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랑은 결혼 후 신라에 위기가 찾아오자, 남편에게 당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라고 지시한다. 결국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합병하는데, 이때 향랑은 집안에서 작전을 지시한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거듭난다. 결국 향랑은 왕실 여인들의 스승이 되고, 사람들에게 ‘모사(母師)’라 불리게 된다. 나라에 도움을 주는 어머니이자 스승, 이것이야말로 향랑이 진정으로 원했던 평판이 아니었을까. 향랑에게 ‘열녀’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규정해준 것이었고 죽은 후에 받은 상처뿐인 명예에 불과했다. 따라서 향랑은 새 삶을 살기를 원했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전혀 다른 여자로 태어났다. 또 현생에서의 열녀 타이틀에 연연하기보다 전혀 다른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 여성이었다.
이후남 전주대 강사·국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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