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일등 공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53) 전 회장이 특허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한 말이다. 무형의 지식재산이 555억달러를 소유한 세계 최고의 부자를 탄생시켰다는 말이다.
- ▲ 일러스트 이철원
- 특허 출원율이 1%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이 0.11%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이제 지식재산의 확보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과제다. 기업은 많은 특허를 보유해야만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으며 개인의 특허는 착실히 저축한 적금 통장 못지않은 재산 목록이 될 수 있다.
신흥 특허 강국으로 올라선 한국에서도 특허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특허 출원 건수도 작년 한 해 17만건(국내기준)에 이른다. 이는 5년 전보다 약 7만건이 늘어난 수치다. 바야흐로 잘 만든 발명특허 하나가 ‘무형의 로또(LOTTO)’가 되는 시대다.
한국 국제출원 건수 세계 4위
특허선진국 ‘B플러스’ 그룹 가입
지난 10월 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별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반적 발명특허’ 부문에서 세계 7위를 차지했다. 6월 특허청이 발간한 ‘2008지식재산 통계 연보’에 따르더라도 한국은 국가별 PCT국제출원(Patent Cooperation Treaty·특허협력조약) 건수에서 미국(5만2719건), 일본(2만7722건), 독일(1만7801건)에 이어 4번째로 많은 특허(7059건)를 출원했다. 2003년 2947건이었던 PCT국제출원 수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총회에서는 특허법의 국제적 통일화를 논의하는 ‘B플러스’ 그룹에 한국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이 지난 몇 년간 특허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3040세대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관계기관의 분석도 있다. 특허청이 발표한 ‘2006 한국의 특허 동향’에 따르면 특허를 출원한 30·40대 발명가 비율이 각각 47.9%, 24.7%에 이른다. 1990년대 초반 50%에 육박하던 20·30대 발명가가 10여년간 그대로 이어져 30·40대 발명가 득세 시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특허 출원의 4분의 3을 담당하는 기업 출원과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개인 출원에서도 3040세대의 역할은 눈에 띈다. 기업의 경우 30대 특허 출원의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고 개인 출원의 경우는 40대의 비율이 가장 높다.
기업들 기술혁신 위한 특허 확보에 사활
직무발명보상제도 너도나도 도입
지난 7월 발간된 ‘2007 한국의 특허동향’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특허 출원은 2006년 2만4355건으로 2005년 2만575건에 비해 18.4% 늘었다.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을 위한 정부의 지원 확대와 IT관련 분야 중소기업의 확대가 특허 출원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꾀하는 기술 기반의 중소기업들은 이제 지적 재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자체적으로 특허 확보에 관심을 쏟고 있다.
중소기업 내에서 특허 확보에 가장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 것은 ‘직무발명보상제도’다. 2007년 기업의 직무발명 보상 실시율은 2006년에 비해 6% 증가한 38.3%로 아직 미진한 상태지만 이 제도를 도입한 중소기업들은 점차 가시적인 효과를 누리고 있다. 종전에는 업체 내에서 직무 발명에 관한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아 산업기술이 유출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직원들의 업무 효율도 매우 떨어졌다. 또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무발명보상제도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을 향한 해외진출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 제도를 통한 지식재산 확보가 톡톡히 효과를 누리고 있다. 현재 특허청에서는 직무발명보상제도를 도입한 기업에 가점을 부여하고 특허관련 지원사업을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 대기업에서는 이미 절반이 넘는 65.3%가 직무발명보상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SK케미칼은 매년 상반기 및 하반기 2회에 걸쳐 보상을 실시하고 있으며 LG전자는 ‘디지털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핵심 기술을 개발한 직원에게 최대 1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연구원들의 발명 활동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실시해 지난해에만 5000여건의 지식재산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특허청, 대학과 손잡고 특허출원 지원
일부 대학은 입시 반영… 취업 때 가산점도
3040세대에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20대 발명가를 육성하기 위해 특허청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대학의 지식재산 관리의 역량 강화를 위해 특허청에서 특허관리전문가를 파견하는 것이다. 대학에 파견된 전문가들은 지식재산권 관리 프로세스 표준화, 학내 지식재산 가치 극대화를 위한 특허 포트폴리오 전략 등에 대한 조언을 통해 대학의 지식재산 창출과 활용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파견대학의 지식재산 창출 활동을 조사한 결과 2006년 첫 시행 이후 2년간 해당 대학의 특허출원율이 45.2% 상승했고 특허등록률은 64.1%가 늘었다고 발표했다. 기술 이전 사업화 증가율도 34.5%에 이르러 연구능력에 대한 성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허청 산업재산진흥과 김종택 사무관은 “특허관리어드바이저가 대학의 특허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 2012년까지 파견대학을 최대 50개 대학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기 위해 창업으로 눈길을 돌린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특허 브레인스토밍’이 인기다. 최근 특허 브레인스토밍 그룹을 만든 수도권 모 대학 4학년 최규일(25)씨는 “자신의 지식재산인 특허로 제품을 만들어야만 사업화 및 기술이전을 이룰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며 “상대적으로 특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각자 특허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논의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최근에는 토익, 자격증 등 취업을 위한 스펙(specification)은 다소 부족하지만 특허로 취업에 성공한 사례도 생겨났다. 서울산업대 발명동아리인 ‘발명개발연구회’ 회장 장병태씨는 “동아리 선배 중 한 명은 흔히 말하는 취업 스펙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발명 동아리 활동 내역과 소유하고 있는 특허로 대기업에 성공적으로 입사한 사례가 있다”며 대학생 특허출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허 및 실용신안 등록 실적을 대학입시에 직접 반영하는 학교도 상당수 있다. 인하대의 경우 ‘21세기글로벌리더 특이경력·특이재능 보유우수자’를 선발하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는 ‘자기추천전형’으로 입학이 가능하다.
