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강재-외둔
2020.03.08 남북종주 1차 (외둔-원강재) 지리산 산행
행동팀 77차 정기산행
일시:2020년 3월 8일
산행자:행동팀+연하, 풀내음, 김갑숙, 예서방, 최옥희, 황순진, 김은의,
최규다, 들풀, 이종철, 최미희, 권영구, 이순애 (총16명)
걸어간 길:형제봉 활공장-원강재-활공장-형제봉-신선봉-고소산성-카페 스타웨이 하동-외둔
산행시간:08시 54분~16시 34분 (7시간 40분) 10km
19번 국도 섬진강 도로를 지나다닐 때마다 언젠가 저곳으로 꼭 올라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든 곳이 있었다.
영신봉에서 시작한 남부 능선이 남으로 길게 내달린 끝에 그 긴 여정을 마무리 짓는 섬진강가 외둔이다.
매월 둘째 주 정기산행은 남쪽 능선을 따라 넘어 북쪽 능선 끝까지 갈 수 있는 외둔에서 시작하는 이 길을
구간 구간 나누어 걸어 볼 생각이다.
그 계획 첫 번째 첫 구간 산행이다.
외둔에서 첫걸음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겠으나, 긴 오름길 대신 내려오는 합리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원강재에서 시작 해 외둔으로 내려오고, 다음 산행은 원강재에서 이어 출발할 것이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외둔 소상낙원 표지석 사진을
이 길을 먼저 걸어 간 산거북 형님 산행기에서 슬쩍해 왔다.
차를 타고 형제봉 활공장까지 올라간다.
활공장에서 원강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형제봉으로 걷기 위해서이다.
활공장에 올라서자 발아래는 구름이 바다를 이루었다.
눈 앞에 갑자기 펼쳐진 풍경은 이 아침 크나큰 행운이다.
보고 있자니 저 깊은 데서부터 귀가 찌잉 울리는 이명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형언하기 힘든 감동이 온몸에 밀려온다.
주능선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선명하게 펼쳐지고
탁 트인 조망과 운해로 가득 찬 그림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며
모두 걷잡을 수 없는 흥분으로 환호성을 지른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담아 보려고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태어나 이런 것은 처음 본다는 말이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는 말도 들렸다.
착하게 열심히 살아서, 좋은 사람들이라, 복을 받아서 이런 광경을 본다는 말도 했다.
이리저리 흩어져 난리법석을 떨며 긴 시간 동안 마음껏 눈호강을 만끽한다.
오늘 산행 인원이 많다.
총 16명이다.
시작하는 길 위에 지금 서 있는 이 사람들 모두 저 주능선 넘어 그 끝 지점에서도 여전히 16명이면 좋겠다.
겁이 없다.
요즘 같은 때 밥도 같이 안 먹는다고 하던데 이 16명은 둘러앉아 같이 아침을 먹었다.
원강재로 간다.
빈 몸이다.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 스틱만 들고 가볍게 갔다 오기로 한다.
비박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우리들 소리 때문인지, 원래 일어날 시간이 되었는지
하나 둘 텐트 밖으로 나온다.
밤새 내린 비는 온통 깔끔하고 맑은 날을 열어 놓았다.
아침 공기는 신선하기 짝이 없다.
기분이 가 자꾸 좋아진다.
먼길 달려온 친구도
운해 넘실대는 지리산에 흠씬 빠져든다.
원강재에 도착한다.
이곳은 다음에 이어서 갈 길의 출발점이다.
다음 산행 때 지고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만 아는 곳에 어떤 것을 미리 숨겨둔다.
32개의 눈이 그곳을 지켜보았으니 찾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빈 몸으로 몸풀기하듯 살방살방 걸었지만 옷을 벗어야 할 만큼 땀이 오른다.
활공장으로 돌아와 배낭을 메고 이제 형제봉으로 걷는다.
형제봉까지 1.5km의 거리이다.
