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대법원장 압수수색 파장
양 전 대법원장 외에 검찰이 압수 수색한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모두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1년부터 작년 초까지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했던 사람이다. 행정처장은 법원 전체의 인사·예산 업무를 총괄하는 대법원장 핵심 보좌 기관인 행정처를 이끄는 자리다. 검찰이 이들에게 두고 있는 주된 혐의는 직권남용죄이다. 헌법은 판사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상고 법원 도입을 위해 대법원과 하급심(1·2심) 재판부를 압박해 정권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 하는 '재판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들고 있는 대표 사례는 일제 강제징용 사건이다.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이 사건은 2013년 대법원에 다시 올라왔다. 앞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일본 기업들이 반발하면서 사건은 재상고됐다. 대법원은 한 번 선고한 이 사건을 아직 결론 내지 못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이 사건 선고를 미뤄주길 원하는 청와대의 의향을 감안한 결과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재판 거래 의혹에서 직권남용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검찰이 재판 거래가 실제 있었다는 근거로 내세우는 행정처 내부 문건은 검토에서 끝나고 실행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권한을 가진 사람이 부하 직원 등을 실제 압박하고, 또 의도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검토에 그치거나 결과물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일제 강제징용 사건의 경우 청와대는 이 사건 선고를 늦추거나 전원합의체로 넘겨 달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긴 것은 지난 7월 김명수 대법원이었다. 대법원이 사건 선고를 늦춰준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국제법 문제 등 사건 쟁점이 많아 미뤄진 것일 뿐"이라는 법원 내부 증언이 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가 법원에 의견을 전달한 것 자체로는 직권남용죄가 안 된다"며 "이를 전달받은 사법부 수뇌부가 실제 재판에 개입했는지, 전교조 등 일부 법원 판결이 이런 개입에 의한 결과인지를 검찰이 분명히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가 헌정사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만 문제 삼는 검찰의 (대법원)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행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이번 수사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이번 수사로 이제 대법원장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직권남용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흔드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재판 거래라는 의혹 자체가 확인된 게 아니었다. 의혹 부풀리기가 심했다"며 "그사이 사법부는 국민의 불신을 받으며 만신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