- 미국선 아이디어전문 투자회사 활약
중국선 특허담보 대출제도까지 등장
지적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미국에서는 다수의 기술특허를 획득, 발전시킨 뒤 기업에 돈을 주고 파는 이른바 ‘아이디어전문투자회사’도 있다. 지난 10월 15일 한국 지사를 공식 출범한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IV)’가 그런 회사다. MS, 애플, 소니 등으로부터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유치한 이 회사는 수만 건의 특허를 보유한 글로벌 발명 특허회사다.
지난 9월부터는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부를 두고 일본, 인도, 중국 등 아시아 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기술총괄임원을 역임하기도 했던 이 회사 창업자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50)는 “우리의 목표는 발명가에게 공정한 보상을 해주고 기업이 정당하게 이용하는 특허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향후 5년 혹은 10년 후에 발명자본을 ‘벤처캐피털’처럼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특허 출원 건수가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에서도 특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제도가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7월 중국의 난징(南京)은행에서는 특허를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제도가 도입됐다.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특허보유업체나 개인창업자들이 이 제도를 환영하고 나섰으며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지 관심도 커지고 있다. ▒
/ 김재현 인턴기자ㆍ건국대 국문과 4년
| 제안 |
“잠자는 특허를 실용화할 제도적 뒷받침 절실”
- 특허청은 각 부처나 지자체 등을 통해 특허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나 단체를 신설하고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지만 발명가 입장에서는 아직도 신속하고 용이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특허에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하면 누구한테도 묻지 않고 동사무소에 가서 몇백원의 수수료로 원하는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발명의 완성 역시 이처럼 손쉽게 접근하고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미국의 경우 발명자가 미완성 발명을 완성하기 위한 자문을 청하면 특허사무소는 해당 기술 상담사를 추천해 준다. 특허변호사의 고액수수료를 피할 수 있는 이런 특허 에이전트(Agent) 제도는 비용 문제로 고민하는 영세 발명가를 위해 우리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허 출원, 심사, 등록, 기타 서류취급 등에 관한 수수료는 일정 부분 혹은 전액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지만 특허 등록 후 지불하는 연차료(특허 유지를 위해 특허청에 매년 내는 비용)는 4년차 이후부터 급격히 증가한다. 현재는 등록된 특허가 사업에 활용되느냐 아니냐도 따지지 않는다. 비활용 특허를 구분하여 실시 권한이나 기술을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진다면 휴면 특허를 줄일 수 있음은 물론 분쟁으로 인한 폐해도 줄일 수 있다. 특히 기업에서 이뤄지는 직무 발명은 국가산업기술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의무적으로 운영하도록 해 특허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특허청이나 대한변리사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가 발명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이나 홍보를 해 왔지만 개인발명가의 기술 상담을 위한 측면보다는 특허사무소에 필요한 인력 양성이나 변리사 상담만이 주축이 되어왔다. 때문에 특허라는 것은 알아도 특허제도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 발명가가 많았다. 특허제도에 대한 교육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특허청이나 특허사무소, 상공회의소보다는 동사무소나 산업단지 혹은 공중파 방송을 이용한 반복적이고도 실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특허제도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인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특허기술전문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특허사무소마다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정 분야의 기술전문가들이 발명가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허사무소도 특허기술전문가를 적극 활용하여 발명이 완성되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며 특허기술전문가 또한 발명의 완성 이후에도 특허출원과 심사에 협조할 수 있어야 한다.
/ 정병일 인하대 법과대학 겸임교수
- 미국선 아이디어전문 투자회사 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