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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화王' 김윤식씨

화이트보스 2008. 12. 28. 14:09

'면화王' 김윤식씨
방탄조끼 입고 비즈니스… "면화가 있다면 전쟁터라도 가서 확보해야죠"
테르메스(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정병선 기자 bschu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 댄 우즈베키스탄의 국경도시 테르메스에 '신동 테르메스'라는 방적(紡績)공장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30년 이상 면화사업을 해온 김윤식(金允式·61) 신동에너콤 사장이 지난해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은 공장이다.

공장 착공 당시 직원들 전체가 "테르메스는 전장(戰場)같은 곳이라 투자 부적격지"라고 반대했다. 바로 몇 분 거리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과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철책선이 있고 국경초소에 탱크가 배치돼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면화가 있다면 전쟁터라도 가서 확보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우즈베키스탄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였다. 김 사장은 올해 회사 설립 30주년을 맞아 1000만달러(약 133억원)를 들여 한국에서 방적기 44대를 들여왔다.
▲ 우즈베키스탄 국경도시 테르메스에 방적 공장을 설립한 김윤식 사장이 현지인들에게 향후 사업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김 사장은 1991년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다. 옛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1969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무역업을 배운 그는 미국의 카길 등 곡물회사들이 국제시장에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보고 언젠가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78년 신동무역을 설립해 미국과 남아공 등 세계의 면화산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소련의 붕괴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소련 통제하에 있던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면서 면화를 독자적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면화시장에서도 혁명 같은 사건이었다. 그는 "세계 5위 면화 생산국이자 2위 수출국인 우즈베키스탄의 면화를 확보하는 것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그는 무작정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다. 면화부 관리들을 수시로 만나 보드카를 마시며 면화를 확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노력은 1992년 우즈베키스탄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 연간 8만t(2억달러 규모)의 면화를 확보한 것이다.

그는 1993년 '무역의 날'에 수출 100만달러 탑을 수상했다. 그 다음 해에는 500만달러 탑 수상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김 사장은 이 지역 면화의 10%를 수출하는 큰 손이다. 김 사장은 여기서 매년 25만t의 면화를 확보해 이 중 35%를 한국업체에 공급한다.

그는 늘 러시아제 권총을 갖고 다닌다. 마피아의 위협 때문이다. 1993년부턴 방탄 조끼도 입고 다녔다. 면화를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살해 위협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숙소에 마피아들이 쳐들어와 위협했을 땐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20시간을 피해 다닌 일도 있다.

마피아들이 서울까지 찾아와 면화 사업을 중단하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면화 물량을 너무 많이 확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면화를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김 사장은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업가'라 불린다. 정부 관료들은 그를 가리켜 '찌히 칠라벡'(러시아어로 '조용한 실천가'란 뜻)이라고 한다.

신동은 국내에선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LG나 삼성처럼 친숙한 한국기업으로 통하고 있다. 테르메스 시내 중심지에는 카리모프 대통령 사진과 '신동 테르메스' 광고판이 나란히 서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위험지역 투자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김 사장이 투자한 방적공장의 간판 광고를 시내 복판에 세울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김 사장은 1997년부턴 니트 섬유제품을 생산해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2005년에는 봉제합작공장, 2007년 면실유(면화씨로 기름을 짜 만든 식용유) 공장을 차례로 설립해, 면화를 이용한 대부분의 사업을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7개 도시에서 15개 사업체를 두고 있고 직원은 약 1000명에 달한다.

김 사장은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폴리실리콘 생산이다. 규소가 함유된 광석에서 순도 99.99%의 규소를 채취해 폴리실리콘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쥐작시(市)에 규소 광산을 확보했으며 우즈베키스탄 원자력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 개발을 시작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날 신동 테르메스 공장 앞 도로에는 화물차 20여대가 아프간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김 사장은 "40대에 이곳에 첫발을 디딘 뒤 회갑을 넘겼는데도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흥미로운 곳"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철책선 너머 아프가니스탄을 가리키며 "아프가니스탄은 우즈베키스탄처럼 면화가 자라는 데 적합한 환경이다.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에 양귀비 대신 면화 밭을 일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