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18)
(2부)
늦은 밤에 다녀간 유기견 센터 소장이 아침에 다시 왔다. 야생 동물의 자기보호 습성에 관해 설명한다. 우리는 뒷산으로 강아지를 찾으러 다녔다. 누군가 찾았다고 소리쳤다. 중턱에서 발견된 새끼들은 낙엽을 이불 삼아 오물오물 모여 있다. 우리가 찾았다며 안도의 환호를 할 때 으르렁거리던 개 어미는 다시 이사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오후엔 강아지를 입에 물고 다시 다른 장소로 이동을 강행했다.
그렇게 산에서 산으로, 다시 길가 소나무 아래로 온종일 세 번의 이사를 감행하며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지치지 않는 모성이다. 우리도 계속 먼발치에서 강아지 보호란 명분으로 이사한 곳을 따라 다녔다.
해는 저물고, 개 키우는 집들이 기부한 사료밥을 길목 길목에 수북이 담아놓고, 잡히는 동안 지치지나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또 하룻밤을 보냈다. 센터에서 가지고 온 통조림과 이불 유인함도 한쪽에 마련해 두었다. 마취총을 쏜다거나 그물망을 던지거나 해서 잡을 수는 있겠지만, 새끼를 보호하려고 극도로 예민한 개에게 조금의 시간을 주며 안정을 시켜보자는 취지에서다. 그렇게 개와 사람은 각기 다른 명분으로 작전을 짜고 계획했다. 마지막 이사 장소는 소나무 아래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날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앞집에서 전화가 온다. 빨리 와보라는 것이다.“야야, 이게 무슨 일이고. 우리 집 개가 아비 맞나 봐. 어떡하나.”
닮았지만 극구 아니라고 발뺌한 그 수놈 집 울타리 옆에 새끼들을 모아 놓았다. 개의 언어를 빌리자면 “더 이상은 힘드니 이제 남편인 너가 책임지소”하며 수놈에게 시위하는 듯 했다. 늘 씩씩하던 수놈도 꼬리를 내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모여 신기한 광경을 본다. 근처를 맴도는 어미의 으르렁은 계속됐다.
날이 너무 추워지니 이제부터는 어떻게든 잡아서 어미도 새끼도 살려야 할 것 같다. 순간 누군가가 부부애를 이용해보자는 생각을 해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랑이 첫째 아닌가. 우선 묶어놓은 아비 개를 풀고 강아지를 아비의 집에 모두 옮겨 놓았다. 그랬더니 아비가 멀리서 지켜보는 어미에게 다가가서 몸을 비비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 아닌가.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니도 살고 새끼도 살려면 우선 저 인간들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했나 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잘 만든다. 에그)
사람 근처에 오지 않고 짖어대던 어미가 새끼들 주위를 한 참 맴돌다가 슬그머니 개집으로 들어가 젖을 물린다. “물리면 어쩌려고”하며 말려도 소장이 개집 앞에 따라 들어가 앉았다. 한참을 좁은 틈새에 쭈그리고 앉아 젖 먹이는 어미 개와 눈을 맞추며 기다려 준다. 긴 시간이 지나고,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미가 소장에게 슬금슬금 기어서 다가가더니 엎드린다. 소통이 된 것이다. 지켜보던 우리는 모두 감동으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는 담요로 어미 개를 싸안고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다 살려 줄게….”
개를 싫어한다던 이웃이 며칠 동안 보여준 애면글면하는 모습이 책임감 없이 개를 키우려면 안 키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꼴 저꼴 안 보고 힘든 시간을 잘 넘긴, 아직 눈을 뜨지 않은 강아지들과 어미 개는 그렇게 우리 동네를 떠났다. 시원섭섭한 우리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인간과 동물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끌어안았던 동물이 버림을 받았을 때의 상처는 사람 못지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 내 버려진 동물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며 누가 돌멩이를 던질 수 있겠는가.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