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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화 사건, 새로 밝혀진 뒷얘기들

화이트보스 2008. 12. 28. 19:39

원정화 사건, 새로 밝혀진 뒷얘기들

군대식 ‘정권 지르기'‘옆차기’에 질린 가정부 "수상하다·간첩 같다" 말 퍼뜨려 수사 단서로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린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마치 영화와도 같은 스토리 때문에 사건 전모가 발표된 이후에도 뒷말이 무성하다. 공식 발표 때는 알려지지 않았던 수사 뒷얘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보통 여성이 할 수 있는 폭행 솜씨가 아니었다”
 중국으로 추방된 가정부 인천공항으로 불러 조사


▲ 원정화씨
수사당국이 원정화(34)를 추적하게 된 계기는 원정화가 고용했던 조선족 가정부 조모씨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원정화의 경기도 군포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며 원정화의 7살 난 딸을 키워온 이 조선족 가정부는 자신을 대하는 원정화의 ‘이상한 버릇’ 때문에 ‘간첩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됐다. 원정화는 가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타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뺨을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태권도의 정권 지르기와 옆차기 등의 동작으로 가격을 했다. 보통 여성이 할 수 있는 동작이나 힘이 아니었다. 조선족 가정부는 원정화의 남다른 구타 습관과 함께 중국 출장을 갔다 오면 “북한 영사관에 들렀다”고 얘기하던 것에 주목해 ‘간첩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됐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수상하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이 조선족 가정부가 퍼뜨린 말이 경기경찰청 보안과 수사관의 귀에 들어가면서 원정화에 대한 추적이 시작됐다.

이 조선족 가정부는 수사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다. 수사당국은 비자 만료로 중국으로 추방돼 돌아간 이 가정부의 소재를 추적해 찾아냈고 한국에서 보고 들은 원정화의 언동에 대한 진술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당국은 이 조선족 가정부를 한국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추방 전력 때문에 입국이 불가능하자 인천공항 내에서 진술을 받고 중국으로 돌려보냈다.


내사종결 직전 사건을 후임자가 끈질기게 수사해 개가
전화감청 중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말해 체포 서둘러


수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정화 수사는 초기에 그냥 묻힐 뻔한 순간도 있었다. 조선족 가정부의 말을 토대로 2005년부터 원정화를 1년여간 내사해온 경기청 수사관이 퇴직하면서 원정화 건은 내사종결된 상태로 캐비닛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정화 내사 기록을 인수인계 받은 수사관이 다시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결국 성과를 올렸다.

수사당국은 지난 7월 15일 원정화 체포 결정을 내리면서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간첩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목적 수행’을 했다는 부분이 입증돼야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수사를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원정화의 해외출장 중 통화를 감청하면서 “빨리 정리하고 돌아가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원정화가 수사 낌새를 눈치챘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체포에 들어갔다.

인천공항에서 체포된 원정화는 경찰병원으로 직행해 알몸수색을 받았다. 과거 간첩 사건에서 보듯 신체 은밀한 부분에 자해용 수단을 숨겨놓았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후 원정화는 7월 17일 구속 직전 수원지방검찰청 담당 검사와의 면담에서 ‘북한 보위부의 남파 지령을 받고 침투한 간첩’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간첩 활동에 대한 구체적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애인 황 중위 “난 너 없인 못산다”며 자수 권유하자
“그렇게 날 사랑하면 죽어보라” 약 주며 음독 유도

원정화와 함께 구속된 황모(26) 중위(구속·대위 진급예정자)의 행동은 원정화 사건에서 가장 공분을 일으킨 대목이다. 군 안보·정신 교육을 담당하는 정훈장교가 어떻게 교제하던 여자가 간첩인지 알고도 신고를 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원정화보다 7살 연하인 황모 중위는 원정화가 안보강연을 나간 사단 정훈장교로 2006년 11월 ‘안보강사 원정화’를 안내하다 서로 사귀게 됐다. 두 사람은 수시로 만나며 정을 나눴고 황 중위는 원정화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한 수사관계자는 “두 사람 통화 내역을 조회한 결과 1년에 300통이 훨씬 넘었다”며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황 중위는 원정화로 인해 음독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원정화의 군포 집에서 양주 두 병을 나눠 마시다가 원정화가 불쑥 “내가 간첩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얘기를 꺼낸 것이 도화선이었다. 원정화의 얘기가 농담이 아님을 깨달은 황 중위는 “너 없이는 못산다. 기다려 줄 테니 자수하라”고 권했지만 원정화가 반응이 없자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며 협박반 애원반의 얘기를 했다. 하지만 원정화가 “그러면 죽어보라”며 자신이 복용하던 수면제를 건네자 술김에 이를 수십 알 삼켰다. 혼수 상태에 빠진 황 중위는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져 3일 만에 깨어났다.

