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3.31 03:01 | 수정 : 2018.03.31 11:54
[中 수입금지로 가격 폭락… 업체들 "돈 안돼… 종량제 봉투에 버려라"]
당장 4월 1일부터 수거 안 해… 주민들 "양도 많은데 어떻게…"
서울시 "정부차원 대책 마련을", 환경부 "지자체가 알아서 할일"
최근 서울과 수도권 일대 아파트 단지에 '4월 1일부터 비닐류를 수거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이 붙었다. 그동안 비닐·스티로폼은 재활용으로 분류해 수거했다. 이제 일반 쓰레기와 함께 종량제 봉투에 담아 처리하라는 것이다. 재활용품 업체들이 "폐(廢)비닐은 돈이 안 된다"며 수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많은 양의 폐비닐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기엔 부담된다"며 불편해 한다.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는 시·구청은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발 폐비닐 대란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엔 폐비닐을 담은 봉투 수십개가 어른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이 지역 재활용 업체는 4월부터 폐비닐 수거를 중단한다고 예고했었다. 한 주민은 "오늘 아니면 처리 못 할 것 같아 집에 있는 비닐을 다 가지고 나왔다. 매일 비닐 쓰레기가 한 무더기씩 나오는데 어떻게 버려야 하느냐"고 했다.
폐비닐은 수거돼 보통 고형(固形) 연료로 재활용된다. 최근 저유가로 수익성이 떨어졌다. 재활용 업체들은 폐비닐을 가져가도 연료 제조 업체에 돈을 받고 팔지 못한다고 한다. 그나마 돈이 되는 폐지(廢紙)·플라스틱 등을 폐비닐과 함께 가져간다는 조건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맺고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해 왔다. 폐비닐 처리 비용을 폐지·플라스틱 수익으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에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중국이 지난 1월부터 환경 문제를 이유로 '재활용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다. 전 세계적으로 재활용 종이와 플라스틱 가격이 폭락했다. 재활용 업체로선 종이·플라스틱 이익이 줄어들면서 폐비닐 처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환경부는 비닐을 매입하는 업체들에 1㎏당 50원씩 지원해왔다. 한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50원으로는 인건비도 감당이 안 된다. 1㎏에 300원씩 주고 폐비닐을 소각한다"고 했다.
◇주민 "어쩌나"… 대책 없는 시·구청
시민들은 폐비닐을 재활용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쓰레기 처리 비용이 크게 늘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근 폐비닐 배출량은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과 택배 수요 때문이다. 이 제품들은 '뽁뽁이'라 불리는 비닐 등에 포장돼 온다.
'폐비닐 쓰레기 대란'이 우려되지만 지자체와 환경부는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다. 서울시 측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재활용 업체 간 폐지·플라스틱 가격을 조정하도록 중재할 예정이다. 하지만 양쪽 입장 차가 커 조정이 쉽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쓰레기 처리는 구청 업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구청에서 책임지고 처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구청도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당장 담당할 인력과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각 구청은 업체들과 만나며 "기간을 조금만 유예해달라"고 사정하고 있다. 한 서울시 자치구 관계자는 "환경부 차원에서 국가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비닐은 재활용 품목이지만 엄연히 쓰레기가 됐다. 관례적으로 민간 업체가 해오던 일이라 예산도, 시스템도 없다"고 했다.
환경부 측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 업체들이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을 주며 가져가다가 경기가 어려워지니까 못 하겠다는 것"이라며 "종량제 봉투에 재활용 가능한 비닐류를 배출하는 것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폐기물 처리는 지자체가 알아서 책임질 문제"라고 했다.
재활용 업체들은 "4월 1일부터 예정대로 안 받겠다"면서 "대책 없이 돈 드는 쓰레기를 가져가다 업체들이 하나씩 부도나면 서울시 전체가 쓰레기 바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정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울산·부산 등 지방에서도 재활용 업체들이 폐비닐 수거를 거부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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