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87)=거문도 귤은당

화이트보스 2009. 1. 16. 17:24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 자리한 귤은당. 이 곳은 오늘날 ‘거문도(巨文島)’란 지명이 있게한 조선시대 거유(巨儒) 귤은 김 유 선생의 도학사상을 묻고 있다.

 

 

 

 

 

 

 


 

 

 

 

 

 

 

 

 

 

▲ =귤은 학문에 청나라 장수 탄복 ‘巨文島’라 명명
▲ =西島 출신 70평생 청산재·낙영재서 제자양성
▲ =노사 기정진 수제자…조선시대 성리학통 이어

여수항에서 쾌속선으로 두어시간 포말을 가르다 보면 세 개의 섬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거문도(巨文島)를 만날 수 있다. 이 섬은 예부터 문장가들이 많다하여 ‘거문도(巨文島)’라 했다.

행정 구역상으로 거문도는 여수시 삼산면에 속해있다. 이 섬에는 ‘거문도(巨文島)’라는 지명의 유래를 입증해주는 사당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그 것은 바로 조선시대 거유(巨儒) 귤은 김유(橘隱 金瀏, 1814~1884)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세워놓은 ‘귤은당(橘隱堂)’이다.

‘귤은당’의 주인 귤은 선생은 1814년 동도(거문도는 원래 동도와 서도, 고도로 형성됨)의 유촌리에서 출생한 당대의 큰선비로, 조선조 6대 성리학자로 손꼽혔던 장성의 노사 기정진 선생(1978~1876)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이 섬은 당초 서양에서는 ‘하밀톤’으로, 중국에서는‘거마도(巨磨島)’등으로 불리워졌던 것을, ‘거문도(巨文島)’라고 지명 이름을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귤은 선생이다.

선생이 타계한 1년 뒤인 1885년 영국 함대의 거문도 점거를 계기로 많은 내·외국인들의 섬 출입이 빈번해졌다. 이때 청나라 수군 제독 정여창이 선생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들의 필담에 감탄, 이 섬은 문장가가 많은 곳임으로 삼도(三島)를 클거(巨) 글월문(文) ‘巨文島’로 명명해 줄 것을 조정에 건의, 이때부터 거문도라 부르게 된 것이다.

오늘의 ‘巨文島’를 있게한 귤은 선생, 고려말 경주김씨 상촌(桑村) 선생의 후손으로 중세조때 난(亂)을 피해 이 섬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이 섬에는 귤은 선생과 관련된 옛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다. 조선의 큰 선비를 낳게 했다는 서도(西島) 수월산(水越山) 밑에 높이 30m 가량의 붓 모양을 한 문필암(文筆岩), 등대 곁 80평 가량의 넓다른 신선바위, 그리고 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용이 승천했다는 서도 농냉이 바위에 6m 깊이로 파인 웅덩이 등이 그것들이다.

귤은은 유년시절 노사 기정진 선생에게서 학문을 닦은 뒤 고향에 돌아와 선배인 만해(晩海) 김양록(1806~1885)과 함께 낙영재(樂英齋)를 지어 영재교육에 힘썼고, 완도 청산도에도 서당을 열어 거문도와 청산도에서 제자들을 수없이 길러냈다.

당시 귤은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기위해 영·호남 지방에서 유생들이 이곳 거문도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특히 귤은 선생은 해외 이방인들이 면접을 요청할때 제자들로 하여금 해안에서 서숙(書熟)까지 좌우로 도열케하고, 예(禮)를 갖추어 손님을 대하고 필담(筆談)으로 그들의 머리를 숙이게 했다.

따라서 해외인들도 선생의 예절과 학문의 해박함에 감탄하여 당초 지명이었던 ‘거마도(巨磨島)’를‘巨文島’로 바꿔 부를 정도였으니, 그의 인품이 얼마나 뛰아났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절해낙도(絶海落島)의 청빈한 선비가 해외인들과 학문을 겨루어 지명마저 바꿔 놓은 것은 귤은 선생의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귤은 선생은 거문도 뿐 만 아니라 청산도와 여호도에도 서숙을 열고 제자를 가르치는 등 평생동안 선비다운 기품을 보여줬다. 귤은 선생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날까지도 완도 청산재(靑山齋)에서 제자들에게 강론을 하다가 1884년 7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귤은 선생이 타계하자 이 곳 제자들은 낙영재에서 매년 9월 9일 제례를 지내다가 해방 후 고도에 새로 귤은당을 지어 그의 정신을 기려오고 있다. 낙영재는 1906년 사립 낙영학교로 개편, 서도국민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귤은당의 유물로는 현감존문장(縣監存門狀)을 비롯 순영존문장(巡營存門狀), 영조기증선(英祖寄贈扇), 친필주선(親筆珠選), 해상기문(海上奇聞), 귤은제집(橘隱諸集)등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그림·사진/ 한국화가 장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