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의성군에 형성된 ‘쓰레기산’ 위에서 폐기물 처리업체가 포크레인을 동원해 쓰레기 선별 작업을 벌이고 있다. photo 이성진 기자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낙동강이 흐르는 서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주민 약 300명이 거주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일대 대부분이 넓은 경지와 들로 이뤄져 있고 400~700m 높이의 크고 작은 산맥들이 군데군데 뻗어 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본래 자연으로 푸르렀던 이 지역 풍광은 약 5년 전부터 달라졌다고 한다. 일명 ‘쓰레기산’ 때문이다. 912번 지방도로를 타고 마을로 진입하다 보면 수풀들 사이로 우뚝 솟은 회색빛 언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주민들이 지적하는 쓰레기산이다.
지난 9월 1일 기자가 마주한 이 쓰레기산은 한동안 걸음을 멈출 만큼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랜 기간 방치된 타이어, 비닐, 플라스틱 등의 각종 폐기물이 건물 10여층 높이까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규모는 주변 산과 맞먹었고 인근에선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쓰레기 더미 중턱에선 폐기물처리업체의 쓰레기 선별 작업으로 먼지가 쉼 없이 흩날려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은 쓰레기산 이야기만 나오면 혀를 내둘렀다. 생송리에 24년간 거주한 김모씨는 “폐기물이 선별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쌓이다 보니 그 안에서 화재도 자주 발생했다. 기압이 낮을 때면 화재 연기가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고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목도 메케하고 눈도 따갑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 박모씨는 “악취는 당연하거니와 쓰레기 운반차량들이 오고 가며 논밭에 흘린 쓰레기들로 한동안 고생했다”고 푸념했다.
경북 의성의 불법 쓰레기산
이 쓰레기산은 한 민간 폐기물처리업체의 부적절한 운영으로 조성된 불법폐기물 더미다. 대구지방검찰청 의성지청에 따르면 A폐기물처리업체 임직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자 폐기물 허용보관량인 1020t을 초과한 17만2000t의 폐기물을 전국 각지에서 무분별하게 반입, 이에 따른 폐기물 처리대금을 빼돌렸다고 한다. 쓰레기산은 이들이 지난해 말까지 반입한 폐기물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만들어졌다. 현재 A업체 임직원과 이에 가담한 폐기물 운반업자 등은 폐기물관리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처리된 상황이다. 의성군청 측은 “새 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고 쓰레기산 처리에 집중하고 있지만 쓰레기 선별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려 내년까지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의성군 쓰레기산 사태가 국내 쓰레기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쓰레기를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고 이를 산처럼 쌓아올릴 만큼 전국적으로 쓰레기가 불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단순히 한 업체의 범법행위로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 일부 지역에선 이미 ‘쓰레기 대란’이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처음 실시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불법폐기물은 총 120만3000t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업중단·허가취소 등으로 폐기물업체 내 적체된 방치폐기물이 85만t(71.4%), 임야·임대부지 등에 무단으로 버려진 투기폐기물이 31만t(27.4%), 해외 수출폐기물이 3만t(2.8%)으로 집계됐다. 방치폐기물의 경우 2014년 7만t에 그쳤다가 2018년 85만t을 기록하며 최근 5년간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690만t, 경북이 288만t, 전북이 78만t 순으로 많은 불법폐기물을 발생시켰다. 쓰레기산 문제가 의성군만의 일이 아닌 셈이다.
소각ㆍ매립비용 상승으로 불법폐기물 증가
이런 불법폐기물 발생 급증 요인으로는 중국 등의 폐기물 수입금지, 처분시설 부족, 처리비용 단가 인상 등이 거론된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1t당 평균 18만6000원, 8만원을 각각 기록했던 쓰레기 소각비용과 매립비용은 올해 거의 두 배인 26만원, 14만원으로 인상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불법폐기물이 증가했다고 볼 수는 없고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전국적인 폐기물량의 급증 현상이 불법폐기물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각 지자체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량은 2011년 1억3625만t에서 2017년 1억5133만t을 기록하며 최근 7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여기서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발생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가량이나 된다. 2017년 기준 수도권 발생 폐기물량은 5278만t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 매립시설 잔여매립 용량, 소각시설 용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자가처리업체, 최종처분업체가 각각 운영하는 매립시설의 총 잔여매립 용량은 2017년 기준 2억8974만㎡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2년 전과 비교해 2143만㎡ 감소한 면적이다. 2017년 소각시설 용량은 2년 전과 비교해 하루 평균 1294t 감소한 3만2083t을 기록했다.
