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① 일출의 의미] 동서양 막론 왜 신년 일출에 목맬까?

화이트보스 2019. 12. 31. 17:25


① 일출의 의미] 동서양 막론 왜 신년 일출에 목맬까?

             

입력 2019.12.31 10:30

에너지 원천이자 생명 탄생과 연결… 새 각오 다지는 기운 얻는 계기 삼기도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몇 년 전 새벽 일찍 일어나 북한산 정상을 향한 적 있다. 북한산 종주를 작정하고 비봉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걸었다. 멀리 백운대 봉우리가 여명에 희미하게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조금만 더 가면 위문을 지나 정상으로 향할 생각을 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추 도착할 무렵 갑자기 당황하고 난감해졌다. 위문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겨우 비집고 위문까지 올라갔다. 위문에서 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아예 갈 수  없었다. 가는 길 자체가 좁을 뿐 아니라 한쪽은 낭떠러지다. 바라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위험한 등산로다. 눈에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 여명만 있는 새벽녘, 랜턴에 의지한 채 등산객들로 가득한 등산로를 헤치고 백운대까지 가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날 이후 북한산 정상에서 신년 일출을 보는 것은 지금까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산 정상에 모이는 등산객이 우리나라에서만 어느 정도 될까? 한국의 유명 산 정상에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일전에 지리산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천왕봉을 올랐다. 북한산 기억이 떠올라서 동행한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에게 “지리산 천왕봉에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느냐”고 물었다. 너무 많은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특별히 그날만 새벽 4시에 천왕봉으로 향하는 중산리 등산로를 개방한다고 말했다. 천왕봉 일출 시각은 오전 7시 20분경. 뿐만 아니라 올라가는 등산객들이 너무 많아서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지리산사무소 전 직원들이 비상근무한다고 했다. 그 꼭두새벽에 지리산 정상 1,915m까지 오르는 사람들이 몇 천 명이나 된다고 했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 정상뿐만 아니다. 해운대나 울산 간절곶, 강릉 등 일출 명소로 소문난 장소에 수 만 명이 모여 신년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고 기도를 한다. 큰 산에서부터 작은 동네 산까지, 전국 곳곳의 일출 명소까지 집결한 인파는 족히 수백 만 명은 될 것 같다. 남한 인구 10명 중 한 명은 일출을 보지 않을까 싶다. 정확한 집계는 아직 어디서든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일출 광경에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권에서만 열광하는 줄 알았는데, 서양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열광 환호하는 모습은 동양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이리 신년 일출에 목을 맬까?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종교적, 혹은 전통적 가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일출은 해가 수평선 위를 살짝 솟아오르는 순간을 가리키는 기상용어다, 과학적으로 일출의 개념은 없다. 왜냐하면 태양은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지구의 자전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일출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매년 신년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목을 맨다. 나아가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기도를 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지극히 비합리적·비과학적 행위이고, 새해 마음을 다지기 위한 하나의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모이는 인파다.
일출 인파는 서양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특히 동양문화권에서 더욱 강하다. 태산에 갔을 때 중국 가이드는 태산 일출을 보기 위해 100만 명이 모인다고 했다. 중국인들이 허풍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태산에 엄청난 인파가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모이는 건 사실인 듯했다. 정상 부근에 있는 호텔은 아예 몇 개월 전에 예약이 끝난다고 했다. 아예 침낭을 들고 와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일출은 생명의 상징이자 에너지 원천
일출은 동양사상 및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자에서 의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자 동東을 파자하면 ‘날 日’과 ‘나무 木’의 합성어로 구성돼 있다. 나무에 태양이 걸려 있는 모습이라고도 하고, 나무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래서 해가 솟는 동쪽은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방향을 나타낸다. 하루 중 아침이고, 계절로는 봄이고, 일생에서는 성장기를 상징한다. 주역과 음양오행에서도 ‘東’은 만물의 시초이며,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동악 태산이 중국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동양사상에서 태양은 양기 덩어리다. 양기가 철철 넘쳐흐르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다. 양기는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을 지닌 양기의 물질을 보고 기복祈福하는 현상은 음양상승 하고 일월성신 하는 동양적 가치로 볼 때 당연한 행위로 보인다. 예로부터 집 안 곳곳에 양기 가득하라고 집의 동쪽에 창을 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신년 일출에 대한 기복적 행위는 동양의 태양숭배 사상이나 생명존중, 동쪽숭배사상과 모두 연관이 된다. 개인적인 의미로는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 이에 덧붙여 산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산은 예로부터 하늘의 신성한 기운이 내려오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등산을 하고 나면 성취감과 뿌듯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건 정상을 밟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에 더해 긍정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너지를 느끼지 못한다면 산에 가지 않을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산이나 기운(에너지)이 강하다고 느끼는 장소에서 기도 올리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행위이지만 AI가 지배하는 세상에도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출에 환호하는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검증할 수 없는 사회 전승적 행위이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인간 본질적 행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흔히 일몰은 경건함과 위안을 주고, 일출은 장엄함과 에너지를 인간에게 준다고 말한다. 위안 받고 힐링을 하고, 장엄한 기운을 얻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일몰·일출 명소나 명산을 찾아 연말연시를 보내면 어떨까. 연말의 허전한 기운을 달래줄 장엄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건네줄 일출 명산을 찾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