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ㆍ인간과 신은 하늘사다리 오르내렸다
하늘과 가까워 투명한 햇살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져 내리는 티베트이지만 한여름이 되면 한바탕씩 갑자기 비가 내리곤 한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환상처럼 나타나는 눈부신 무지개, 그것은 설역고원(雪域高原)의 또 다른 상징이다. 제대로 된 반원형의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을 한다. 물론 신화 속의 무지개는 이미 사라졌고 그 빛깔은 티베트 사원의 곱디고운 오색문양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지만 햇빛과 물이 만나 만들어낸 그 찬란한 무지개를 보며 사람들은 아득히 먼 ‘그때(illud tempus)’를 떠올린다.
라싸의 간덴사 올라가는 길. 칭짱철도가 열린 뒤 이 길은 포장도로로 변했다.
아득한 그 시절, 인간이 신과 더불어 살아갔을 때 인간과 신은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타고 서로의 세상을 오르내렸다. 살면서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인간은 하늘로 올라가 신에게 질문을 했고 신들도 심심하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그렇게 어우러져 살았다.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뒤덮인 높은 산이나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은 그들이 타고 오르내리는 사다리였다. 강디세(카일라스)산은 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였으며 린즈(티베트 동부지역)의 신산(神山)에 있는 높다란 나무는 인간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죽으면 그 시신을 상자에 담아 그 나무에 놓아두었다. 나무는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사다리였기 때문이다.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에벤키나 오로첸족에게도 수목장(樹木葬)의 풍습이 있었다. 그들 역시 죽은 영혼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믿었다. 서북지역의 치앙(羌)족은 원숭이가 마상수(馬桑樹)라는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나무를 타고 하늘까지 올라간 원숭이는 천신의 경고를 듣지 않고 금으로 된 대야를 엎어버렸다. 금 대야에 들어있는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인간 세상에는 홍수가 일어났다. 인간과 신은 그렇게 여러 길을 통해 하늘과 땅을 오
르내렸다.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인 조캉사원 앞에 솟아오른 타르초.
그런데 어느 날 그 하늘사다리가 끊겼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고 신도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게 되었다. 하늘에 와서 천상의 지식을 가져간 인간들이 신들보다 총명해질까봐 걱정이 되어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하늘나라를 너무 소란스럽게 만드는 무례한 인간들이 귀찮아진 신이 그 길을 끊었다고도 하고 냄새를 피우거나 욕심을 부려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신들에게 요구하거나, 자연을 파괴하여 신들을 노엽게 하거나, 지켜야할 규칙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인간들을 신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신은 하늘사다리를 거두어들였다. 인간은 이제 하늘을 잃었다.
티베트 신화 속에서 인간이 하늘과 통할 수 없게 된 것은 지굼잰포 시절부터였다. 머나먼 옛날, 하늘에서 비범한 아이가 내려왔다. 그리고 장성하여 얌드록호수의 여신 남무무와 혼인해서 아들 무치를 낳았다. 그리고 무치가 ‘혼자서 말을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 부부는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인 ‘무탁’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긴 티베트의 서사시 ‘게사르(Gesar)왕 전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링 왕국의 왕 게사르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다. 무탁은 바로 티베트의 오색무지개이다. 자신의 후계자를 세상에 남긴 티베트 왕들은 자신들의 아들이 혼자서 말을 탈 수 있는 나이, 즉 13세가 되면 하늘 밧줄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들은 시신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티베트사람들의 화장 습속을 보여주는 신화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화장을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티베트 박물관앞 오색벽화
그렇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하늘로 돌아간 왕들, 즉 천신들의 이야기는 7대까지 이어진다. 천신들은 아침에 지상으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다가 저녁이 되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조캉사원 앞에 서있는 회맹비(會盟碑)에도 신성한 왕, 잰포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설산의 가운데, 강물의 원류, 깨끗한 땅’ 토번(吐蕃: 티베트의 옛 이름)의 국왕이 되었는데 그가 ‘천신이면서 인간세상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티베트의 왕들은 천신의 후손으로, 머리에서 하늘로 바로 이어지는 하늘의 밧줄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밧줄이 끊어지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치’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그 7대 왕들 모두가 이름 속에 어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씩 담고 있다는 점이다. 밧줄 사다리를 통해 하늘로 돌아가던 그 시절, 왕들은 어머니의 계보를 함께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더 이상 밧줄이 내려오지 않을 때, 왕들은 어머니의 이름을 잃었다. 그것은 신하에게 살해당한 왕 지굼잰포에서 시작된다.
