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은 왜 어려울까? - 플라즈마 불안정성
핵융합 에너지를 ‘꿈의 에너지’라 부르는 데는 두 가지 상반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원의 풍부함, 대용량 발전, 안정성, 친환경성까지 인류가 원하는 미래 에너지의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거꾸로 그만큼의 큰 어려움이 공존한다. 바로 상용화가 힘들다는 점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 기울여온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융합 발전으로 가는 길에는 적잖은 난제들이 남아 있다. 꿈의 에너지 핵융합 발전의 상용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미해결 과제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알아보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핵융합 플라즈마 불안정성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서는 먼저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특정 공간에 충분한 시간 동안 가둘 수 있어야 한다. 질량이 큰 태양은 자신의 중력만으로 고온의 플라즈마를 충분히 잡아가두며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플라즈마 덩어리를 이루고 중심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소 핵융합 반응으로 우주공간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플라즈마를 가두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떤 재료로도 섭씨 1억 도 이상의 플라즈마를 가둘 수가 없다. 현존하는 금속원소 중에 열에 가장 강하다는 텅스텐도 6000℃를 넘어가면 기체가 되어 증발해버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자기장이나 충격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이용하는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대표적인 예가 KSTAR와 같은 ‘토카막’ 장치이다. 도넛 형태로 진공 용기를 만들고 진공 용기를 맴돌 듯이 감아드는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고온의 플라즈마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다. 전기적 성질을 띠는 플라즈마는 자기장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듯 맴돌며 움직이는 원리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는 안쪽 부분과 바깥쪽 부분 사이에 생기는 큰 압력 차이와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발생시킨 대용량의 플라즈마 전류로 인해 상황에 따라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언제나 우주 만물은 자유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가장 고요한 상태를 찾아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높은 에너지로 인해 이런 성질이 강하게 작용하는 고온의 핵융합 플라즈마를 한정된 공간에 감금하려면 외부에서 세심한 제어를 가해줘야 한다. 마치 들판으로 돌아가기 위해 울타리를 들이받으며 날뛰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카우보이처럼, 제멋대로 사방팔방 움직이는 고압의 소방호스를 움켜쥔 소방관처럼 말이다.
플라즈마 붕괴 유발하는 ‘불안정성’
초고온 플라즈마에서 관찰되는 불안정성은 크기와 형태가 다들 제각각이다. 그중에는 금세 사지거나 무시해도 좋을 만큼 영향력이 미미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애써 온도를 높이고 꼭꼭 가둬 놓은 초고온 초고압의 플라즈마를 단순한 수소 기체 덩어리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강력한 것들도 있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가 집중되고 있는 불안정성은 후자의 경우다. 특히 이들 몇몇 불안정성들은 플라즈마 성능 저하를 넘어 자칫 플라즈마 상태를 완전 소멸시키는 ‘플라즈마 붕괴’까지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초고온 초고압의 상태에서 풍선 터지듯 자기장 밖으로 밀려나오는 고열량의 플라즈마 입자들과 플라즈마 전류 형태로 존재하던 자기장 에너지의 폭주는 토카막 장치에 큰 손상을 입힐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불안정성의 원인과 제어방법을 찾는 일은 앞으로 상용화될 핵융합 장치의 안정적인 운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ITER와 같이 기존 토카막의 10배에 이르는 초대형 핵융합 장치에서 불안정성이 발생한다면 핵융합 장치 자체의 수명과 안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해 프로젝트 자체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불안정성 해결의 출발점, 자기유체역학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핵융합 과학자들은 오늘도 플라즈마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은 불안정성의 발생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자기유체역학’적 분석을 출발점으로 한다.
플라즈마가 자기장을 중심으로 무한정 회전운동을 하는 이유는 이온화된 입자들이 전기적 성질을 띠게 되기 때문이다. 플라즈마는 또 액체나 기체처럼 변형이 쉽고 흐르는 성질을 가진 유체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렇게 플라즈마처럼 기존 유체의 특성에 더해 전기적 성질까지 가진 물질들을 다루기 위한 학문이 자기유체역학 (MHD, magnetohydrodynamics)이다.
자기유체역학은 기존의 유체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던 여러 가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된 학문이다. 1940년대 스웨덴의 물리학자 알프벤이 오로라와 태양풍 같은 우주 플라즈마 연구를 위해 기초를 세운 후 점차 인공적으로 발생시킨 핵융합 플라즈마에 대한 연구로 발전했다.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고성능 컴퓨터를 통한 전산 모사가 가능해짐으로써 발전의 가속도가 붙은 자기유체역학에 힘입어 플라즈마 불안정성 현상에 대한 연구 역시 빠르게 진보를 거듭했다. 플라즈마 불안정성의 현상 자체를 연구하던 데서 고성능 핵융합 장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로는 주로 불안정성을 직접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연구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불안정성의 가장 큰 원인은 모든 만물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를 찾아가려는 성질 때문이다. 손가락 끝에 서있는 막대기는 자기가 가진 위치 에너지를 자유롭게 방출함으로써 보다 낮은 에너지 상태인 누운 막대기가 되려는 이치와 같다. KSTAR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토카막에서는 마치 손가락을 움직여 가며 막대기를 손가락 끝에 세우는 것처럼 온도, 압력, 밀도, 자기장 분포 등 핵융합 장치의 다양한 작동조건들을 수천분의 일 초 단위로 세밀하게 조절함으로써 불안정성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불안정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관련된 제어 기술의 발달을 통해 불안정성의 안정화 노력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KSTAR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만 해도 플라즈마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톱니파 불안정성(sawtooth mode)’을 전자기파를 사용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조절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런 제어 과정을 마치 TV 중계를 보는 것처럼 영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진 KSTAR는 톱니파 불안정성과 관련된 학계의 오랜 논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결국 플라즈마 제어 기술의 발달은 불안정성이 일어나는 다양한 원인들을 이해하고 각각의 원인들에 대한 해결책을 적절히 찾아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막대기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손가락처럼...
불안정성 연구의 패러다임 시프트…‘제3의 영역’
지금 KSTAR에서는 이를 넘어 불안정성 제어 연구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수 있는 ‘제3의 영역’을 탐색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KSTAR는 높은 정밀도 덕분에 해외의 다른 토카막들이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플라즈마 영역까지 탐구할 수 있다, 마치 미지의 심해에서 보물을 건져내듯이 남들이 가보지 못한 영역을 탐사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KSTAR 플라즈마 캠페인에서 처음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제3의 영역’은 불안정성에 관여하는 안정성 인자(q)가 극단적으로 낮은 곳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욱 안정적인 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조건들의 일치를 통해 이 제3의 영역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된다면 일일이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 없이 고성능의 플라즈마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막대기를 손가락 끝에 대롱대롱 매달 수만 있다면 막대기는 스스로 허공에 똑바로 서있게 되니까.
[출처] 핵융합은 왜 어려울까? - 플라즈마 불안정성|작성자 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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