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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조작설’에 두 동강 난 보수 유튜버

화이트보스 2020. 5. 3. 10:38



사전투표 조작설’에 두 동강 난 보수 유튜버

입력 2020.05.03 05:59 | 수정 2020.05.03 09:50

[주간조선]

“당신 민주당 편이지? 그럴 줄 알았다. X맨이었다.” “꼭 여당 대변인처럼 보인다. 너무 실망이다.” “위장 보수 짓 그만해라. 구독 취소한다.”

지난 4월 20일 펜앤드마이크 정규재 대표가 유튜브 채널에 ‘(총선) 사전투표 조작설이 참 부끄럽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자 달린 일부 댓글 내용이다. 정 대표는 이날 보수 유튜브 일각에서 제기된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반박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조회수 15만회에 9000여개의 ‘좋아요’와 5200여개의 ‘싫어요’가 따라붙었다. 펜앤드마이크의 영상에는 일반적으로 1만여개의 ‘좋아요’와 200~300개의 ‘싫어요’가 눌린다는 걸 감안하면 5000개 넘는 ‘싫어요’는 이례적인 숫자였다.

정 대표는 이 영상에서 “이번 선거는 애초에 이길 수가 없었던 선거”라면서 “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민주당도 알고 미래통합당도 알고 나도 알았다”고 했다. 정 대표는 그러면서 “여러분 정말 호소합니다. 자중자애하시고 공부 좀 합시다. 언제까지 안보팔이만 하는 고리타분한 보수여야 하나”라고 했다. 총선 대패의 원인을 보수정당 내부가 아닌 투표 조작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미래통합당의 4·15 총선 참패 이후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 묘한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모양새다. 이를 촉발시킨 것은 ‘사전투표 조작 의혹’이다. 총선 사전투표 조작 의혹은 개표 완료 후 결과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난 4월 17일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튜브 채널들은 ‘신의한수’(구독자 123만명), ‘가로세로연구소’(57만명), ‘공병호TV’(49만명), ‘뉴스타운’(41만명) 등이다. 반대로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 동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영상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유튜브 채널은 ‘펜앤드마이크’(66만명), ‘조갑제TV’(38만명), ‘미디어워치TV’(18만명) 등이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설을 가장 먼저 제기하고 나선 유튜브 채널은 ‘가세연’과 ‘공병호TV’ 등이다. ‘가세연’과 ‘공병호TV’는 지난 4월 17일 각각 ‘충격 단독: 사전투표 조작 의혹 0.39의 비밀’과 ‘통계, 이상하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인천 연수구을 선거에서 주요 당의 세 후보가 관외 사전투표로 얻은 득표 수를 관내 사전투표 득표 수로 나누면 0.39라는 일정한 숫자가 나타난 것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이었다.

‘0.39’에서 시작된 사전투표 조작 의혹은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와 미래통합당 후보의 사전투표 득표율이 모두 63:36으로 나타났다는 주장(63:36 의혹)과 투표지의 QR코드를 통해 유권자의 개인정보를 기록한다는 주장(QR코드 부정 의혹)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는 정치인들도 가세하고 있다. 의혹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인천 연수구을 선거에서 낙선한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대표적이다. 민 의원은 인천지방법원에 인천 연수구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증거보전을 신청했고, 4월 28일 법원이 이를 일부 인용하면서 투표함, 선거용지 등에 대한 증거보전 검증을 받아들였다. 앞서 4월 20일 민 의원은 가세연의 야외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민 의원 외에도 김소연 후보(대전 유성을)와 차명진 후보(경기 부천병) 등 이번 총선에 출마했던 후보 중 일부가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어제의 동지가 적으로