환경부는 매년 전체 폐기물의 80% 이상을 재활용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17년 기준 국내 전체 폐기물의 재활용 비중은 86.4%, 매립·소각 비중은 13.6%를 기록했다. 하지만 학계 안팎의 시선은 다르다. 환경부의 재활용 비중 통계는 폐기물이 재활용 처리시설로 유입된 양일 뿐, 실제 재활용되는 양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승희 경기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2차 폐기물 개념이 없어 이를 집계하지 않는데, 여기에 속하는 것이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유물이다. 통상적으로 실제 재활용되는 양과 잔유물량의 비율은 6대 4다. 이를 감안하면 재활용 비율은 굉장히 낮고 소각·매립 비중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환경공단은 실제 재활용량과 잔유물 등의 추가 폐기량 비율을 올해부터 집계 중이다.
수도권, 2025년까지 대체매립지 찾아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에선 이미 ‘쓰레기 대란’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최근 3년간 수도권매립지 반입 폐기물량이 증가하면서 매립지 조기포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인천·경기 지역 내 각종 폐기물 처리를 위해 환경부와 이들 3개 시도가 1987년 ‘김포지구 해안매립지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1992년 계획안에 따라 지금의 인천시 서구 일원에 개장한 쓰레기매립장이다. 면적은 세계 최대 규모인 1685만㎡. 1매립장과 2매립장은 매립이 완료됐고 현재는 3-1매립장을 사용 중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따르면, 3-1매립장은 당초 하루 평균 1만2000t의 폐기물이 반입될 것이란 분석하에 2025년 8월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예측 반입량보다 1000t이 더 많은 하루 평균 1만3000t의 폐기물이 반입되면서 포화 시기가 2024년 말로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공사는 지난 7월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내년부터는 직매립 생활폐기물을 대상으로 기존 반입량에서 10%를 감축하는 ‘반입총량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관련 세부 방안은 3개 시도와 협의를 통해 확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공사는 조기포화 우려 등의 이유로 올 7월부터 생활폐기물, 건설폐기물 반입수수료를 인상한 상황이다. 생활폐기물은 1t당 기존 5만5005원에서 6만2076원으로, 건설폐기물은 7만7092원에서 9만9893원으로 올렸다. 생활폐기물의 경우 내년 7월 7만56원으로 추가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반입총량제 시행은 수수료 인상만으론 매립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분석하에 이뤄진 추가 조치인 셈이다.
문제는 2025년 이후다. 포화 시기를 늦추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 이후엔 대체매립지를 찾아야 한다. 당초 수도권매립지는 2016년까지만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도권 지자체가 대체지 확보, 시도별 자체 처리시설 확충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5년 서울·인천·경기와 환경부는 ‘수도권매립지정책 4자 협의체 최종합의’를 통해 사용기한을 2025년까지 연장했다. 결국 2025년 전까지는 대체매립지를 다시 찾아야 하는 셈이다. 공사에 따르면 수도권매립지 반입량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며 지난해 374만t을 기록했다. 대체매립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쓰레기 대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서울·인천·경기가 대체지 확보를 두고 이견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매립지 조성과 관련한 인센티브 등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으면서 진척될 기미가 없다. 더군다나 환경부는 2015년 합의안 내용에 따라 자문 역할에 머물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지자체를 중재하고 부지 선정을 주도할 정부 부처의 기능이 사라진 셈이다. 경기도청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매립지는 본래 환경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제 와서 한발 빼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3개 지자체가 의견을 모으기 어려운 만큼 환경부가 나서줘야 한다. 인천, 서울도 모두 같은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사용을 또다시 연장할 것을 우려해 최근 자체 매립지 조성에 나서고 있다. 2015년 합의안이 ‘대체매립지 조성이 불가능하여 대체매립지가 확보되지 않을 경우 수도권매립지 잔여부지의 최대 15%(106만㎡) 범위 내에서 추가 사용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인천시청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인천 시민들의 반발도 상당하다. 언제까지 서울·경기 쓰레기를 받아줘야 하느냐라는 의견이다. 현재 인천연구원에 직매립 제로화 방안과 이를 위한 쓰레기 처리시설·부지 등을 어떻게 조성, 마련해야 할지 연구용역을 맡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인천시가 계획대로 자체 매립지를 건립하고, 수도권 대체매립지는 확보되지 못할 경우 서울·경기권 쓰레기 대란은 불가피해진다. 서울의 경우 쓰레기 처리시설을 설치할 부지가 사실상 없다는 평가다.
