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카라코룸에서 고비사막 거쳐 알타이산맥까지 학술‧문화‧자연 체험
몽골은 사막의 바다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거친 대자연을 간직한 지구 상 마지막 오지다. 우리 답사단은 지난 2010년부터 3차에 걸쳐 32일간 몽골지역의 약 9,000km를 답사하면서,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풍광 속에 우리 민족의 자취를 확인한 바 있었다. 총 34명의 단원이 참가해 6월 17일부터 27일까지 11일간 진행한 이번 4차 답사에서도 총 거리 2,780km를 이동하며 수백km 반경에 분포된 수많은 대형 적석총들을 통해 한국과 몽골 민족의 동질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적석총은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 집안시 환도성과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는 적석총의 양식과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또한 다얀산(2,760m)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수십 기의 고인돌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인 성과 외에 몽골의 문화와 자연을 한껏 체험할 수 있는 답사였다. 미니고비(니생다사하)사막의 황금빛 모래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에르덴주사원, 웅장하고 수려한 알타이산맥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풍광이 눈을 즐겁게 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거칠고 황량한 땅이었지만,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카라코룸에서 답사 시작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미니고비사막이었다. 이 모래사막은 항가이산맥에서 불어온 북동풍이 고비사막 평원을 150km 정도 지나며 머금은 모래가 오르혼강 건너 산트산에 막혀 쌓인 것이다. 폭 4km, 남북으로 길게 100km로 초승달처럼 형성돼있다. 햇살에 고운 모래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이곳에서는 낙타 타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많은 인원이 동시에 타려 하니 여러 집에서 낙타를 몰고 나와 긴 대열을 이루어 모래와 어울려 장관을 연출했다. 막상 낙타를 타보니 무척 높고 흔들림이 많아 떨어질까 두려웠다.
카라코룸 시내로 들어와 카라코룸박물관을 견학했다. 카라코룸은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가 1228~1238년에 건설한 몽골제국의 수도로, 이후 울란바토르로 수도를 옮기자 폐허가 됐다. 카라코룸을 기점으로 고비사막과 알타이산맥을 넘어 세계를 지배했던 왕궁의 위용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투르크박물관(호쇼 차이담 소재. 732년에 건립된 돌궐의 3대 비석인 퀼 테긴Kultegin비가 있다)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오기 호수 주변에 구제역이 발생해 출입할 수 없었다. 투르크박물관에는 터키 민족의 이동을 증명하는 비석이 있는데, 터키에서 비석 자리에 박물관을 세우고 도로를 건설했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1585년에 건설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에르덴주Erdenezuu사원을 찾았다. 108개의 스투파Stupa가 둘러쳐진 성문을 들어가니 여러 채의 사원 곳곳에 활불과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몽골인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서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곤함이 드러났다. 에르덴주사원은 대초원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거대한 크기와 화려한 외관의 예술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비사막 넘어 알타이 산맥에 들다
고비사막으로 들어가는 길은 건조하고 메말라 있어 몹시 힘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먼지와 더위로 길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니 쉽지 않았다. 이따금 저지대 습지 지역을 지날 때 민들레와 이름 모를 꽃이 양탄자처럼 낮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주변에 가끔 적석총이 보이는데 뚜렷하지 않다. 그러다 하이르항돌랑을 지나는데 우측 언덕에 적석판석묘(청동기 BC 800년. 중국 적봉 우하량 유적에 대량으로 산재)가 여러 개 보여 잠시 둘러봤다. 이후 보고자 했던 샤르팅죠 판석묘(E45°54′59″, N101°39′18″, 1,939m)를 찾으려 했으나 선발대와 후발대가 엇갈려 지나쳐야 했다. 도시가 아니면 통화가 되지 않는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일 최종기점에서 합류한 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운전사에게 선두차를 앞질러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고비사막 횡단 길은 115km는 포장도로이고 285km는 비포장 구간으로 몽골의 진수인 고비사막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이 길은 칭기즈칸의 서역 정벌 길로, 동서 교류의 장이며 문화의 이동로다. 4년 전에 왔을 때 알타이시 부근의 도로만 포장됐었는데, 길 곳곳에서 도로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고비사막 연결도로가 수년 내로 포장이 완료될 것 같다.