아주 가깝다고 표시기는 그리 가리키고 있다.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되는 길이다.
그렇게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산길이라 마음의 부담감도 없다.
일렬로 걷다가 돌아보니 16명이 한 줄로 선 길이가 결코 짧지 않다.
오르락내리락 길은 그리 생겨나 있고
생긴대로인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이비 종교 그딴 이야기가 한참 이어지고 어느 사이 1.5km의 거리는
벌써 다 잡아먹어 버렸다.
형제봉 1봉에 모여 앉는다.
사진을 찍으라는 말이다.
알아서 해 드린다.
좋은 말로 할 때 들어주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조상 삼대가 시끄러울 수 있다.
형제봉 앞 산골짜기는 아직도 운무가 가득 들어차 있다.
계속 보게 되는 광경이지만 그 효용가치는 별로 떨어지지 않고 아직도 여전히 좋기만 하다.
햇살과 자연이 그려내는 뜻 모르게 현란한 고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이경우만큼은 비켜가는 중이다.
가야 할 능선이 우뚝하게 앞에 놓인다.
멀게 느껴지거나 망설여지지 않는다.
분명하게 아는 길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성제봉 정상 표지석
이제야 일행 전체의 모습을 한 번에 잡는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옥녀봉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를 굽이쳐 흘러와, 보성강과 여러 지류와 합쳐 광양만으로 흘러간다.
223km의 섬진강은 대한민국 5 대강 중 수질이 가장 깨끗한 강이라 한다.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쳐들어왔는데 두꺼비들이 무수히 모여들어 시끄럽게 울어대자
왜구들이 불길하게 생각하여 되돌아갔다 해서 (두꺼비 蟾, 나루 津) 섬진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근세에 들어서는 지리산 남부지역 동학농민군 대접주 김인배 휘하 4~5천 농민군이 섬진을 건너 하동땅에서
활동하다 압도적인 일본군의 무력 앞에서 무수히 죽어 간 곳이기도 하다.
1894년의 어느 하루는 3천여 명이 저 수려한 강변에서 붉은 피를 뿌리며 죽어 갔다.
헐벗고 굶주린 동학농민군 그들의 꿈이 한으로 서려있는 강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가깝게는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은
고독한 혁명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한 줌의 재로 뿌려진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빗점골에서 사살되어 누구도 수습하지 않든 49세 고독한 혁명가의 시신은
경찰 토벌대장 차일혁에 의해 화장되어 화개장터 근처 섬진강에 뿌려졌다.
저 아래로 섬진강은 역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간직한 체 여전히 굽이쳐 흘러간다.
산이 병풍처럼 아늑하게 둘러 쳐진 악양벌은 넓고 평화로워 보인다.
건너편 구제봉과 여러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서 간 일행을 뒤따르는 뒷사람이 앞 선 사람들을 그림처럼 찍는다.
앞 선 사람은 뒤 사람을 생각하여 기다린다.
그래야 올바르기 때문이고, 합당한 것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한정된 영양분을 나눠 먹어야 하기에 튼실하게 자랄 수 없다.
고슴도치와 고슴도치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뾰족한 가시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 그리워할 만큼의 거리,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서로 소유하지 않고 자유를 줄 수 있는 거리, 서로 불신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해야만 관계가 더 오래갈 수 있다.
친해지면 그만큼 쉽게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실망하고 서운하게 되고 그 서운함이 쌓이다 나중엔 미운 감정도 생기게 된다.
너무 많은 기대가 실망을 주고, 너무 많은 관심이 집착을 낳고, 너무 많은 간섭이 멀어지게 한다.
오래갈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걸음의 연하 형님이 느리지만 무리 없이 맨 후미를 잘 따라온다.
조금의 민폐도 끼치지 않기 위해 연하 형님은 제일 후미에서 스스로를 책임진다.
그런 그가 외롭지 않게 같이 걸어 주려는 배려심 깊은 마음이 내게는 보인다.
