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에 있는 신젠타 슈타인 연구소와 프랑스에 있는 슈나이더 농장. 사진 이종현 기자, 블룸버그
스위스 바젤에 있는 신젠타 슈타인 연구소와 프랑스에 있는 슈나이더 농장. 사진 이종현 기자, 블룸버그

종자와 작물보호제(농약)로 대표되는 글로벌 농화학 업계는 오랜 기간 치열한 경쟁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따르면 글로벌 농화학 업계의 빅 6(다우케미컬·듀폰·몬산토·바이엘·바스프·신젠타)는 2015년 기준으로 세계 종자 시장의 62%, 작물보호제 시장의 75%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빅 6는 종자 특허권을 공유하고 작물보호제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 강력한 카르텔을 구축해 후발 주자를 견제했다.

그런 글로벌 농화학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16년 전후였다. 중국의 최대 화학 회사인 켐차이나는 2016년 2월 신젠타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신젠타 주가는 주당 약 390스위스프랑 정도였는데, 켐차이나는 주당 약 480스위스프랑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시가보다 20% 이상 비싼 가격을 쳐준 것이다. 전체 인수 금액은 430억달러(약 49조원)에 달했다. 신젠타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신젠타 글로벌 임원을 맡고 있던 조너선 파 신젠타 작물보호제 사업부 사장은 “몬산토도 그전에 인수 제안을 했지만 조건에 맞지 않아서 성사되지 않았다”며 “켐차이나는 신젠타의 본사를 계속 스위스에 두고 기존 경영 계획을 인정해주는 등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해 9월에는 바이엘이 바스프와 경쟁 끝에 몬산토 인수에 성공했다. 두 회사의 인수·합병 작업은 올해 6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쟁 당국이 최종적으로 합병을 승인하면서 마무리됐다. 바이엘이 몬산토 인수에 쓴 돈은 630억달러(약 71조원)였다. 앞서 2015년 말에는 다우케미컬과 듀폰이 합병했다. 바이엘의 일부 사업 부문을 인수한 바스프까지 합치면 글로벌 농화학 업계 빅 6가 3년 만에 빅 4로 재편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농화학 업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각자도생하고 있던 글로벌 농화학 업계의 공룡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한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지난 7월 하순, 농화학 업계 변화의 진원지 중 하나인 신젠타 본사가 있는 스위스 바젤을 찾았다. 신젠타는 작물보호제 시장에서 1위, 종자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농화학 업계의 강자 중 하나다.

신젠타 본사가 있는 스위스 바젤에서 차로 40분 정도를 가면 슈타인 작물보호제 연구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느 중부 유럽의 풍경과 마찬가지로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들판에 현대적인 연구소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서 있었다. 신젠타는 전 세계에 140여 개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5개의 핵심 R&D 센터가 있는데, 슈타인 연구소도 핵심 센터 중 하나다. 100여 명의 박사급 연구원을 포함해 모두 300여 명의 직원이 매일 이곳에서 작물보호제를 개발하고 있다.

연구소 내부는 예상과 달리 평온했다. 5000㎡에 달하는 온실에는 방마다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보니 해충도 함께였다. 작물보호제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온실마다 다양한 농작물과 해충을 함께 기르고 있는 것이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작물보호제 실험을 위해 매년 1000만 마리의 해충과 1000만 종의 농작물을 연구소 차원에서 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물보호제 하나 만드는 데 8년 이상 걸려

하지만 연구소가 처한 상황은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구소 곳곳을 소개해준 윌리 리그(Willy T Rueegg) 연구소장은 새로운 작물보호제를 개발하는 일이 갈수록 쉽지 않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작물보호제가 없으면 농작물 생산량의 40% 정도는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기후 변화에 발맞춰 계속해서 새로운 작물보호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하나의 작물보호제를 만들기 위해 8~10년 정도 걸린다. 10만 종 정도의 작물보호제 후보 물질을 찾으면 그중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건 단 한 종에 불과하다. 작물보호제에 대한 규제가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도 개발비 부담을 키운다. 윌리 리그 연구소장은 하나의 작물보호제를 개발하는 데 보통 2억6000만달러 정도가 든다고 설명했다.

비용 부담은 글로벌 농화학 업계에 대대적인 인수·합병 바람이 불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국제 곡물 가격은 2011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세다. 국제 선물 시장에서 밀 1t의 가격은 2011년 298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55달러로 떨어졌다. 옥수수 1t은 같은 기간 267달러에서 138달러로 하락했고, 대두 1t 역시 485달러에서 357달러로 하락했다.

곡물 가격은 하락하는데 연구·개발 비용은 늘어나다 보니 기업들이 인수·합병으로 비용을 줄이려 하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하면서 절감한 비용이 1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신젠타만 해도 2014년 매출액이 151억달러였는데 2015년에 134억달러, 2016년 128억달러 등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였다.


