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협정 연구가' 이원덕 교수가 본 배상 판결 의미와 파장
대법원이 지난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의 핵심은 '일제 불법 지배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1965년 국교 정상화의 전제로서 타결된 '청구권 협정'의 근간이 무너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31일 국민대 일본학과 이원덕 교수를 만나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파장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한·일 협정 연구가로 2005년 정부 한·일 회담 문서 공개 당시 '문서 심사반'으로 활동하면서 156권·3만5354쪽에 달하는 양국 회담 문서를 분석했다.
"법조계·학계에서 파기환송심이 그대로 인정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다. 현실적으로 대법원 소부 판결을 전원합의체에서 다시 뒤집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최근 재판 거래 의혹과 사법 행정권 남용 수사가 이뤄지는 시기에 재판이 진행돼 대법원이 국민 정서와 여론을 자극하는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판결의 의미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법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다. 과거 영국과 네덜란드가 식민지에서 발생한 반인도적 학살 행위에 대해서 케냐와 인도네시아에 배상 판결을 내린 적이 있을 뿐 식민 지배 자체의 불법성과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경우는 없다."
―독일이 폴란드·체코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한 사례가 있다.
"독일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만들어 소위 전범 기업들과 기금을 조성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에 준하는 위로금을 줬다. 법적 배상이 아니었다."
![한·일 협정 연구가인 국민대 일본학과 이원덕 교수가 31일 집무실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사건 재상고심 판결의 의미와 파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11/01/2018110100344_0.jpg)
―대법원 판단에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한·일 회담에는 배상 요구가 포함돼 있었다. 다만 일본과 승전연합국 48국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한국이 조약 당사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배상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강화조약이 규정한 후속 조치로 청구권·재산권 협상을 하면서 한국은 일본에 배상·보상·청구권이 뒤섞인 요구를 하게 됐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 경제적으로 국민소득 100달러가 안 되는 최빈국에 남북 관계에서도 열세였다. 한국 입장에선 대일 외교를 돌파구 삼아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선택을 한 것이다. 협정이 과거사 청산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이 협상을 했어도 그 이상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법부가 청구권 협정을 무력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관들이 하늘에 있는 신선 입장에서 본 것 같다. 사법부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분들은 국내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고 돼 있고, 청구권 협정에는 불법이란 말이 없으니 그 차이를 발견하고 지적하는 건 쉽다. 그러나 국제법과 국제정치 현실까지 고려했다면 이런 판단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사법부의 논리로만 보면 이제 식민 지배 35년 동안 있었던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되는 순간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1965년 한·일 협정 체제의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 행정부의 책임이 무거워졌다."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거스를 수도 없지 않나.
"사법적 판단이 국가 외교 행위를 100% 규정할 수 없다. 외교의 주체는 행정부다. 대법원 판결을 '식민지에서 해방된 신흥 국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가 정통성을 확립했다'는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이 판단을 외교 행위로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상 책임을 인정받았어도 실제로는 배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기껏해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 기업에 압류 조치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한·일 모두에 마이너스인가.
"우리 정부는 '도덕적 우위에 서서 과거 청산을 요구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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