고도를 툭툭 떨어 떨이며 아래로 걸음은 나아간다.
섬진강 건너 광양의 백운산은 걸음이 앞으로 나아 갈수록 자꾸 가까워지고 선명해진다.
벌써 철계단을 오르는 일행들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저곳을 지나 어느 아늑한 자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엄청난 바람에 엎드려 기어가다시피 건너보기도 했고
독오당과 룰루랄라 흥겨운 걸음으로 산방 기간 이면 몇 번을 건너도 보았다.
둘레길을 통과하며 이곳을 들렀다 가기 위해 일부러 건너도 보았고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보기 위해 혼자 달려와 건너 간 적도 있는 구름다리를 또 건너간다.
매번 같지만 똑같지 않은 산이다.
최미희 님은 이종철 님과 부부로
중경팀 시산제 산행에 참석하고 난 뒤 두 번째 같이 하는 산행이다.
활달하고 밝은 성격으로 스펀지 물 스며들듯 사람들과 금방 친숙해졌다.
앞으로 많은 날 산길을 같이 걷게 될 것이다.
활공장에서 이륙한 인간 새들이 머리 위에서 막 날아다닌다.
긴 시간 동안 점심을 먹는다.
풍족하고 배부른 끼니는 많은 사소함을 잊게 해 준다.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도 말끔히 한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깨끗이 치우고 다시 출발하기 전 때 샷을 찍는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모이기로 한 곳에 불쑥 차를 몰고 나타나는 바람에 모두가 놀랐다.
산행은 할 수 없고, 얼마나 갑갑했으면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그 심정을 막, 충분히, 얼마든지 이해한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설마 산행을 같이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산행 채비를 하는 동안 이 양반 배낭을 메고 딱 서 있더라.
"어라! 이 머시고!" "와 이라노 어잉!" 요즘 말로 '헐~'이다.
중간중간 탈출로도 많고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잘 아니 굳이 말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형님의 심정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수술 후 나도 그랬으니까.
천천히 걸었지만 아무에게도 신경 쓰이지 않게 잘 걸었다.
아무튼 대단한 양반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에서 간혹 나타나는 로프와 급경사, 좁은 틈을 지나는 구간은 단조롭지 않아 재미있다.
나와 멀리 떨어진 사람은 어쩔 수 없고, 가까이서 같이 걷는 사람만 계속 찍어 댄다.
황순진, 김은의 님은 매우 돈독한 관계를 여과 없이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다.
내 평생 저 딴 거, 나는 절대 못해 봤다.
시킨다고 그걸 냉큼 한다.
오 데 서
그래, 불쾌해서 더 찐득한 사진은 여기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모퉁이를 도는데 보이지 않는 저 앞에서 불현듯 톱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길로 쓰러진 나무 때문에 우회하는 길이 불편하다고 규다가 나무를 톱으로 베고 있다.
더 자세히 관찰해보니 뒤따라 오는 들풀님을 위해 그러는 것이다.
'너를 위해 뭔들 못 하겠나.'
하아~!, 이런~, 워메~, 염장을 지러는 맨트를 나는 다 듣고 말았네 그랴.
이 사람들이 단체로 뭘 잘못 드셨나.
그 순간 찍은 사진이다.
지나온 능선이 오롯이 뒤에 놓인다.
가야 할 산길 역시 앞에 다 보인다.
좌우 앞뒤 눈으로 다 보며 걸을 수 있는 산길이 그리 흔하진 않다.
이곳은 눈으로 사방이 계속 확인되는 그 선명함 때문에 매력적인 산길이라 하겠다.
모든 게 잠깐인 삶을 살다 간다고들 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수많은 인연들 중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만하지 않겠나.
나는 그대 같은 좋은 사람을 이미 친구로 두었으니 말이다.
