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5)
그중 어떤 인연은 참으로 독하기도 해 커다란 바윗덩어리 하나가 뱃속 가득 들어차듯 사람 숨통을 죄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숨통을 죄어오는 독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상사뱀 이야기이다. 상사(相思). 글자 그대로 하면 ‘서로 생각함’이어야 하는데 상사병, 상사뱀은 ‘서로’ 생각하는 게 되지 않아 맺혀 버린 마음의 울부짖음을 이야기한다.
상사병에 걸려 죽은 시주 중, 구렁이로 환생
![춘천 청평사 삼층석탑(일명 공주탑). [사진 문화재청 홈페이지]](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23/dca6e0d1-2df9-48d0-a401-f68bbc7747f2.jpg)
춘천 청평사 삼층석탑(일명 공주탑). [사진 문화재청 홈페이지]
동네에 시주를 청하러 나섰던 중이 한 처녀를 보고는 그만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중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구렁이가 된 중은 처녀를 찾아가 처녀에게 들러붙어 버렸다. 처녀의 온몸을 칭칭 감고, 꼬리는 처녀의 사타구니에, 입은 처녀의 얼굴에 댄 채 처녀가 흘리는 눈물을 받아먹으며 지냈다. 구렁이는 무슨 수를 써도 떼어내기 힘들었다.
나중엔 동네 사람들이 전부 모여들어 잡아당기고 힘을 써 보았지만 도무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처녀는 꼬질꼬질 말라가기만 했고, 구렁이는 처녀가 머리를 빗거나 오줌 누러 갈 때만 잠깐씩 떨어졌다가는 금세 다시 달라붙곤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한 몸이 되어 버린 구렁이와 처녀를 산속 연못에 데려다 놓고 상사풀이를 했다. 아무리 해도 구렁이가 꼼짝하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구렁이와 처녀를 함께 연못 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도 없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몸이 달아 들러붙으니 말이다. 이건 물론 처녀 입장에서다. 그러면 중 입장에서는 또 어떨까. 어느 날 우연히 한 처녀를 보게 되었는데, 자기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는 거다. 이야기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중이니까 염불하고 수행하면서 자기 마음을 다스리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을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중이 그렇게 수행에 성공하는 방향으로 가면 상사뱀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 중은 현실의 수행하는 스님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상사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진짜 스님들이 좀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파계승을 희화화하는 내용도 아니고, 욕망이 억눌린 대상을 이야기할 때 쉽게 끌어올 수 있는 캐릭터일 뿐이다.
중 이야기가 불편하다면, 춘천 청평사에 얽힌 전설도 있다. 중국 당나라의 공주를 사모하던 젊은이가 죽어 뱀이 되었는데, 공주의 몸을 휘감고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는 이곳저곳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며 다니다가 청평사에까지 오게 됐다.
뱀은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은 뒤에야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고, 공주는 청평사 아래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돌아갔다. 그 탑이 공주탑이라고 불리고, 청평사 앞에는 공주와 상사뱀 전설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 있다. 이 경우엔 삿된 욕망에 대한 준엄한 종교적 꾸짖음의 의미가 좀 더 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공주와 상사뱀 조형물. [사진 한국관광공사]](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4/23/c31437d6-8d03-4ead-a3b9-7a7e0d6d7fd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