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을 농업에 종사해 온 박명상(67) 씨. 박 씨는 시설하우스의 최고 권위자다. 20세 때부터 농사일을 시작해 왔다고 밝힌 그는 지금도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농사’라고 답했다. 하루 일과는 농사일에서 농사일로 끝난다는 그는 집과 시설하우스 그리고 교회다. 장로라는 직책을 가질 정도로 신앙생활 역시 농사일에 버금갈 정도로 그에겐 어김없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일요일은 아예 교회에 가기 때문에 농사일을 다른 사람(외국인)에게 맡긴다”고 박 씨는 진언했다. 그가 시설하우스의 최고 권위자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은 면내에서 가장 먼저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이다. 농사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인생의 전부다”라고 말했다. 반평생을 농사일에 종사했고, 농사를 통해 새로운 삶도 영위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농사를 통해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를 시켰다며 그야말로 농부라는 수식어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농군이었다. 박 씨는 지금도 어떤 농사를 지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어 오늘의 선진농업을 이끌어 나갈 주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농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가족으로는 부인과의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편집자 주>
-다음은 박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바나나 재배 시작하게 된 계기(동기)는? =농사는 곧 소득과 직결된다. 농민이면 누구나 당해연도에 작물을 심어 많은 소득을 올리려고 애를 쓴다. 바나나 재배 시작 전에는 파프리카를 재배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파프리카의 재배면적이 늘어나면서 과다 재배됐다.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적자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동남아 지역에 바나나 나무가 바이러스(파나마 병)에 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여기에 아이디어를 내고 인근 진주와 전남 해남에서 키우고 있는 바나나 묘목을 구입해 바나나를 재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엇보다 나(박 씨)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대체작목을 심어면 지금의 파프리카 재배보다 소득이 다소 향상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이 날 현재까지는 바나나 재배와 파프리카 재배 후 수익은 거의 비슷하다.
▲언제부터 재배를 시작했나?=지난 2016년 9월이다.
▲그래서 어느 지역의 바나나 모종을 식재했나 =진주와 전남 해남에서 가져온 모종을 다 식재했었다.
▲지금은 어떤 모종을 사용하나 =전남 해남에서 가져온 모종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종을 식재한 이후 바나나 크기가 최고 4m에 이르기 때문이다.
▲진주지역의 모종은 왜 사용하지 않고 있나 =바나나 크기가 5m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시설하우스의 높이에 맞지 않아서다.
▲그럼 맨 처음에 식재된 진주모종은 어떻게 했나 =모종 식재 후 크기가 하우스 내 높이보다 더 커서 모두 파쇄를 시켰다.
▲바나나 재배 성공 확신했나.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시작을 했기 때문에 성공에는 저심이 있었다.
▲재배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무엇인가 =모종 식재 후 곧바로 퇴비를 살포하는 적업을 했다.
▲그 이후의 작업은 어떤 일이 있나 =없다. 바나나는 한번 모종을 식재하면 더 이상 관리가 크게 필요하지 않는다.
▲결국 인력이 많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 바나나를 재배해 보면 알 수 있다.
▲초기 투자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많이 들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진주와 전남 해남에서 가져온 모종으로 500여만 원 정도 소요됐다.
▲실내 온도는 어느 정도인가 =영상 15도 정도 맞추고 있다.
▲파프리카 재배온도는 어떻게 되나 =영상 17도 정도다.
▲실내온도가 차이가 나면 투자비용도 줄어든다. 결국 바나나 재배로 실내온도를 2도 낮추었다. 연료비가 적게 들었나. =그렇다. 비용측면에서 많은 수익이 발생했다.
▲재배 면적은 =200평 규모다
▲앞으로 면적을 확대할 계획이 있나. 있다면 어느 정도. =있다. 한 800평 정도로 현재보다 4배 정도 많이 할 계획이다.
▲현재 바나나 묘목 수는 =200주 정도다.
▲묘목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 왜냐면 바나나 묘목은 다년생이다.