의정부와 제주도 쓰레기 몸살 앓는 중
여타 지자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만 해도 쓰레기 처리시설 대체부지 확보와 이설(移設) 지연, 이에 따른 주민 반발 등으로 쓰레기 처리에 애를 먹고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의정부시의 경우 기존 장암동 소각장의 노후화 등으로 자일동 환경자원센터 내 쓰레기 소각장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신설 부지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국립수목원 근처이다 보니 환경파괴 등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이 거세다. 지난 8월 31일 의정부시청 앞에선 의정부·포천·남양주 시민 총 2000여명이 모여 소각장 신설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시는 이 부지가 그나마 차선책이며 여러 여건 등을 고려하면 소각장 개보수보다는 신설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의정부시청의 한 관계자는 “개보수 등을 하면 가동을 멈춰야 하는데 그때 2~3년간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민간 처리시설로 쓰레기를 보내자니 비용부담이 크다. 업체 수가 적어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향후 의정부시에 법무타운 등이 들어서면 인구는 계속해서 늘 수밖에 없다. 수도권매립지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인 만큼 더 많은 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새 소각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장암동 소각장은 하루 평균 쓰레기 처리 규모가 200t에서 170t으로 감축되면서 사용수명 기한이 2021년으로 앞당겨진 상황이다. 의정부가 수도권매립지로 반출하는 쓰레기 규모는 하루 평균 30t에 불과하다. 지역 내 소각장 의존도가 상당한 셈이다. 의정부시는 현재 소각장 신설과 관련해 환경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시는 봉개동 매립장 사용을 두고 난항을 겪는 중이다. 1992년 설립한 봉개동 매립장은 시와 주민 등의 합의로 2019년 10월까지 연장 사용하고, 매립장 내 음식물류 쓰레기 처리시설과 재활용 선별시설은 2021년 10월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이후엔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서귀포시 색달동 광역 음식물류 처리시설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주시는 최근 기획재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등으로 광역 음식물류 처리시설 완공이 지연되면서, 기존 봉개동 매립장 음식물 처리시설을 1년여 더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대해 주민들이 “이미 매립장 사용을 2~3차례나 연장했는데 또다시 연장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미 봉개동 매립장은 적정 처리용량을 넘어선 초과 매립이 이뤄진 상태다. 지난 8월 주민들이 매립장 입구에서 쓰레기 수거 차량 진입을 막아서면서 실제 쓰레기 대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제주시청 관계자는 “제주는 육지와 달리 민간 쓰레기처리업체가 전혀 없다. 주민들 간 합의 무산 등으로 봉개동 쓰레기 매립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쓰레기 대란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원활한 쓰레기 처리를 위해선 봉개동 시설을 더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시와 주민들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쓰레기 포화를 막진 못하지만 그 시기를 늦출 순 있다고 말한다. 물질흐름분석(MFA·Material Flow Analysis)을 시행, 그 결과에 따라 필요 폐기물 처리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MFA는 자원사용 경로를 끝까지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승희 경기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국내서 가장 많은 폐기물을 내보내는 사업장들은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폐기물을 공개하지 않는다. 환경부는 폐기물이 어느 종류의 처리업체로 유입되는지만 집계할 뿐이다. MFA를 통해 대다수 폐기물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고 무엇으로 분해되고 있는지 정확히 추산해야, 적정 쓰레기 처리시설을 구축하고 관련 정책도 입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MFA 도입 필요성이 강조돼왔지만, 정부 부담 등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국내 쓰레기 처리 인프라는 대부분 1990년대에 건립된 것들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관련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며 지역민 반발은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제도적 인센티브로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학계에선 쓰레기 대란의 심각성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인 작가 에드워드 흄즈의 저서 ‘102톤의 물음’을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여기서 ‘102톤’은 미국인 한 명이 평생 동안 만들어내는 쓰레기 양을 의미한다. “‘이제 쓰레기를 어디에 둬야 할까?’라는 오래된 질문은 계속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이 질문을 중심으로 쓰레기 수집·운송·폐기와 관련한 정교한 시스템이 구축돼왔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만들어내는 102t의 유산을 매주 한 조각씩 수거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이 생겨났다. 실제로는 그것으로 산을 만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난 9월 1일 기자가 마주한 이 쓰레기산은 한동안 걸음을 멈출 만큼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랜 기간 방치된 타이어, 비닐, 플라스틱 등의 각종 폐기물이 건물 10여층 높이까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규모는 주변 산과 맞먹었고 인근에선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쓰레기 더미 중턱에선 폐기물처리업체의 쓰레기 선별 작업으로 먼지가 쉼 없이 흩날려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은 쓰레기산 이야기만 나오면 혀를 내둘렀다. 생송리에 24년간 거주한 김모씨는 “폐기물이 선별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쌓이다 보니 그 안에서 화재도 자주 발생했다. 기압이 낮을 때면 화재 연기가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고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목도 메케하고 눈도 따갑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 박모씨는 “악취는 당연하거니와 쓰레기 운반차량들이 오고 가며 논밭에 흘린 쓰레기들로 한동안 고생했다”고 푸념했다.