신젠타 M&A 이후 실적 개선 성공 

그렇다면 신젠타는 왜 하필 중국과 손을 잡았을까. 그리고 중국은 왜 신젠타를 원한 걸까. 신젠타와 켐차이나(중국)가 손을 잡은 건 서로에게 윈윈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중국은 매년 곡물 자급률이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곡물 자급률은 82% 수준으로 2013년보다 8%포인트 하락했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지 면적은 세계 경지 면적의 9% 정도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심각한 식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원래 중국은 유전자변형작물(GMO)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였는데, 2013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식량 자급자족 문제를 우려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GMO 산업을 키우라고 지시하면서부터다.

신젠타는 GMO 분야에서 선두권에 있는 기업이다.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을 활용해 작물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기술이 세계 최고다. 중국은 신젠타의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GMO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반대로 신젠타는 세계 최대 농산물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신젠타는 인수·합병 이후 중국 사업이 본격화한 올해 상반기에 16억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미국 등지에서는 신젠타와 중국의 연합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조지프 포디 뉴욕대 교수는 켐차이나가 신젠타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이후 뉴욕타임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안전한 방법으로 유전자 변형을 진행할지, 또는 특정 국가에는 종자 판매를 거부하지는 않을지, 여러 가지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신젠타 본사에서 만난 관계자는 이런 우려에 고개를 저었다. 켐차이나가 신젠타를 인수했지만 기존 조직과 경영진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고 책임 경영을 이어 갈 수 있게 해준 만큼 중국 정부가 GMO 기술을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라 브랜드 신젠타 지속가능성 담당 최고책임자(CSO)는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지금 농업 현대화를 위해 기술을 혁신하고 농약 사용을 줄이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신젠타는 이런 흐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노력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너선 파 사장 역시 “신젠타는 전 세계 4억5000만 가구 이상의 농가와 함께하고 있다”며 “농민들이 안전한 식량을 생산해서 번영할 수 있게 돕는 게 우리의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스위스 북부의 국경 도시인 바젤 시 외곽을 나서면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이 바로 나타난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 덕분에 신젠타와 협력하는 농장들이 프랑스와 독일 곳곳에 있다.

프랑스와의 국경을 넘어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면 광활한 평지에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는 슈나이더 농장이 있다. 이 농장은 120㏊ 규모로 신젠타가 진행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 솔루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생물 종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농장 주변에 화분 매개 곤충(꿀벌을 비롯해 꽃가루를 이동시켜 농작물이 자라는 데 도움 주는 곤충)이 자랄 수 있는 서식지를 조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스타트업 인수해 기술력 업그레이드

사실 슈나이더 농장에서 놀라운 건 지속 가능한 농업 솔루션보다 120㏊ 규모의 농장을 주인 혼자서 관리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농가당 평균 경지 면적은 1.5㏊ 수준이다. 한국 농장 평균의 80배 정도에 달하는 면적을 프랑스 농가에서는 혼자 관리하는 셈이다. 이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짓자 신젠타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500㏊짜리 농장을 한두 명이 관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농장 관리를 위한 디지털 프로그램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덕분”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농화학 업계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갈수록 농경지 면적은 줄어들고 농업 종사자의 고령화 문제도 심화될 전망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구 한 명당 농경지 면적은 1961년 0.37㏊였는데 2013년에는 0.19ha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세계 인구수는 2025년 80억 명, 2040년 90억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농사지을 땅과 농사지을 사람은 줄어드는데,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은 늘어난다. 농업의 최대 화두가 생산성 향상이 된 이유다.

디지털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걸 놓고 ‘디지털 파밍’ ‘스마트 팜’ 등 여러 용어로 부르는데,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농작물에 대한 빅데이터를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신젠타 바젤 본사에서 만난 마르코 이센만 신젠타 디지털 프로그램 총괄은 “농업에서는 그동안 기계화, 화학방제라는 혁명적인 분기점이 있었는데 디지털 기술이 또 다른 혁명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젠타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농장을 관리하는 애그리에지(AgriEdge)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신젠타는 미국 내 1400만에이커(5만7000㎢) 규모의 농장에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농장 곳곳에 센서를 설치해서 농작물이 얼마나 자랐는지 병해충 피해가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어떤 영양분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농장 주인은 어떤 종자나 비료를 써야 할지 판단하고, 작물보호제를 어디에 뿌리고 어디에는 뿌리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스위스 바젤의 신젠타 본사와 슈타인 연구소,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슈나이더 농장. 사진 이종현 기자, 블룸버그
스위스 바젤의 신젠타 본사와 슈타인 연구소,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슈나이더 농장. 사진 이종현 기자, 블룸버그

신젠타를 비롯한 글로벌 농화학 업체들은 첨단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계속해서 기술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예컨대 신젠타가 올해 인수한 팜샷(FarmShots)이라는 스타트업은 위성 이미지를 통해 농장의 상황을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센만 총괄은 “과거에도 위성 이미지나 센서 기술은 있었다”며 “중요한 건 이런 기술이 대중화하면서 일반 농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의 민주화’가 농업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며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문제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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