비가 늘면서 많은 국가 정부들에서 바나나의 대규모 재배를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기존 파나마병의 변종인 ‘신파나마병(TR4)’이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해 태국 등 아시아로 급속히 다시 퍼져 나갔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는 신파나마병으로 바나나 나무의 5분의 1이 감염돼 생산량이 20%가량 감소했다. 2015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곰팡이균이 확산하면서 일부 바나나 농장이 격리 조치되기도 했다.
현재 아프리카의 바나나 농장을 잠식하고 있는 신파나마병은 필리핀에서 온 두 명의 이주노동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 남짓 되는 1400㏊에 달했던 마타누스카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은 100ha로 줄어들었다. 전체 직원의 3분의 2에 달하는 2700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특히 아프리카에는 바나나 재배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고, 바나나를 주식으로 하는 국가가 많아 신파나마병으로 인한 피해가 다른 대륙보다 극심한 상황이다. 모잠비크의 이웃 국가인 탄자니아도 경제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나나 재배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간다 및 콩고 국민은 바나나에서 생활에 필요한 영양분의 35%를 섭취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바나나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재배 품종을 다양화함으로써 파나마병에 저항력을 가진 품종을 개발하는 것뿐이다.
파나마병을 잡기 위한 농약 개발에도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나나 업계에서는 “새 품종 개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5~10년 후에는 전 세계의 식탁에서 바나나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바나나 농장의 경영에는 대규모 산림 파괴가 수반된다. 자연 생태계의 단순화가 새로운 질병의 역습을 주기별로 불러오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바나나의 멸종을 막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