반면 이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 동조하지 않는 유튜브 채널은 ‘같은 편’이었던 이들로부터 공격받는 처지가 됐다. 앞서 펜앤드마이크의 경우 정규재 대표가 사전투표 조작설이 부끄럽다는 영상을 올린 이후 구독자 수가 1만명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수의 패배를 못 받아들이는 이들 사이에서 투표가 잘못됐거나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걸로 보인다”면서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의 근거는 과거 김어준 유의 좌파들이 들고 다니던 자료다.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다만 “일부에서 왜 정규재는 사전투표 조작설을 부정하느냐, 의혹 제기에 가세하지 않느냐면서 서운해하는 것도 이해한다”고 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그동안 보수 진영의 대표적 경영·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혀온 인물이지만,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 반박하는 글들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위장우파’라는 인신공격까지 받아야 했다. 이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역시 1000여명 가까이 구독자 수가 줄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통화에서 “자기들끼리 모인 유튜브 채널에서 조작 의혹에 반대하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건 그야말로 생계형 유튜버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또 “어떤 사실에 대한 확률이 낮다고 해서 그걸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보수정당이 대패했으면 잘못한 걸 찾아서 어떻게 재건할지 논의해야 하는데 이런 논란이 길어질수록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사전투표 조작을 주장하고 있는 유튜버들의 저의가 의심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공병호TV의 공병호 대표 같은 경우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인물로 공천과 선거 결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선거 패배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공병호TV에 대해 “사악하다”는 표현까지 덧붙였다.

SUPER SUV, 트래버스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받은 대표적 정치인은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다. 이 위원은 사전투표 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 4월 17일 페이스북에 “반성하고 혁신을 결의해야 할 시점에 사전투표 의혹론을 물면(제기하면) 안 된다”며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이 위원은 이후 펜앤드마이크가 주최한 ‘사전투표 조작 의혹 토론’에 반대 측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했던 이 위원에게 돌아온 건 “그럴 거면 민주당에 가라” “앞으로 뽑아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식의 비난이었다. 이 위원은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노선 투쟁”이라면서 “곧 투표함이 다시 개봉되고 결과가 나오면 누가 선동가였고 누가 진실을 말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보수 유튜버들과 자신을 동화시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고 했다. 일부 유튜버들의 행태를 비판했더니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의 섬네일(견본 이미지). photo 유튜브 캡처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의 섬네일(견본 이미지). photo 유튜브 캡처
예고된 대립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둘러싼 대립으로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사실 양측은 총선 전부터 대립각을 세워왔다. 총선이 치러지기 전 보수 유튜버들의 총선 예측은 큰 틀에서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다. ‘신의한수’나 ‘가세연’ 같은 채널들은 ‘정권 심판을 원하는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통합당 역전승 가능성 보인다!’ 등의 주장을 하며 보수 진영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이들은 사전투표가 끝난 후에는 ‘사전투표율 문재인을 심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펜앤드마이크’나 이병태 교수 등의 유튜브 채널은 ‘통합당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이들은 주로 “김종인-황교안 체제의 리더십으로는 결코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을 호소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있었지만, 일관되게 미래통합당의 행태를 비판해왔다. 특히 김형오 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한선교 전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과 당 지도부 간의 공천을 둘러싼 잡음도 선거 참패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의견 차이는 선거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는 데 있어서도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게 됐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사전투표를 둘러싼 충돌로 나타난 것이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대승할 거라고 예측한 유튜버들이 총선 대패를 면피하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음모론까지 끌고 나온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이들은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로부터 “정당한 의혹 제기조차 못 하게 하느냐” “미래통합당과 보수 세력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신의한수와 가세연, 펜앤드마이크의 정규재 대표, 이병태 교수 등은 방송에 서로 출연하며 ‘협업’하기도 했었다. 진보 정권으로 교체된 이후 일종의 ‘반작용’처럼 유튜브 시장 내에 보수 콘텐츠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당시였다. 하지만 이후 서로 다른 의견이 조금씩 충돌하기 시작했고, 미래통합당의 총선 대패와 사전투표 조작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이제는 멀어져버린 사이가 됐다.

물론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일치하는 의견은 있다. 이른바 ‘세대교체 회의론’이다. 총선 패배 이후 미래통합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830세대론’(1980년대 출생의 30대, 2000년대 학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다. ‘830세대론’은 미래통합당 김세연 의원이 앞장서 제기해왔는데,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 ‘유승민계’(바른정당으로 탈당한 전력을 가진 정치인)는 여전히 ‘배신자’ 낙인이 찍혀 있다. 지난해 연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미래통합당에 지속적으로 쓴소리를 해온 김세연 의원 역시 ‘내부총질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교체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이유도 830세대론에 반대하는 근거 중 하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총선 패배 원인을 두고 보수진영 내에서도 분열적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나친 단정과 주장은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1/20200501018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