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한국판 마타하리’ 원정화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공안당국이 내사해온 또 다른 여성 간첩 혐의자가 원정화 사건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3월경 중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2의 원정화’로 불릴 만한 이 여성 간첩 혐의자는 원정화(34)와 동갑인 탈북자로, 원정화처럼 완벽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며 중국과의 무역업에 종사해왔다. 국내 입국 이후로만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경력이 있는 이 여성은 탈북자단체 핵심 임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등 ‘수상쩍은 행동’을 해오다가 동료 탈북자의 신고로 공안당국의 내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 여성은 지난 3월경 중국으로 출국해 6개월째 귀국하지 않고 있다. 공안당국은 “이 탈북 여성에 대해 간첩혐의로 내사를 진행해 왔고 현재도 행방을 쫓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귀국 가능성 여부 및 현재 어디 있는지 등에 대해선 자신하지 못하는 상태다. 간첩 혐의자가 공안당국의 감시망을 뚫고 사실상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탈북 여성은 탈북자 집단 거주지역인 서울 모 아파트 쫛쫛쫛동 ×××호에 거주해온 박모씨이다. 하지만 지난 9월 3일 찾아간 박씨의 집은 불이 꺼진 상태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박씨가 지난 3월 이후 현재까지의 관리비를 체납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 이웃은 “예전에 그 집에는 여행용 가방을 든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출입이 잦아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들을 했었다”며 “하지만 요즘은 수개월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박씨에게 4살된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도 못 본 지 한참 됐다”고 했다. 박씨가 아파트 관리비를 올 2월분까지 낸 것으로 보면 지난 2월 말~3월경 출국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공안당국은 박씨에 대한 세세한 인적 사항과 내사 시점 및 구체적 혐의점, 그리고 정확한 출국 일시에 대해 명쾌한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다만 “내사가 진행 중인 보안사항”이라는 점과 “박씨가 올 초 중국으로 출국한 뒤 현재도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정도만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박씨가 왜 돌연 중국으로 출국해 이례적으로 장기간 체류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박씨와 친분이 있는 동료 탈북자들은 “박씨가 중국사업을 한다며 출장이 잦았지만 6개월씩 집을 비운 적도, 이렇게 오랫동안 주변과 아무 연락이 없던 적도 없었다”고 말한다. 공안당국의 관계자는 “내사를 받아온 박씨가 원정화에 대한 수사가 무르익자 불안을 느껴 도주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내사 중인 간첩 혐의자라고 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출국금지를 하게 되면 우리 쪽의 수사 사실이 노출되고 인권위 제소를 비롯해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가 출국한 3월경은 원정화에 대한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었다. 원정화가 국내에서 한 간첩활동과 계부이자 상책인 김동순의 존재도 확인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수사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이며, 언제 어떻게 원정화를 체포할 것인지를 논의하던 단계였다. 박씨가 원정화 수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당연히 신변 위협을 느끼고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1년 초 탈북자 신분으로 국내에 들어온 박씨는 원정화와 여러 모로 비슷했다. 원정화와 동갑인 데다가 원정화처럼 서울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말이 서툴기 마련이지만 박씨는 2001년 입국 직후부터 북한 어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료 탈북자들이 ‘특수훈련 받은 게 아니냐’며 간첩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도 우선은 말씨 때문이었다.
박씨가 원정화처럼 대중국 사업을 하면서 탈북자단체 임원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탈북자단체 동향을 묻고 다닌 것도 의심을 샀다. 박씨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이었고 특히 탈북자단체 핵심 임원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고 한다. 한 동료 탈북자는 “박씨는 남한 정착에 힘쓰기보다 탈북자단체에 훨씬 관심을 기울이는 등 (간첩으로)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삶 역시 원정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원정화처럼 국내에 들어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며 자식을 낳았고,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다. 박씨는 국내에서 두 번 이혼을 했고 출국 전까지 한 남자와 동거 중이었다. 군인들과 주로 교제했던 원정화와 달리 박씨는 여행사 대표, 회계사 등 비교적 안정적 직업을 가진 중상류층 남자들과 교제했다는 것이 주변 얘기다. 박씨는 키 165㎝의 날씬한 체형과 미모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대북 전문가들은 “여성 탈북자들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이른바 ‘신분 세탁’을 하는 것은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해 결혼 상대를 고른 원정화처럼 박씨가 결혼정보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원정화는 결혼정보회사에 고객으로 접근했지만 박씨는 아예 결혼정보회사의 상담원으로 취업했다. 입국 직후인 2001년 8월 유창한 서울말과 우리 사회 사정에 밝은 점을 앞세워 유명 결혼정보회사의 상담 컨설턴트로 취업, 2002년 8월까지 1년간 일했다. 이 결혼정보회사의 관계자는 “탈북자 정착을 돕기 위해 정부가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박씨가 채용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결혼상담 컨설턴트를 그만둔 후 원정화처럼 대중국 무역에 종사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무역을 했는지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동료 탈북자들은 “임대아파트에 살면서도 비교적 풍족하게 살기에 사업이 잘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아직 내사 중인 상태이므로 자세히 얘기할 순 없지만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상하다’는 얘기가 많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공안당국의 의심대로 진짜로 간첩 활동을 했다면 원정화처럼 성(性)을 미끼로 정보원에게 접근하는 ‘마타하리형 간첩’이 북한의 새로운 간첩 유형이 되는 셈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간첩은 남성간첩보다 정보수집에 유리한 면이 많아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올해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1511명(2008년 5월 현재) 가운데 여성이 1176명으로, 77%에 이른다. 이와 관련 한 탈북자단체 임원은 “이번 원정화 사건이나 박씨 문제 등과 관련해 다수의 선량한 탈북자들, 특히 여성 탈북자들이 오해나 불이익을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
박씨 행적 - 입국에서 도피까지
생년월일:1973년 12월 25일 (원정화와 동갑)
거주지:서울 모 아파트 ○○○동 ×××호
2001년 초 탈북자 신분으로 입국
(원정화는 2001년 10월 입국)
2001년 8월~2002년 8월 유명 결혼정보회사 근무
2003~2004년경 남한서 첫 결혼
2005년 초 첫 출산
2005년 경 이혼 및 재혼 (재혼 후 다시 이혼함)
2006년(추정) 국정원 및 경찰이 간첩 혐의로 박씨 내사 시작
2007년 5월 재혼한 남편과 결별
2008년 3월경 박씨 중국으로 출국
(원정화에 대한 내사 마무리돼 가던 시점)
2008년 7월 공안당국, 원정화 체포
2008년 9월 현재 박씨 중국 체류 중으로 추정(원정화는 구속됨)
간첩 내사 받던 미모의 30대 탈북자 6개월 전 중국 피신
잦은 결혼·이혼과 해외 출장, 남한 말 유창
원정화 수사 급피치 올리자 잠적… 4살 딸도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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