이 지역은 고비알타이사막으로 여러 개의 저지대 호수가 있는데 답사단은 그중 제일 큰 버엉차강노BuunTsagaan호 위쪽 길을 지나갔다. 이 호수는 항가이산에서 발원한 염호로 호수 둘레 69km, 전체 하천 유역 둘레 1,000km, 길이 연장 300km로 큰 그릇같이 물을 담아내는 사막의 젖줄이다. 하지만 답사 당시에는 가뭄으로 바짝바짝 말라갔다. 가늘게 흐르는 강물이 무척 안타까웠다.
몇 시간을 달려도 똑같은 풍경이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고비사막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 곳인지 가끔 보이던 게르조차 보이지 않는다. 신기루와 싸우며 달리는데 모래 먼지가 엄청나다. 모든 생물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늠름한 모습의 쌍봉낙타가 유유자적 무리 지어 다닌다.
‘어머니의 산’, 하삭트하르항산
알타이시는 몽골 서부를 잇는 기점으로 작고 아담한 오아시스 도시이다. 거리에 스키타이 양식의 대표적인 문양인 청동 말 동상(BC 3~7세기)이 알타이시의 상징으로 설치돼있다. 알타이박물관 전시물은 4년 전과 동일한 것 같다. 방명록을 보니 마지막 답사 때의 방문 기록이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알타이 시장에 들러 구경하고 알타이산맥의 지맥으로 ‘어머니의 산’이라는 별칭을 가진 하삭트하르항산(3,579m)으로 출발했다. 큰 산을 끼고 도는 길이라 거리는 75km에 불과하지만 무척 험해 시간이 지체됐다. 가는 길 주변에 40~50여 기의 적석총이 산재해 있어 일부 눈에 띄는 것만 줄자로 크기를 재고 기록했다. 산 입구에 들어서니 차가 고개를 넘지 못했다. 차를 밀어서 고개를 넘었다. 험한 산이라 어쩔 수 없다.
양고기 허르헉을 준비하는 사이 답사단은 하삭트하르항산으로 들어갔다. 나무숲과 시원한 계곡수가 나오는 좁고 긴 협곡 우측 바위에 큰 구멍이 3곳이 뚫렸는데 자궁 바위라고 한다. 그 밑에 7곳의 샘이 나오는데 물맛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전망이 확 트여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타이시르까지 가는 길은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아 걱정했다. 막상 진입하니 길이 희미하고 험하지만 통과하기에는 무난했다. 연속 3일째 비포장도로를 달려 피곤했다. 가는 길에 자우항강 줄기가 가늘게 나타난다. 이 강은 항가이산 서부에서 발원해 울리아스타이를 거처 몽골 서부 저지대 하이어가스호수(둘레 240km)로 흘러든다. 강의 길이가 연장 540km나 되는 큰 강인데, 가뭄으로 물줄기는 가늘었다.
쉴루스테는 타이시르에서 65km 떨어져 있으며, 고비사막을 벗어나 항가이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가는 도중에 게르나 양, 낙타조차 한 마리 없는 척박하고 험한 땅이다. 요동치는 비포장도로가 여러 갈래로 나있어 헤매기 좋은 루트인데 역시 후미 차량이 따라오다가 사라져버렸다. 쉴루스테 마을에 도착해 기다리니 후미 차량이 30여 분 뒤에 나타났다. 사막에선 약간의 진행 방위각이라도 차이가 나면 전혀 다른 길이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모여 나담 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이곳에서 북쪽 길 100km는 작은 하천이 연결되어 수량이 풍부하고, 산의 북동쪽 사면에 하트 모양의 나무가 많이 자라는 아름다운 U자 계곡에 대형 적석총 100여 기가 분포돼 있었다. 훈(흉노)족 왕의 무덤을 찾아서 계곡을 천천히 지나가면서 둘러본다. 크고 작은 계곡과 평원을 지날 때마다 대형 적석총이 곳곳에 있다.
지름이 100m가 넘는 이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일부 적석총은 발굴된 흔적이 있다. 측정을 병행하며 수십 기의 적석총을 둘러보았다. 차강하이르항마을 가운데 위치한 적석총은 주민들이 소중히 여긴 탓인지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민족의 기원에서 천제를 올리다
척박한 도로를 달려 울리아스타이시에 도착했다. 이곳은 옛 훈족의 수도로, 첩첩산중 사막에 위치해 접근조차 어렵다. 시립박물관에서 이 지역에 살았던 유목민의 삶과 역사를 배운 뒤, 항가이산맥 최고봉이자 ‘가장 젊은 하늘’이라는 뜻의 오트공텡게르Otgontenger산uul(4,021m) 옆에 있는 다얀산의 천제단으로 출발했다.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의 수량이 많아, 하천 주변으로 게르와 양떼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천제단의 위치는 산상 호수 2개의 가운데 산 정상에 위치한다. 이정표가 없어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니, 아래쪽 호수 뒤쪽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제주도 오름처럼 생긴 다얀산은 2시간 정도 올라야 하는 큰 산이다. 발아래는 솜다리꽃(에델바이스)과 이름 모를 꽃이 만발했다. 가까워 보이는 산이지만 천천히 올라야 한다. 여러 곳에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이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과 동일한 양식이며, 해발 2,700m 위치해 있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고인돌인 것 같았다.