왕은 천신의 아들/ 보통 사람의 몸을 가졌으나/ 보통 사람과는 달랐네/ 하늘을 날아올라 세상의 끝까지 가는 큰 신통력을 지녔고/ 늘 부하들과 무공을 겨루는 걸 좋아했지
‘칼로 살해되다’라는 뜻의 이상한 이름을 가진 지굼잰포는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신하에게 목숨을 잃고 하늘로 올라가는 밧줄도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리게 된다. 다른 민족의 신화 속에서 하늘사다리가 사라지는 이유가 인간의 오만함 때문이었다면 티베트 신화에서 하늘 밧줄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지굼잰포의 오만함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때부터 왕들은 어머니의 이름을 버리게 된다.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 벽에는 티베트 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그린 벽화가 있다.
욕심 때문에 하늘사다리를 잃게 된 인간들과 오만함 때문에 하늘 밧줄을 잃어버린 지굼잰포의 이야기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같다. 신화는 인간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 하늘을 만지며 놀 수도 있었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별을 딸 수도 있었던 인간이 하늘사다리를 잃어버린 것은 그들의 방자한 행동 때문이다. 인간은 곡식을 가지고 담을 쌓는 경박한 행동을 했다. 농사는 제대로 짓지 않고 북을 치며 노래하는 인간들이 한심하여 신들은 잡초 씨앗을 세상에 보내어 땅에 잡초가 가득 자라게 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잡초를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북을 치고 노래했다. 그 게으름이 신을 노하게 했다.
신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환경을 절대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생태환경의 파괴는 바로 인간의 파멸을 가져온다. 곰 사냥을 하면서 곰의 넋을 달래주는 제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 때나 함부로 곰을 잡지 않는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잡을 뿐, 그저 재미로 사냥을 하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 역시 언젠가는 인간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신통력을 가진 원숭이가 여신과 혼인하여 낳은 후손들이 지금의 티베트 조상인데, 문제는 그들이 낳은 새끼 원숭이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새끼 원숭이들이 너무 많아지니까 먹고살 것이 없어 생존이 어려워졌다. 물론 그때 자비로운 신은 곡식의 종자를 주어 인간들이 계속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원숭이들이 무한번식을 하게 되어 먹을 것이 없어져 살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간덴사 뒷산에 피어있는 야생화.
하늘사다리를 잃게 된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을 잃게 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던 밧줄을 끊게 된 지굼잰포의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같다. 어머니의 이름은 풍요와 생명을 상징한다. 하늘사다리가 끊겼다는 것은 그러한 풍요로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과의 공존이란 바로 자연과의 공존에 다름 아니다.
물론 하늘사다리를 통해 천계로 올라가 신의 뜻을 듣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일은 샤먼의 몫이었다. 하늘사다리가 끊기면서 직접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된 인간들은 샤먼이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가졌던 모든 민족에게서 하늘사다리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하늘사다리가 끊기면서 인간은 낙원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낙원이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니,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잃어버린 무지개를 다시 찾는 것 또한 인간 스스로가 할 일이다.
'아픈역사에서 배운다 > 티베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정기 (0) | 2008.10.17 |
---|---|
역사의 길목에 핀 화려한 사막의 꽃…실크로드 (0) | 2008.10.13 |
둔황과 티베트 (0) | 2008.10.05 |
고비사막엔 '전설의 보물성'이 있다 (0) | 2008.10.05 |
하늘열차 타고 에베레스트 보러 간다 (0) | 2008.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