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생명의 은인 秀穴로 안내 문중 후손들 번창 큰 報恩

화이트보스 2009. 1. 14. 17:07

[풍수기행]생명의 은인 秀穴로 안내 문중 후손들 번창 큰 報恩

[풍수기행]<9> 積善之家에 돌아온 大地名穴 - ‘찬샘이’安씨 사례


 




예고한대로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거나 확인한 사례를 중심으로 몇 회에 걸쳐 글을 싣고자 한다.

겨울을 재촉하듯 밤새 내리던 비가 멎어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던 11월 둘째 일요일에 필자와 이면의 기획을 맞고 있는 남도일보 김용석 부장, 그리고 박종곤 광주산수초등학교장, 안택선씨(찬샘이 안씨 집안의 5대 조모를 모신 장본인)가 구례로 풍수기행을 떠났다.

일행은 마치 전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찬샘이 安氏’(본관은 순흥인데 맑고 찬샘물이 사시사철 솟아나는 구례땅에 자리잡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가문의 번성을 기약해 줬다는 음택명혈을 직접보기 위해 구례군에 있는 해발 740m의 산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산행 중 안씨는 “이 산 장상에 모신 사람이 다름아닌 5대 조모인 고령 박씨 할머니”라며 이렇게 험한 산꼭대기에 모신 인연과 사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년전 구례군 산동면 찬샘이 안씨 마을 안병희씨 집 대문앞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사색이 된채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한 나그네(전주 이씨)를 발견하고 성심성의 껏 치료하고 먹여줬다.

#그림1중앙#

그 나그네는 전북 정읍에 사는 전주이씨로 잘못 먹은 음식탓에 식중독에 감연된 사실을 모르고 밤치재를 무리해서 넘어 오다 탈이 났던 것이다. 안씨는 그 나그네를 안채의 방 한칸을 내주고 그 곳에 머물게 했는데 이 사람은 6개월후에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나그네는 생명의 은인인 안씨에게 자신이 18세부터 40여년동안 그토록 애지중지해오던 산 정상에 있는 명혈대지를 내주면서 반드시 선대 할머니의 채백을 이장하도록 권했다고 한다. 이장할때 장정 20명과 길들여진 매 한마리를 도포자락에 몰래 숨겨가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 곳에 할머니를 모시면 국가에 기여할 자손이 나올 것이라고 일러줬다.

이와 함께 그 할머니의 6대손 중 역리와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이 나와 더 정확하고 더 큰 길지를 찾아 그 할머니의 후손을 거기에 모시게 될 것이라고도 예언했다.

나그네는 다만 그 혈의 천광은 쥐의 일주(日柱·생일이 壬子일진)를 가진 늙은이가 행하게 될 것이라는 믿기지 않은 예언을 남기곤 귀향길이 올랐다고 한다. 그가 떠난 뒤 안씨 문중에서는 서둘러 이씨가 택해준 날짜에 맞춰 할머니의 묘를 옮겼다.

그런데 이장하던 날 놀랍고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묘를 쓰기위해 체백 묻을 곳을 깊이 파는 작업을 하는데 이씨의 예언대로 란석(卵石) 7개가 나왔고 그 난석이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에 도포자락속에 감춰온 매가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그 매는 보이지 않은 상대와 치열하게 싸웠을 것으로 짐작될 만큼 깃털이 빠져 휘날리고 깊은 상처를 입은 후 땅바닥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기이한 현상을 30여명의 사람들이 지켜봤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명혈대지에 조모를 이장하고 난뒤 5대손부터 출생 후손의 80%이상이 공직으로 진출해 나라에 기여하고 있다.

또 구례군에선 맨 처음 사시합격자인 安旺善씨(광주지검 차장검사를 거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중)가 나왔다. 그때부터 일명 찬샘이 안씨의 이런 일이 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씨의 예언대로 6대손 중 한 사람(看山을 함께 한 안택선씨)이 역리와 풍수지리학 연구에 정진해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옛부터 적선지가에 명당이 얻어진다고 했다. 바로 찬샘이 안씨의 사례가 이를 입증해주고도 남는다 하겠다.

그리고 음택풍수지리에 대해 가감없이 사실 검증이 이뤄진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씨가 점혈해서 자신의 묘지로 삼으려 했던 음택명당을 결국은 안씨문중의 후덕하고 인정어린 선덕에 감동 돼 보은차원에서 안씨 문중에게 내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명당터가 구례군의 19대 명혈중에서 엄선된 4대명혈의 하나였으며 그 중에서도 수혈(秀穴)로 손꼽힌다. 아직도 수회권상 용희소(水回拳上 龍喜笑), 마시삼추 북안비(馬嘶三秋 北岸肥), 월명제하 화쟁비(月明蹄下 花爭飛) 등 4대 명혈중 3대 명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적덕가(積德家)가 그 명혈의 주인이 될지 사뭇 궁금하다.

안씨문중에서 적선을 베풀고 얻어 쓴 명혈은 계명구우 동령효(鷄鳴九宇 東嶺曉)로 기록돼 있다. 쉽게 말해 아홉개의 둥주리에서 새벽닭에 우니, 동쪽의 산봉우리 부터 동이 터온다는 뜻이다. 이른바 찬샘이 안씨 문중 후손의 번창한 요인이 명혈을 쓴 이후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중의 내력을 주위깊게 살펴보면 명문가의 전통에 깃들어 있는 모든 종친들의 선덕을 엿볼 수 있다. 善자 항렬로 쳐서 16대 조부인 처순씨가 중앙부서의 벼슬을 마다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남원땅으로 낙향했을때 임금의 배려로 구례군의 현감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기묘사화도 피할수 있었다고 한다.

또 善자 후손의 7대조부가 구례로 내려와 지금의 구례군 산동면 찬샘이 안씨 마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필자가 산 정상에 올라 안씨 5대 조모의 묘지를 살펴보니 산도에 제시된바와 같이 혈을 떠 받치는 버팀목(선익사, 연익사, 귀성, 우각사 등)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어, 좌우 청룡과 백호砂가 없는 것을 보완해서 혈을 잘 보필하고 있었다.

그 명혈대지를 간산하고 하산하면서 필자의 발길이 못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왜 전주 이씨가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의 정혼이 들어있는 명혈을 내주었으면서도 유독 묘를 이장하던 날 참석하지 않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마 노령인데다 병을 앓은 후라 기력이 없어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란 추측만 들었다. 이씨의 예언대로 더 정확하고 더 큰 길지를 골라 선영을 모시는 일은 이제 6대손인 안택선씨의 몫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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