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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수사 ‘실종 10년’ 어쩌다 이렇게 됐나

화이트보스 2008. 12. 28. 19:32

대공수사 ‘실종 10년’ 어쩌다 이렇게 됐나

DJ 및 盧 정권… 조직 줄이고 요원들 인사 불이익
간첩 잡는 보안경찰이 밀렵꾼 쫓고 학원폭력 단속
보안경찰 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온 김모(43) 경정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고 한다. “경찰로 있으면서 그때처럼 답답하고 한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김대중 정권 후반기와 노무현 정권 초기엔 위에서 명령해 기소중지자 검거나 밀렵꾼 단속을 하러 다녔죠. ‘간첩도 못 잡으면서 놀면 뭐하냐’며 엉뚱한 일을 시킨 겁니다. 심지어 학원폭력을 단속한다며 고등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습니다. 간첩과 좌익사범들이 뻔히 보이는데도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대공수사에 종사해온 보안경찰이나 국정원 안보수사국 요원들은 지난 10년을 서슴없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대공업무는 그야말로 ‘찬밥’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논의되고 간첩을 잡아봐야 ‘포상’ 대신 ‘질책’이 예상되는 현실에서 간첩을 잡을 엄두를 내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 터진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 사건 역시 지난 정권 10년간 무뎌진 우리의 안보의식과 대공수사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군 안보교육을 담당하는 정훈장교가 간첩임을 알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고, 간첩이 일선 부대에 가서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엉터리 안보 교육’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탈북자 1만명 시대’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이제야 현실화된 것은 우리의 대공수사망이 얼마나 허술해졌느냐를 방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지난 8월 27일 검찰이 공개한 여간첩 원정화의 간첩활동 증거물 중하나인 북한산 정력제 ‘천궁백화’. photo 조선일보 DB
이유1 대공 수사인력·조직 감축

보안경찰 2000년 807명에서 8년 만에 절반으로
보안과·정보과 통폐합… 공안문제연구소도 해체


경찰과 국정원의 대공 수사관들은 지난 10년간 대공수사망이 느슨해진 가장 큰 원인으로 대공수사인력의 감축을 들고 있다.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지난 9월 1일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0년 807명이던 전국 보안수사 담당 경찰은 현재 374명으로 50% 이상 감축됐다. 또 전국 보안수사대도 1998년 44개에서 올 7월 기준 34개로 줄었다. 김대중 정부가 구조조정 명목으로 일선 경찰서 보안과를 폐지했고(1998년 21개, 1999년 60개), 노무현 정부가 광역 보안수사대 수를 크게 줄인 결과다. 경찰의 대공수사 체계는 경찰청 보안국과 지방청 보안과, 지방청 보안과 소속 보안계와 보안수사대로 구성돼 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전체 보안경찰 중 40% 가량을 차지하는 내근 요원을 제외하면 현장을 뛰며 수사를 하는 외근 인력은 전체의 60%에 불과하고 외근요원 중에서도 60% 정도는 1만3000명에 이르는 탈북자 관리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 인원이 수백 명에 불과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은 “한때 30명 가까이 되던 보안수사대 인원이 지금은 8명에 불과하다”며 “나를 제외하고 사이버 전담 요원 1명과 내근 요원 1명에 교육·휴가 인원을 제외하면 불과 2~3명이 간첩 용의자 미행과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사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안경찰은 현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도 200명 가량이 감축됐다고 한다. 일선서 기획부서 등 내근인력을 대민 치안을 담당하는 현장인력으로 돌리라는 지침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일선서 보안과 인력이 감축되는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보안경찰들 사이에서 한때 ‘이명박 정부가 우파 정부 맞느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고 한다.

보안경찰들은 구조조정의 여파로 일선서의 보안과가 정보과와 통폐합되면서 수사 보안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불만도 터뜨린다. 일선서의 한 관계자는 “대민 접촉이 잦은 정보업무와 철저한 보안이 필요한 대공업무는 속성상 상충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일선서가 보안·정보과를 통폐합 운영하고 있어 수사 기밀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공수사요원들 사이에서는 2005년 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가 해체된 것도 대공수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인쇄물이나 방송 내용 등을 취합·분석해온 공안문제연구소는 국가보안사범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왔다. 이적성이 의심되는 글이나 말의 감정을 의뢰하면 전문가들이 북한의 용어와 사상에 얼마나 경도되고 밀착돼 있는지를 살펴 북한 측 인사들과의 접촉 여부나 사건화가 가능한지를 판단해 왔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과거 상당수 간첩수사가 국가보안법상의 고무 찬양 수사로 시작해 연계된 남파간첩이나 지하조직 적발 등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4년 12월 한민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공안문제연구소의 해체를 강하게 요구했고 다음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공안문제연구소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문제가 아니다. 대공수사에서 핵심 축을 담당하는 국정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정원 안보수사국의 인력은 보안 사항이지만 이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절반가량 감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정보위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기준 안보수사국 인력은 1993년과 비교해 23%가 감축됐다.

검찰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공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공안부의 경우 지난 정권에서 공안 3,4과가 폐지됐고 한때 15명에 이르렀던 대검 공안연구관도 현재 4명밖에 없다. 2004년 서울중앙지검과 울산지검을 제외한 전국 15개 지방검찰청의 공안과도 모두 폐지됐다.


