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군 |
지난 7일 부산 앞바다에서 건군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관함식(觀艦式)이 열렸다. 관함식(Fleet Review)은 군 통수권자가 군함을 한곳에 집결시켜 놓고 전투태세와 군기를 검열하는 해상 사열의식으로 1341년 영국 에드워드 3세가 출전 함대를 검열한 것에서 유래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탑승한 사열함 강감찬함이 앞장서고 관람객 등 주요 인사 2000여 명을 태운 아시아 최대의 헬기상륙함, 길이 199m 폭 31m 비행갑판에서 헬기 7대가 동시에 이착륙할 수 있는 독도함이 뒤따랐다.
10년 전 제1회 관함식의 좌승함 광개토대왕함이 3500t급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배수량이 현저히 크고 무장도 강화된 최신예 강감찬함 5000t급 한국형 구축함으로 대체됐다. 잠수함도 장보고급(1200t)에서 214급(1800t) 손원일함이 새로 등장했다.
사열함 2척이 앞뒤로 정렬하자 줄지어 기다리던 신의 방패 7600t급 이지스 구축함(DDG-Ⅲ) 세종대왕함을 비롯해 4300t급 한국형 구축함(DDH-Ⅱ) 최영함, 3200t급 한국형 구축함(DDH-Ⅰ) 광개토대왕함 등 구축함과 호위함, 초계함, 고속정, 잠수함, 고속 공기부양정 LSF-Ⅱ 등 해군함정 19척과 해경 함정 등이 사열함 앞을 지나갔다. 함정에서 거수경례를 올리는 장병들의 늠름한 모습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해군의 P-3C 대잠초계기, 작전헬기 링스, 상륙기동헬기 UH-60 및 공군 전투기들이 에어쇼를 펼치고 UDT 부대의 해상 낙하가 입체적으로 진행됐다. 이윽고 관함식의 절정인 해상 사열식이 전개됐다.
사열함인 강감찬함과 독도함 2척은 알파벳 순으로 해외에서 온 11개국 함정과 해군함정 등 모두 50여 척 앞을 지나며 사열했다. 처음 참가한 중국·러시아를 비롯해 영국·캐나다·호주·인도·태국 등 외국함정은 대함경례로 예(禮)를 표했다. 중국·러시아·일본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나라들이다. 일본 요코스카 모항(母港)에 처음으로 배치된 미7함대 소속 원자력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과 이지스함 3척, 중국과 일본의 4700t급 구축함 등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관함식에서 마치 신기루(蜃氣樓)와 같이 펼쳐지는 우리 해군의 힘찬 항진을 바라보면서 감개가 무량했다. 특히 6·25전쟁 발발 당시 미국으로 건너가 백두산함 도입 등 초창기 해군 건설에 젊음을 바쳤던 필자로서는 당시 우리 해군이 매우 열악한 장비로서 전투함 1척, 소해정 26척, 수송함 2척 등 총 33척으로 북한과 맞서 싸웠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오늘 우리 해군은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발간 ‘밀리터리 밸런스(Military Balance) 2007~2008년 판’에 따르면, 병력 6만3000여 명과 잠수함 12척, KDX-Ⅰ 3척, KDX-Ⅱ 3척, KDX-Ⅲ 1척 등 구축함 7척 및 호위함 9척, 기타 전투·소해함정 113척, 독도함 등 대소형 상륙함정·주정 48척, 군수지원함정 24척과 P-3C 8대, 링스(Lynx) 24대가 전력이라고 한다.
정말 가슴이 뿌듯해진다.
‘하나 돼 바다로 세계로’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번 관함식은 1998년 10월 13일 부산 앞바다의 제1회 국제관함식에 이은 두 번째 관함식이다. 그 10년 사이 우리 해군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발전을 통해 전통적 군사동맹과 군사외교는 물론 문화와 경제적 분야에서 엄청난 유무형의 성과를 거뒀다. 실질적으로 이번 관함식에 참가한 외국 해군 장병들이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한국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됨은 물론 경제가치 효과가 무려 1088억 원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군사적인 면에서 98년 국제관함식에 불참했던 중국·러시아 함정이 이번에 참가한 것은 양국 관계가 좀 더 진전되고 한국 해군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해 준 대표적 사례라는 평을 받았다. 또 우리 이지스함과 대형 상륙함 등이 관함식에 참가한 미 해군의 함정 등과 유사시 한미연합 해군구성군(NCC)이 돼 한반도 방어에 주역이 될 것임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오늘날 해군력은 국력의 상징이다.
해양으로 연결된 지구촌은 지역 사이의 상호 의존이 더욱 심화돼 이제 자급자족의 경제보다 서로 무역을 중시하고 있다. 해군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모든 대륙에서 생산 공급되는 생활필수품이나 다양한 제품과 원자재가 교역으로 이뤄지며 이 무역 가운데 90%가 바다로 수송된다. 따라서 해상교역에 대한 작은 충격이나 방해도 큰 영향을 미쳐 세계가 흔들린다. 식량과 에너지, 상품의 공급원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세계 경제는 물론 평화에 매우 중요하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통했던 대영제국과 지금의 세계 유일 강대국인 미국의 힘은 해군과 해병대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도 동남아시아의 해로(海路) 확보에 수출과 원유 수입의 사활이 달려 있다. 우리 해군이 ‘세계로 바다로’라는 슬로건으로 대양(大洋)해군의 ‘꿈’을 부르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양으로 나가자면 더욱 큰 배가 필수적이다. 점차 규모가 커지는 해상투사전력은 우리 해군의 미래를 향하는 과정(process)이다.
이번 관함식에서 보여준 해군의 괄목할 만한 발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80년대부터 치밀하게 추진해 온 한국형 구축함 시리즈 KDX Ⅰ·Ⅱ 및 이지스 구축함 KDX-Ⅲ 등 계획 아래 단계적인 함정 건조를 추진해 온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1800t급 함정에서 3500t급, 다시 5000t급으로, 그리고 수상함정의 정점(頂点)으로 불리는 7600t급 이지스함에 이르기까지 점차 급(級)을 올려 웬만한 함정은 우리 손으로 모두 건조하게 됐다. 이제 세종대왕함의 취역(就役)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가 다섯 번째 이지스함 보유국이 됐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는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위협이 나타나기 전 평화로운 시기에 미리 신예 무기체계를 구축해 다가올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바다를 제패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과 같이 우리가 지금 해상 세력과 상륙군 세력의 확충에 더욱 투자해 바다를 통한 패권(覇權)의 지름길, 해군력 증강이 탄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강력한 해군과 해병대를 통해 해상교통로(SLOC)를 통한 국제 무역을 보호하는 등 평화를 지키는 국제적인 과업에 동참해야 한다.
이번 국제관함식은 세계 각국 해군들과 우호 협력을 증진하는 한편 국민들에게는 비약적으로 성장한 해군의 위상을 확인시켜 준 성공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한 국가가 군사력 건설계획을 세울 때 먼 장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과 치밀한 계획이 왜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이제 관함식 행사의 감격을 다시금 떠올리는 노해병으로서 필자는, 우리 해군의 항공 전력이 하루빨리 강화돼 대형상륙함 독도함 비행갑판에서도 헬기는 물론 V-22 오스프리, 해리어 등 ‘수직단거리이착륙공격기(V/STOL : Vertical Short Take Off and Landing)’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공정식 해병대전략연구소 이사장·전 해병대 사령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