경북 의성의 불법 쓰레기산
이 쓰레기산은 한 민간 폐기물처리업체의 부적절한 운영으로 조성된 불법폐기물 더미다. 대구지방검찰청 의성지청에 따르면 A폐기물처리업체 임직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자 폐기물 허용보관량인 1020t을 초과한 17만2000t의 폐기물을 전국 각지에서 무분별하게 반입, 이에 따른 폐기물 처리대금을 빼돌렸다고 한다. 쓰레기산은 이들이 지난해 말까지 반입한 폐기물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만들어졌다. 현재 A업체 임직원과 이에 가담한 폐기물 운반업자 등은 폐기물관리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처리된 상황이다. 의성군청 측은 “새 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고 쓰레기산 처리에 집중하고 있지만 쓰레기 선별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려 내년까지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의성군 쓰레기산 사태가 국내 쓰레기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쓰레기를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고 이를 산처럼 쌓아올릴 만큼 전국적으로 쓰레기가 불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단순히 한 업체의 범법행위로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 일부 지역에선 이미 ‘쓰레기 대란’이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처음 실시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불법폐기물은 총 120만3000t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업중단·허가취소 등으로 폐기물업체 내 적체된 방치폐기물이 85만t(71.4%), 임야·임대부지 등에 무단으로 버려진 투기폐기물이 31만t(27.4%), 해외 수출폐기물이 3만t(2.8%)으로 집계됐다. 방치폐기물의 경우 2014년 7만t에 그쳤다가 2018년 85만t을 기록하며 최근 5년간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690만t, 경북이 288만t, 전북이 78만t 순으로 많은 불법폐기물을 발생시켰다. 쓰레기산 문제가 의성군만의 일이 아닌 셈이다.
소각ㆍ매립비용 상승으로 불법폐기물 증가
이런 불법폐기물 발생 급증 요인으로는 중국 등의 폐기물 수입금지, 처분시설 부족, 처리비용 단가 인상 등이 거론된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1t당 평균 18만6000원, 8만원을 각각 기록했던 쓰레기 소각비용과 매립비용은 올해 거의 두 배인 26만원, 14만원으로 인상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불법폐기물이 증가했다고 볼 수는 없고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전국적인 폐기물량의 급증 현상이 불법폐기물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각 지자체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량은 2011년 1억3625만t에서 2017년 1억5133만t을 기록하며 최근 7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여기서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발생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가량이나 된다. 2017년 기준 수도권 발생 폐기물량은 5278만t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 매립시설 잔여매립 용량, 소각시설 용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자가처리업체, 최종처분업체가 각각 운영하는 매립시설의 총 잔여매립 용량은 2017년 기준 2억8974만㎡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2년 전과 비교해 2143만㎡ 감소한 면적이다. 2017년 소각시설 용량은 2년 전과 비교해 하루 평균 1294t 감소한 3만2083t을 기록했다.