이유2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

10년간 경무관 승진 간부 중 보안출신 단 2명
공안검사들도 승진서 탈락하자 줄줄이 옷 벗어


지난 10년간 대공업무 종사자들은 ‘찬밥’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상대적인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경무관으로 승진한 간부 중 보안 출신은 단 2명이었다”며 “김대중 정부 이전만 하더라도 매년 1명 이상씩 보안 출신 경무관이 배출되던 것에 비하면 명백한 인사 차별”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보안경찰은 지난 10년간 내부 승진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특진한 보안경찰 수는 1998년 115명에서 1999년 65명, 2000년 29명, 2002년 21명으로 감소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특진한 보안경찰 수가 연평균 15명에 그쳤고, 지난해의 경우는 6명에 불과했다. 보안경찰들은 지난 정권에서 기소중지자 검거, 밀렵꾼·학원폭력 단속 등의 엉뚱한 임무로 등을 떠밀리다 ‘존재감’을 살리기 위해 외사과에서 담당하던 산업보안범 단속까지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고육지책을 쓰기도 했다. 보안경찰들이 산업보안범 단속에 뛰어들면서 산업보안범 수가 갑자기 폭증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검찰과 국정원의 사정 역시 대동소이하다. 검찰의 경우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승승장구하던 ‘공안통’들이 지난 10년간 물을 먹었고 대표적인 공안 검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송두율 교수 구속 수사를 지휘했던 대표적인 공안통 박만 검사가 2005년 2년 연속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끝에 사표를 던지자 당시 공안 검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공안 부서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유3 그래서 사람이 없다

대공수사부서는 기피 1순위 ‘찬밥’ 신세 전락
경험 있는 사람 드물어 수사 지휘도 오락가락

국정원 역시 지난 정권 10년간 안보수사국이 기피부서로 꼽혀 왔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왜 골치 아픈 짓을 했느냐’는 눈총을 상부로부터 받아왔던 게 대공수사”라며 “찬밥 신세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보직으로 자청해 옮긴 수사요원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안보수사국은 김대중 정부 때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는 직접 수사하지 못하고 경찰로 이관토록 수사 영역이 축소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공수사요원들 사이에서는 “이제 수사를 제대로 하려 해도 경험 있는 사람이 태부족”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간첩 수사를 지휘하고 혐의자를 기소해야 하는 검찰의 경험 부족이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이번 원정화 사건에서 보듯 간첩 수사는 검찰 국정원 경찰 기무사가 합동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이 간첩 사건 단서를 잡더라도 본격적인 수사를 위한 ‘공작 승인’은 A급의 경우 국정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구속영장을 청구해 기소를 위한 본격 심문을 하기 위해서는 검찰의 지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험 있는 공안검사가 드물다 보니 간첩 혐의자를 제대로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서울지검 공안 1·2부의 경우 13명의 검사 중 제대로 공안사건을 해본 사람은 2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오세철 교수를 비롯해 7명의 영장이 기각된 최근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건의 경우도 검찰의 영장 청구가 서툴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공수사 부활하나

국정원·기무사, 원정화 사건 계기 대대적 색출 나서
盧 정권 말기 부실수사 논란 ‘일심회’ 재수사도 불가피


지난 10년간 꾸준히 하락해온 검거 간첩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수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증가 추세를 보일 전망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원은 1998년 493명에서 2000년 168명, 2004년 83명, 2007년 40명으로 꾸준히 줄었다. 국정원의 간첩 검거 실적도 1998년 9명에서 2000년 3명, 2002년 2명, 2005년 1명으로 미미한 숫자를 이어갔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의 경우 국정원 검거 간첩 수가 10명으로 늘었지만 여기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심회 사건 관련자가 5명이나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3월부터 7월까지만 하더라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된 인원이 19명에 이른다. 여기에 원정화 사건과 검찰이 다시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노련 사건 관련자들을 포함시키고 대공수사당국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대형 간첩사건이 조만간 발표된다”는 말까지 감안하면 간첩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수는 올해 증가 추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실제 경찰과 국정원, 기무사 모두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10년간 소홀히했던 간첩과 좌익사범 색출에 다시 나서는 분위기다. 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재개된 국군 기무사령부는 얼마 전 이상희 국방장관 주재 회의에 전달된 ‘군부 침투 간첩용의자가 50명’이라는 메모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바탕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메모에는 ‘군내 좌익세력 170여명’ ‘군 기밀 유출 용의자 50여명’ ‘내사 100여건’의 글귀도 적혀 있었다. 국방부와 기무사 측은 이 메모의 내용에 대해 “통상적인 방첩활동 내용으로 별 것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10년간 방치돼온 군내 불순세력을 뿌리뽑기 위한 조치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높다.

지난 5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간첩·보안사범 수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국정원도 덮어놓았던 간첩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노무현 정권 말기 부실수사 논란을 빚었던 일심회 사건을 다시 손대느냐의 여부. 386 운동권들이 연루된 일심회 사건은 김승규 전 국정원장이 ‘청와대 386들의 수사 개입’을 폭로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혐의 대상자로 떠올랐던 청와대 386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재수사가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안당국의 이러한 발 빠른 자세 전환에 대해 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386 당직자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심도있게 논의됐던 게 엊그제인데 이명박 정부가 매카시를 방불케 하는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며 “수사당국이 무리하게 옭아 넣더라도 이제는 법원이 시대에 맞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


/ 정장열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