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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전단살포 과민반응'은 체제가 위태로워졌다는 반증

화이트보스 2008. 12. 7. 10:12

북한군, 南이 보낸 전단 보고 수령 비난해도 되는구나 깨달아"
北의 '전단살포 과민반응'은 체제가 위태로워졌다는 반증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탈북단체의 대북(對北) 전단이 남북관계의 새 변수로 등장했다. 북한 군부는 계속 삐라(전단)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휴전선 지역에서 근무했던 탈북군인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북한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드러난다. 삐라는 북한 군인과 주민들이 바깥 세상에 대해 알게 되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라면이 매달린 기구는 식량 배급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88올림픽 삐라로 구경했다"

1982년부터 10년간 인민군 1군단 46사(강원도 김화 주둔)에서 복무한 박건하씨는 "인민군들은 남조선 삐라를 기다릴 만큼 푹 빠졌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보위부에서 삐라를 만지면 손이 썩는다고 해 집게로 집어 바쳤는데 자꾸 보면서 매일 읽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대 막사 안은 물론 인근지역 어디 가도 남조선 삐라가 덮여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88서울올림픽도 삐라로 구경했다. 서울올림픽 삐라에 군인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같은 민족인 남한이 선진국도 하기 힘든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소식에 민족의 자부심마저 생겼다고 한다. 그는 "김일성·김정일을 비난하는 삐라 내용을 보면서 수령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라면 달린 기구는 노다지로 불려"

2006년 5월 황해도에서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남한에 입국한 군인출신 박명호씨는 "한국정부가 라면이나 통조림, 여성들의 스타킹, 팬티를 보내자 사람들이 그것을 주워 먹고 입기 위해 산과 들을 헤집고 다녔다"며 "남한의 기구에 매달려 오는 물품들은 '노다지'로 불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남조선에서 보낸 것에는 독이 있다"는 보위부의 선전에 속아 모두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1994년 식량난이 본격화되면서 "남조선 풍선에 달려온 것을 먹었는데 죽기는커녕 너무 맛있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인민군 군인들도 풍선을 잡아 안에 든 통조림, 라면 등을 나눠먹었다는 것이다.

당시 식량난으로 인민들은 물론 군인들까지도 남조선 기구를 먼저 잡아 한몫 챙기려고 할 정도로 기강이 해이해 졌는데 1998년부터 남조선 기구가 날아오지 않아 군인들과 주민들이 실망했다고 한다. 박씨는 "북한군인들과 인민들을 대북 전단 살포가 중단되면서 한꺼번에 대한민국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북한의 반응은 체제가 위태로워졌다는 반증"

인민군 소좌 출신으로 휴전선 전연에서 근무했던 차성주씨는 "김정일 정권이 김대중 정부에게 휴전선 대북심리방송과 삐라 살포와 같은 것을 먼저 중단하자고 제의한 것은 그만큼 북한체제가 삐라로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1990년대에 비해 훨씬 적은 양으로 뿌려지고 있는 탈북자의 전단에도 발작하는 것은 과거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처럼 황해도와 강원도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을 만큼의 양은 아니지만 일단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파괴적인 내용을 탈북단체들이 직접 보내고 있기 때문에 대량 살포되기 전에 사전 차단시킬 필요성을 북한당국은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