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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열병(熱病)' 앓는 한국 경제를 구하라

화이트보스 2008. 10. 24. 08:44

'이유 없는 열병(熱病)' 앓는 한국 경제를 구하라 조선일보 사설


23일 주식시장에서 주가지수가 85포인트 폭락, 1049.71을 기록하며 연중 최저치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원·달러 환율은 45.8원 뛰어오른 1408.8원으로 장(場)을 마쳤다.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1998년 9월 23일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가 최근 금융시장 안정대책과 건설업 지원 방안을 쏟아내는데도 시장에선 먹히지 않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선 5년 만기 외국환평형채권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지난 21일 4.27%로 뛰어올라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외평채 CDS 프리미엄은 지난 7월 말 0.86%, 9월 말 1.8%였다.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브라질(3.86%), 태국(2.57%), 말레이시아(2.68%) 등 우리보다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나라들보다 더 높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가 부도날 경우 투자은행 등이 이를 대신 갚아 주는 파생상품이다. 프리미엄이 뛰는 것은 국가 부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국가 신용등급은 더 높은데 위험이 더 크다는 식의 비(非)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에 있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348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같은 기간 동안 외국인들은 타이완에선 122억 달러, 인도에선 112억 달러, 일본에선 110억 달러, 태국에선 40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더욱이 외국인들은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국내 증시에서 25조6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지만 달러로 바꿔 해외로 가지고 나간 돈은 31조5000억원이었다. 주식을 판 돈만이 아니라 주식계좌에 남아있던 잔고까지 탈탈 털어서 들고 나간 셈이다. 이런 수치만을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탈주'를 감행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국내 주가는 38% 떨어진 반면 일본 주가는 43% 떨어졌고, 타이완·인도·태국 주가 하락률도 40%를 넘었다. 외국인 주식 매도 부담이 우리보다 훨씬 적었는데도 주가는 더 많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 주식시장이 오히려 선방(善防)한 셈이다.

그런데 외환시장은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Sell Korea)'로 인한 충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은 50%나 올랐다. 유로화를 비롯한 다른 선진국 통화와 아시아 지역 통화는 대부분 환율이 올랐지만 상승률은 5~20%에 그쳤다. 엔화는 반대로 달러 대비 환율이 10% 이상 내렸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많이 팔았다는 것만으론 원화 환율이 이렇게까지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외환시장이 시도 때도 없이 경기(驚氣)를 일으키고, 국제 금융시장이 한국 리스크(risk)를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더 높게 보는 또 다른 요인으로 국내 은행들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예금에 비해 대출이 너무 많고, 외화 차입 비중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외국 언론들이 돌아가면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과장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다. 더욱이 정부가 내놓은 은행의 해외 차입에 대한 지급보증 대책으로 불안요인은 대부분 해소됐다고 봐야 한다. 미국, 유럽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예금인출 사태에 대한 우려도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은행들은 비(非)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채권에 물려 큰 손실을 보면서 자기자본이 줄어들었지만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이익을 내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은행의 자본을 확충해 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단기외채가 많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선 단기외채 규모가 1750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내은행들이 내년 6월 말까지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는 800억 달러 정도다. 24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으로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S&P도 최근 "한국 정부의 재정수지가 (선진국들에 비해) 건전하고, 금융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국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 경제와 국내 금융시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熱病)을 앓고 있는 셈이다. 열병의 원인이 심리적이라는 말과 같다. 이럴수록 정부는 정책 대응의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바로 세우는 데 망설여서는 안 된다. 국제 금융시장과 외국 언론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시장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한 국제 공조 문제도 말만 겉돌게 만들 게 아니라 실제 가동되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입력 : 2008.10.23 2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