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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영·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외부 경제여건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올 상반기부터 이미 보수의 위기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남 탓만 하기는 어렵다. 10년 만에 보수 지지로 돌아섰던 사람들을 1년이 못 가 후회하게 만든 일차적 책임은 이명박 정부가 져야 한다.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이 정부가 준비가 부족한 '무개념' 보수정권임이 갖가지 점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를 탄생하게 만든 보수 세력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준비가 부족하기는 보수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2004년 시작된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은 침체된 보수를 혁신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뉴라이트는 뚜렷한 이념적 토대가 없던 보수에게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적 지향을 갖게 만들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는 데에도 적잖이 공헌했다. 하지만 이 정부가 등장한 후 뉴라이트의 한계도 점차 드러났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런데, 하나는 뉴라이트의 정치화·권력화이고, 다른 하나는 뉴라이트의 역량부족이다.
사실 뉴라이트는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적어도 세 개의 분파가 있다. 첫째로 이념과 가치 지향적인 사상운동을 표방하던 분파로 뉴라이트재단·교과서포럼·뉴라이트싱크넷·자유주의연대 등이 있다. 둘째로 정책지향적인 분파가 있는데, 한반도선진화재단이 대표적 예다. 마지막으로 정치지향적인 행동주의 분파가 있는데,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들 중 일부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색을 띠면서 뉴라이트 운동은 애초 지녔던 순수성을 잃고 말았다. 특히 규모 면에서 가장 큰 행동주의 분파가 공공연히 이명박 정부와 길을 같이하면서 뉴라이트가 사상운동이나 정책운동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좁혀놓고 말았다. 이 점에서 '정치화된 뉴라이트'는 이제 종언을 선언할 때가 온 것 같다. 권력에 다가감으로써 뉴라이트는 그 이름에 걸맞은 새로움(new)을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자 그것을 혁신하려고 기든스(A. Giddens)가 '제3의 길'을 제창했다. 제3의 길은 사회민주주의(진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수에게도 필요하다. 영국 보수당의 새 지도자인 카메론(D. Cameron)이 내놓은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가 그 좋은 예다.
뉴라이트가 과연 한국 보수가 내놓은 제3의 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뉴라이트가 지닌 콘텐츠가 너무 취약한 것 같다. 뉴라이트는 이념지향으로서의 자유주의와 그에 부응하는 몇 가지 원칙과 정책을 제시하긴 했지만 보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체계적 프로그램을 구비하지는 못했다. 지속 가능한 보수가 되기 위해서는 보수의 영역을 토대로 진보의 영역을 공략할 만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갖추어야 하는데 뉴라이트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만 준비가 덜 된 게 아니라 뉴라이트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10년 만에 권력을 되찾아 왔지만 보수에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명박 정부의 시야가 5년 뒤로 맞추어져 있다면 보수의 눈은 그보다 훨씬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보수는 한국적 제3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그것은 정치화된 뉴라이트를 벗어 던지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갖춘 전문성을 지닌 보수인 프로콘(procons: professional conservatives with program)으로 거듭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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