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과 세종은 음양(陰陽)의 한 묶음이다. 태종이 흘린 피 위에서 비로소 세종이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우광재-좌희정’ 중 오른팔이었던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태종 같다.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이었다면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현대판 태종이라고 한다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박근혜 이명박 두 직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차가운 면도 함께 연상된다.
▷4·15총선 압승 이후 여권에서 문비어천가가 터져 나오고 있다. 친노(親盧)인 이 당선자도 문비어천가 합창에 합류한다고 했지만 친문(親文)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친문은 문 대통령을 비유한다면 세종에 비유해야지, 태종에 비유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다.
▷유홍준 씨가 2004년 문화재청장 당시 노 대통령을 창덕궁 후원의 규장각으로 안내하면서 “규장각을 만든 정조는 개혁 정치를 추진했고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는 말을 건넸다고 해서 빈축을 샀다. 현직 대통령을 왕조 시대 명군에 비유하는 것만큼 낯간지러운 일도 없다. 그런 비유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역사에 대해 아는 체하고 싶다면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