키가 158㎝에 통통한 편인 원정화는 소수 7병을 마시는 대단한 주량이라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스스로도 평소 “폭탄주 100잔은 마실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술 실력에 자신감이 강했다고 한다. 군 장교들이나 탈북자단체 간부들을 소개받은 후 ‘이용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3~4일 후 다시 연락해 서로 술을 마시다 성관계까지 이어가는 수법을 보였다.

탈북자 지원금·대북무역 횡령금 모아 北 동생 상점에 투자
애인인 정보사 장교 암살 지령 받았지만 정(情) 때문에 포기


원정화가 암살하려고 했던 대북 정보요원 두 명은 일부 언론 보도처럼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 군 정보사령부 장교들이었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북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던 이 장교들은 원정화가 직파 간첩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원정화를 이용하려 했다고 한다. 북한을 들락거리며 북한 고위층과 친분을 과시하는 탈북자 원정화로부터 고급 정보를 빼내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실제 수사 결과 원정화는 간첩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다. 2002년 10월 북한 청진에 가서 시 보위부 간부를 만나 남한 내 청진 출신 탈북자를 색출해 달라는 지령을 받았고, 2006년 5월에는 중국 토먼을 거쳐 두 차례 북한 온성을 방문해 동생을 만났다. 원정화는 탈북자 지원금, 대북무역 횡령금 등을 모아 동생이 운영하는 외화상점에 투자하기도 했다. 

원정화와 접촉하던 정보사 장교 중 한 명은 원정화와 ‘각별한 사이’였다는 것이 수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장교는 원정화에게 새로 나온 북한 여권을 구해줄 것을 요구했고 심지어 핵 관련 정보를 빼내줄 것도 부탁했다. 원정화가 이런 사실을 계부이자 상부책인 김동순(63·구속)에게 알리자 김동순은 원정화에게 암살을 지시했고, 원정화는 홍콩에서 이 정보사 장교를 만나 며칠을 함께 보내며 암살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결국 암살은 시도하지 못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원정화가 그간의 정 때문에 암살을 시도하지 못한 것 같다”며 “원정화는 직파 간첩이 통상 거치는 5년의 교육 훈련 과정을 밟지 않고 단기 교육만 받은 탓인지 간첩으로서의 정신무장이 덜 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원정화는 홍콩에서 자신이 암살하려 했던 정보사 장교와 헤어지면서 “몸조심하라”는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보위부 출신 첫 간첩… 보위부 경력 탈북자 불러 확인
대외연락부 소속에 비하면 임무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


원정화가 직파 간첩으로서는 드물게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이라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통상 북한의 5대 대남공작기구는 당 대남사업담당비서 산하에 있는 대외연락부와 통일전선부, 35호실, 작전부, 인민무력부 정찰국 등으로 국가안전보위부는 속해 있지 않다.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직파 간첩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탈북자 중에서도 국가안전보위부 출신은 단 2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정화를 검거한 후 수사당국은 ‘보위부 출신’이라는 원정화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2005년 탈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한모씨를 불러 보위부 간부들의 용모와 보위부 위치에 대한 원정화의 진술을 일일이 검증한 끝에야 원정화 진술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한 수사 관계자는 “남한 내 지하조직을 건설하는 등 묵직한 과제를 수행하는 거물 간첩들은 보통 대외연락부 소속이었는데 원정화 같은 보위부 소속 간첩은 탈북자와 군 동향 파악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6·15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해상을 이용한 간첩의 직접 침투를 포기한 대신 해외에서의 신분세탁이나 탈북자로 위장한 우회 침투를 택하고 있다”며 “특히 김정일이 이미 2004년 대남공작부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남조선 도피 주민 속에 우리 공작원을 침투시켜라’는 지시를 내린 것에 비춰보면 원정화와 같은 위장 탈북자 간첩은 더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 정장열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