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티베트

둔황과 티베트

화이트보스 2008. 10. 5. 19:40

둔황과 티베트


베이징대 도서관 지하서고를 개방하라고 주장한 중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지난주말 베이징 등에서 수만명이 ‘티베트 독립 반대’ 시위를 벌였다. 티베트를 문제삼는 나라들의 올림픽 불참 움직임이 일자 ‘민족주의’가 다시금 발동한 셈이다. 내막이야 어찌됐든 시위를 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자유다. 그러나 수만명이 ‘중화(中華)’를 위해 피켓을 들었다면, 13억명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이라도 ‘인류’를 위해 문명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정치적 인질로 베이징대 지하서고에 갇혀있는 티베트의 유서(遺書)를 이젠 풀어줘야 한다고 말이다.


중국정부는 1959년 티베트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교경전 등 문헌자료를 거의 모조리 ‘약탈’했다. 그것이 베이징대 도서관을 비롯한 주요 연구기관에 감금되어 있는 티베트 유서다. 중국 정부가 꽁꽁 싸매고 있으니 일반인에겐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전문가조차 어떤 자료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단지 전문가들은 티베트 유서가 ‘둔황학’이란 신종 학문을 만들어냈던 둔황의 장경동(藏經洞) 유서에 필적할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불교학자들은 기독교의 ‘사해 두루마리’ 못지않은 역사적 종교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 지하서고에 묻힌 ‘티베트 문헌’ -


토번(吐蕃)이란 통일왕조를 통해 8세기에 당(唐)과 실크로드의 패권을 다투었던 티베트이고 보면 부풀린 얘기만은 아니다. 토번은 8~9세기 인도 불교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대장경은 물론 주요 경전과 주석서를 거의 망라해 티베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티베트 유서는 중국·한국의 불교가 8세기 이전의 인도불교에서 변용이 이뤄진 반면, 티베트 불교는 8세기 이후의 인도불교를 이어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티베트 유서는 후대의 첨삭이 가해지지 않은 원형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것도 아닌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과 일본 학자들이 보여달라고 하소연을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정치범 면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이라고 티베트 유서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자적으로 연구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티베트와 관련해 학문적으로도 논의되는 것 자체가 싫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둔황에 대해 그토록 통증을 느끼는 것과는 판이하다. 중화 민족주의의 이중성이 티베트와 돈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둔황은 중국에 있지만, 둔황학은 외국에 있다’고 지금도 땅을 친다. 1900년초 영국과 프랑스 등이 장경동 유서를 ‘약탈·탈취·사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국 베스트셀러 작가인 위추위는 ‘중국문화답사기’에서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원망스럽기만 하다’며 이렇게 울분을 토한다. “나는 그들의 차량 행렬을 막고 싶다. 무엇이든 좋다. 오직 선조들이 우리들에게 물려준 유산을 몰래 훔쳐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둔황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류진바오는 둔황유서가 어떻게 약탈되었는가를 서술한 제3장의 제목을 아예 ‘분통하여 말하는 상심의 역사’라고 했다.


그러나 티베트유서에 대해선 침묵뿐이다. 빼앗긴 것에 대한 통증을 되새기면서 빼앗은 것엔 무신경하다.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에 대해서만 작동하는 중화 민족주의가 의심스러운 것은 그래서이다. 중국이 티베트와 대화로 푸는 성숙함을 보이지 못하는데 대한 불안도 그런 의심을 부추긴다. 달라이 라마도 독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며 “티베트인들 스스로 중국에서 독립하지 않는 게 더 이득이 된다고 느끼게 해달라”고 주문하는 마당이다.


- 중화주의 깨질까 못꺼내는 中 -


그렇다면 티베트유서의 해금부터 고려하는 게 순서다. 인류 문화유산에 대해 중화란 이름으로 둘러친 죽의 장막을 걷어내 티베트는 물론 국제사회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지구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이 인류의 문화유산이 감금된 베이징의 땅 위에서 열린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그래서 베이징 올림픽을 지지하는 중국인이라면 누군가는 외쳐야 한다. “티베트의 독립은 반대한다. 그러나 티베트 유서는 석방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