환경부는 매년 전체 폐기물의 80% 이상을 재활용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17년 기준 국내 전체 폐기물의 재활용 비중은 86.4%, 매립·소각 비중은 13.6%를 기록했다. 하지만 학계 안팎의 시선은 다르다. 환경부의 재활용 비중 통계는 폐기물이 재활용 처리시설로 유입된 양일 뿐, 실제 재활용되는 양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승희 경기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2차 폐기물 개념이 없어 이를 집계하지 않는데, 여기에 속하는 것이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유물이다. 통상적으로 실제 재활용되는 양과 잔유물량의 비율은 6대 4다. 이를 감안하면 재활용 비율은 굉장히 낮고 소각·매립 비중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환경공단은 실제 재활용량과 잔유물 등의 추가 폐기량 비율을 올해부터 집계 중이다.
수도권, 2025년까지 대체매립지 찾아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에선 이미 ‘쓰레기 대란’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최근 3년간 수도권매립지 반입 폐기물량이 증가하면서 매립지 조기포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인천·경기 지역 내 각종 폐기물 처리를 위해 환경부와 이들 3개 시도가 1987년 ‘김포지구 해안매립지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1992년 계획안에 따라 지금의 인천시 서구 일원에 개장한 쓰레기매립장이다. 면적은 세계 최대 규모인 1685만㎡. 1매립장과 2매립장은 매립이 완료됐고 현재는 3-1매립장을 사용 중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따르면, 3-1매립장은 당초 하루 평균 1만2000t의 폐기물이 반입될 것이란 분석하에 2025년 8월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예측 반입량보다 1000t이 더 많은 하루 평균 1만3000t의 폐기물이 반입되면서 포화 시기가 2024년 말로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공사는 지난 7월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내년부터는 직매립 생활폐기물을 대상으로 기존 반입량에서 10%를 감축하는 ‘반입총량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관련 세부 방안은 3개 시도와 협의를 통해 확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공사는 조기포화 우려 등의 이유로 올 7월부터 생활폐기물, 건설폐기물 반입수수료를 인상한 상황이다. 생활폐기물은 1t당 기존 5만5005원에서 6만2076원으로, 건설폐기물은 7만7092원에서 9만9893원으로 올렸다. 생활폐기물의 경우 내년 7월 7만56원으로 추가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반입총량제 시행은 수수료 인상만으론 매립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분석하에 이뤄진 추가 조치인 셈이다.
문제는 2025년 이후다. 포화 시기를 늦추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 이후엔 대체매립지를 찾아야 한다. 당초 수도권매립지는 2016년까지만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도권 지자체가 대체지 확보, 시도별 자체 처리시설 확충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5년 서울·인천·경기와 환경부는 ‘수도권매립지정책 4자 협의체 최종합의’를 통해 사용기한을 2025년까지 연장했다. 결국 2025년 전까지는 대체매립지를 다시 찾아야 하는 셈이다. 공사에 따르면 수도권매립지 반입량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며 지난해 374만t을 기록했다. 대체매립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쓰레기 대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서울·인천·경기가 대체지 확보를 두고 이견을 보일 뿐만 아니라 매립지 조성과 관련한 인센티브 등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으면서 진척될 기미가 없다. 더군다나 환경부는 2015년 합의안 내용에 따라 자문 역할에 머물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지자체를 중재하고 부지 선정을 주도할 정부 부처의 기능이 사라진 셈이다. 경기도청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매립지는 본래 환경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제 와서 한발 빼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3개 지자체가 의견을 모으기 어려운 만큼 환경부가 나서줘야 한다. 인천, 서울도 모두 같은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사용을 또다시 연장할 것을 우려해 최근 자체 매립지 조성에 나서고 있다. 2015년 합의안이 ‘대체매립지 조성이 불가능하여 대체매립지가 확보되지 않을 경우 수도권매립지 잔여부지의 최대 15%(106만㎡) 범위 내에서 추가 사용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인천시청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인천 시민들의 반발도 상당하다. 언제까지 서울·경기 쓰레기를 받아줘야 하느냐라는 의견이다. 현재 인천연구원에 직매립 제로화 방안과 이를 위한 쓰레기 처리시설·부지 등을 어떻게 조성, 마련해야 할지 연구용역을 맡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인천시가 계획대로 자체 매립지를 건립하고, 수도권 대체매립지는 확보되지 못할 경우 서울·경기권 쓰레기 대란은 불가피해진다. 서울의 경우 쓰레기 처리시설을 설치할 부지가 사실상 없다는 평가다.