산에 오르니 항가이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트공텡게르산의 만년설이 보인다. 산 아래로는 초원의 바다를 품은 대지에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건너편 산상 호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양떼, 게르가 평화롭게 보인다.
다얀산 천제단은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는 곳으로 몽골 국가에서 5년마다 천제를 지낸다.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제단으로 신성한 산이다. 몽골 사람들이 평생에 한 번은 와서 기도하는 성지다. 답사단도 제물을 올리고 5배를 하면서 천제를 지냈다.
다음날, 솔롱고티얀 고개를 넘어 평원으로 내려왔는데 도로 우측 멀리에 작은 비석이 하나 보였다. 조사해 보니 적석총은 이미 발굴됐고, 사슴돌 비석(높이 1.35m, 앞뒷면 30㎝, 측면 26㎝)의 음각이 뚜렷하게 보인다. 탁본을 뜨자 알 수 없는 선과 굵은 띠와 작은 띠 사이에 태양, 달, 별 28수, 말 2필, 멧돼지, 사슴, 양, 염소, 아이벡스, 칼, 활, 독수리 등이 보이며, 윗돌은 별을 그려 놓은 것으로 추정됐다. 하단 띠 아래는 사람, 활, 농기구, 도끼, 칼 등과 알아볼 수 없는 그림들이 있었다. 이 비석은 문자가 없던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100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동물이 고루 그려진 것은 모든 답사를 통틀어 몽골에서 본 수많은 비석 중 최초였다.
이후 이동한 테르한차강노르White lake 호수는 화산 활동에 의하여 생긴 자연호수로, 길이 16km 폭 4~10km로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천상의 호수다. 호수 주변의 작은 용암굴(탄생 굴)들을 본 후 인근 호르고화산을 찾아 두 시간 정도 트레킹을 했다. 이 화산은 사화산으로 해발 2,240m에 분화구는 지름 200m, 깊이 100m로 당장 폭발할 것 같은 위압감을 줬다.
포장길로 나와 30km 달려 도로변에 있는 촐루트협곡에 갔다. 평원에서 강물에 의한 협곡이 생기는 과정이 한눈에 보인다. 지형학 사전을 보는 것 같다. 답사 내내 몽골 서부지역이 가뭄에 시달렸는데, 항가이산맥을 넘으니 멀리서 구름이 몰려오면서 초원 이곳저곳에 축복의 비가 내린다.
타이하르촐로 바위에 도착하자 강풍이 몰아치면서 세찬 비가 내린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 바위는 초원에 솟아 있는 20m의 거암으로, 위대한 영웅(바타르)이 나타나 타이하르촐로 꼭대기에서 바위를 던져 거대한 뱀을 죽이고 백성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답사 끝마쳐
답사를 마치고 카라코룸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간다. 끝없는 평원을 달리며 사방이 탁 트인 초원과 사막의 멋진 풍광이 차창을 스친다. 풍광이 좋은 장소에서 적당히 쉬면서 가야 한다. 대평원을 달리다 보니 지형의 변화가 없어 졸음운전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뒤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수염도 깎지 못하고 입술이 터지고 목이 쉬어 몰골이 엉망이다. 울란바토르 시내 관광을 위해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갔다. 정부청사 건물 가운데에는 세계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의 동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맑고 청명한 하늘과 많은 사람이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덥지만 상쾌하다. 정부청사 지하에 있는 갤러리, 국립역사박물관, 복드칸 왕궁, 간등사, 이태준기념관에서 참배하고 바쁘게 시내 관광을 마쳤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지난 11일간의 여행을 뒤돌아봤다. 사막과 초원의 바다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대자연을 품은 지구 상 마지막 오지, 성스러운 땅 몽골. 그리고 이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우리 조상들의 자취까지. 아름다운 풍광에 감동하고, 역사적 발견에 전율한 뜻 깊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