▲일년생이라는 것은 =바나나 나무는 한번 꽃을 피운 뒤 열매를 맺고 나면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러면 한번 꽃을 피운 바나나 나무는 어떻게 처리하나 =자른다. 그리고 옆 부분 부리에서 새로운 싹(묘목)이 돋아난다.
▲바나나 재배기술 어디서 공부했나. =특별히 공부를 한 것은 없다. 농촌진흥원이나 인터넷이나 주로 서적을 통해 독학을 했다.
▲공부 재배현장에 도움을 받고 있나 =도움이 된 것 같다. 왜냐면 독학을 하지 않았다면 바나나 재배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것을 가장 많이 도움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농촌진흥원이 간단하게 설명해 놓은 바나나 재배방법이었다.
▲올 해 첫 수확의 기쁨을 맞았다. 그 소감을 이야기 해 달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시 첫 모종을 식재해 놓고 아무런 기미(꽃 피움)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차례 바나나 재배를 포기했었다. 그러던 중 재배지에서 바나나 꽃이 땅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나무를 처다 보았을 때 열매가 맺어 있었다. 그 이후 수확을 하는 기쁨을 안았다. 한 나무에서 25kg이나 수확을 했었다. 더 큰 송이는 35kg정도였다.
▲판매는 어떻게 했나 =사실상 판매가 쉽지 않았다. 도내 최초로 바나나를 재배한 데다 양도 많지 않아 판매를 걱정해야 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이나 사람을 통한 전화주문으로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
▲가격은 =kg당 6000원~7000원 정도 받았다.
▲바나나 농사 괜찮은 편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첫 수확 후 판매해 본 결과 괜찮은 편인 것 같았다.
▲바나나 농사를 지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 =바나나 첫 농사를 지어면서 4m 높이의 바나나 나무에 아름답게 꽃이 피어 있을 때였다. 바나나 꽃을 보면 그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다. 말로 표현을 하기 보다는 직접 보면 정말 황홀할 정도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언제인가 =모종 선택을 잘못해 파기를 했을 때였다.
▲생산된 바나나 당도는 =수입 바나나보다 당도가 더 높았다.
▲묘목식재 후 얼마 만에 바나나 수확이 가능한가? =모종 식재 후 1년이면 생산이 가능하다
▲수확은 언제하나 =식재일로부터 1년이면 수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모종 식재일과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중 한 나무에서 몇 회나 수확하나 1회 수확이 가능하다.
▲한 나무에 생산된 바나나 (평균)가격은 얼마나 되나 =12만 원~14만 원 정도다.
▲바나나도 다른 과수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지치기를 해야 하나 =전혀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일년생이기 때문이다.
▲바나나 농사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당분간은 미래가 밝다.
▲묘목은 어떻게 하고 있나(구입인가 재배인가) =지금은 전혀 구입을 하지 않고 현재 재배된 바나나 나무 옆 부분에 생긴 묘목을 뿌리와 함께 이식하고 있다.
▲매년 수확이 가능한가.=그렇다고 본다.
▲바나나 재배 도내 최초다. 성공사례를 들려 달라 =아직까지는 성공사례라고 할 수 없다.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 면적이 확대되면 그때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무엇보다 영남지방에서 바나나를 재배해 결실을 맺었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뿌듯하다. 특히 이 품종(전남 해남)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칭찬을 해 주고 싶다.
▲바나나 재배 외에도 다른 작물을 재배하나 =하고 있다.
▲어떤 작물인가 =파프리카다
▲전량 수출하나 =아니다. 일부만 한다.
▲나머지는 어떻게 출하하고 있나 =대도시 공판장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파프리카 가격이 하락했다. 그 당시 어땠나. =많은 손해를 보았다. 힘이 빠졌다.
▲연간 순수익은 어느 정도 인가 =(예전에) 7000~8000만 원 정도다. 지금은 이보다 더 적다.
▲파프리카 재배면적은 =3000평 정도다.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농민이면 누구나 다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을 거다. 내(박 씨)가 수출농업에만 20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출보다 수입대체 작물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때다. 수출에만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수입 대체작물에도 지원을 함으로써 부농을 일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강정배 기자 kjb345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