의정부와 제주도 쓰레기 몸살 앓는 중
여타 지자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만 해도 쓰레기 처리시설 대체부지 확보와 이설(移設) 지연, 이에 따른 주민 반발 등으로 쓰레기 처리에 애를 먹고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의정부시의 경우 기존 장암동 소각장의 노후화 등으로 자일동 환경자원센터 내 쓰레기 소각장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신설 부지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국립수목원 근처이다 보니 환경파괴 등을 우려하는 주민 반발이 거세다. 지난 8월 31일 의정부시청 앞에선 의정부·포천·남양주 시민 총 2000여명이 모여 소각장 신설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시는 이 부지가 그나마 차선책이며 여러 여건 등을 고려하면 소각장 개보수보다는 신설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의정부시청의 한 관계자는 “개보수 등을 하면 가동을 멈춰야 하는데 그때 2~3년간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민간 처리시설로 쓰레기를 보내자니 비용부담이 크다. 업체 수가 적어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향후 의정부시에 법무타운 등이 들어서면 인구는 계속해서 늘 수밖에 없다. 수도권매립지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인 만큼 더 많은 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새 소각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장암동 소각장은 하루 평균 쓰레기 처리 규모가 200t에서 170t으로 감축되면서 사용수명 기한이 2021년으로 앞당겨진 상황이다. 의정부가 수도권매립지로 반출하는 쓰레기 규모는 하루 평균 30t에 불과하다. 지역 내 소각장 의존도가 상당한 셈이다. 의정부시는 현재 소각장 신설과 관련해 환경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시는 봉개동 매립장 사용을 두고 난항을 겪는 중이다. 1992년 설립한 봉개동 매립장은 시와 주민 등의 합의로 2019년 10월까지 연장 사용하고, 매립장 내 음식물류 쓰레기 처리시설과 재활용 선별시설은 2021년 10월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이후엔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서귀포시 색달동 광역 음식물류 처리시설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주시는 최근 기획재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등으로 광역 음식물류 처리시설 완공이 지연되면서, 기존 봉개동 매립장 음식물 처리시설을 1년여 더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대해 주민들이 “이미 매립장 사용을 2~3차례나 연장했는데 또다시 연장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미 봉개동 매립장은 적정 처리용량을 넘어선 초과 매립이 이뤄진 상태다. 지난 8월 주민들이 매립장 입구에서 쓰레기 수거 차량 진입을 막아서면서 실제 쓰레기 대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제주시청 관계자는 “제주는 육지와 달리 민간 쓰레기처리업체가 전혀 없다. 주민들 간 합의 무산 등으로 봉개동 쓰레기 매립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쓰레기 대란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원활한 쓰레기 처리를 위해선 봉개동 시설을 더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시와 주민들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쓰레기 포화를 막진 못하지만 그 시기를 늦출 순 있다고 말한다. 물질흐름분석(MFA·Material Flow Analysis)을 시행, 그 결과에 따라 필요 폐기물 처리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MFA는 자원사용 경로를 끝까지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승희 경기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국내서 가장 많은 폐기물을 내보내는 사업장들은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폐기물을 공개하지 않는다. 환경부는 폐기물이 어느 종류의 처리업체로 유입되는지만 집계할 뿐이다. MFA를 통해 대다수 폐기물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고 무엇으로 분해되고 있는지 정확히 추산해야, 적정 쓰레기 처리시설을 구축하고 관련 정책도 입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MFA 도입 필요성이 강조돼왔지만, 정부 부담 등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국내 쓰레기 처리 인프라는 대부분 1990년대에 건립된 것들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관련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며 지역민 반발은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제도적 인센티브로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학계에선 쓰레기 대란의 심각성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인 작가 에드워드 흄즈의 저서 ‘102톤의 물음’을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여기서 ‘102톤’은 미국인 한 명이 평생 동안 만들어내는 쓰레기 양을 의미한다. “‘이제 쓰레기를 어디에 둬야 할까?’라는 오래된 질문은 계속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이 질문을 중심으로 쓰레기 수집·운송·폐기와 관련한 정교한 시스템이 구축돼왔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만들어내는 102t의 유산을 매주 한 조각씩 수거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이 생겨났다. 실제로는 그것으로 산을 만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