사진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부러운 듯 바라보는 시선
그는 기어이 나를 밀어내더니 아래 저런 사진을 찍었다.
이 두 최여사님들도 붙었다 하면 떨어질 줄 모르는 친구다.
진주에서 오신 권영구 님 부부도 순진 형님과 친구다.
나와는 이제 두 번째 산행으로 인연을 쌓는다.
지난번 독오당과 밤머리재 웅석봉 산행을 같이 했었다.
그날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등산화를 선뜻 귀소본능에게 빌려 주기도 했었다.
지리산을 수없이 오르내린 산꾼이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지 않아도 될 만큼 간혹 오름길이 나타나고
넘고 나면 또다시 비슷한 길이 반복된다.
봉수대에서 물 한 모금씩을 마시고, 걸음은 산길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이제 속도를 조금 낸다.
통천문
통천문 좁은 틈을 여유롭게 빠져나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생긴다.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니 공개할 수는 없고, 그나마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는 이 형님 사진을 팔아 먹는다.
부부송과 동정호
고소산성에 닿는다.
해 뜨는 이른 아침에 여기에 올라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그리고는 성벽을 뚫고 자리 잡은 저 소나무 아래 앉아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연하 형님은 한산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멈추었다.
그 길로 내려가시겠단다.
한산사에 기다리고 있으라고,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산행이 끝나고 한산사로 차를 가지고 가니 터벅터벅 걸어 반은 내려오고 있더라.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눈 앞에 갑자기 이런 건물이 나타난다.
저 아래 도로에서 보이든 건물이다.
생태학습관 그런 이름의 건물인 줄 알았다.
당연히 저 아래로 산길도 있는 줄 알았다.
최참판댁으로 내려가는 길 안내 표지판을 무시하고 산길을 따라가 볼 요량으로
건물 난간으로 들어가니 입장료를 요구한다.
다시 돌아 나와 살펴보니 길은 이 건물 때문에 끊어진다.
산길에서 내려오는 기준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다 갈림길에서
다시 건물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스타웨이 하동이라는 카페란다.
커피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한다는데 입장료도 있단다.
저렇게 보이는 난간에서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바닥을 철판과 유리로 만들어 놓았다.
도로를 따라 끝까지 간다.
저 전망대 아래를 지나가면서 위를 바라보니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더라.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도로가 끝나는 곳에는 아직 조경을 하고 있다.
그 아래로 산길이 보인다.
도로 끝 지점에서 비탈을 따라 산길로 내려간다.
건물을 지나 다시 찾아든 산길은 이제 저 끝이 빤히 보인다.
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천천히 이 길의 정기를 느끼고 싶었다.
주능선 영신봉 삼신봉 형제봉 그 산맥의 기운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길이지 않는가.
무덤이 많은 이유도 그런 까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려오는 곳곳 무덤이 즐비하다.
공동묘지라 해도 될 만큼 무덤이 많다.
큰 4기의 무덤은 다른 무덤과 많이 달라 보인다.
대나무 밭 사이로 길이 보이고,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서니 또 한 번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로 다시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다 내려 가야 완성되는 의미 있는 길이다.
나는 내가 부여한 의미를 따르기로 한다.
줄기차게 내려오든 남부 능선이 끝나는 곳 그곳에 산행의 마지막 발자국이 도달한다.
도로를 따라 곧 벚꽃이 만개할 것이다.
강 건너 매화는 이미 꽃을 활짝 피워내고 있다.
봄은 벌써 세월을 관통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 이리 좀 생각해 보면 안 될까.
바람소리도 듣고, 때로는 물처럼 저리 유연하게도 흐르고 말이다.
그렇게 악착 같이 살아야만 사는 게 아니지 않을까.
말 한마디 참고, 물 한 모금 먼저 건네면서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누구도 탓하지 말고
그리 좀 살아 내면 안 될까.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까 말이다.
혼자서 나는 내게 그렇게 타이르듯 중얼거리며 산에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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