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풍수기행

“사태교구의 군왕지지 대명당”

화이트보스 2009. 1. 21. 14:26

[풍수기행]“사태교구의 군왕지지 대명당”

[풍수기행]<48>역대 대통령 생가와 선영(12)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터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남 진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마을을 4회에 걸쳐 방문한 바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 일반인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풍수지리에 얽힌 신비스러움을 밝혀보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세번째는 마을 뒷산의 현무봉 너머에 가히 군왕봉이라 이름 붙여도 손색 없는 생가터의 주산을 거쳐 그 주산의 좌측에 수봉으로 솟아 주산과 쌍벽을 이루는 소조산까지 올라 거기서부터 생가터까지 내룡한 용맥의 행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과정을 밟아보며 용진혈적의 측면에서 생가터의 진혈여부를 파악했다.

네번째 간산은 이번 풍수기행을 쓰기 위해 보다 더 자세한 자료를 수집함과 동시에 풍수지리학적으로 어떤 요인이 대권의 자리에 오르는 에너지로 작용했으며 다른 대통령의 그 것과는 상호 어떤 특징과 대소경중의 근거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던 것이다. 필자는 세번째 봉하마을을 찾아 심룡을 거쳐 이미 노 대통령의 생가터를 풍수지리학적인 여러 관점에 입각해 진혈 여부는 물론 대·소를 분별하는 등 나름대로 객관적인 평가자료를 통해 분석했던 터라 이번 풍수기행을 쓰기 위한 방문은 다른 다섯명의 대통령 생가터와 선영과의 비교 및 특징을 밝히는데 더 큰 의미를 뒀다.

노 대통령이 잉태되고 태어나 중학교 1학년때까지 살았던 이른바 생가터는 산도에서 보듯 마을 오른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3칸의 전형적인 시골집에서 부친 노판석씨와 이순례여사와의 사이에서 1946년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씨는 43세의 늦은 나이에 노 대통령을 잉태했는데 당시 매우 상서로운 꿈을 꿨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백마가 말뚝에 묶여 있었는데 그의 시아버지(노 대통령의 조부)가 말고삐를 며느리에게 쥐어 주면서 타고 가라고해, 말에 올라타자 우렁찬 말 발굽소리를 내면서 높이 뛰어 오르는 꿈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썩 믿기지 않지만 태몽은 태어날 아이의 장래가 매우 크게 될 수 있는 인물임을 미리 예언해주고 꿈에 나타난 조상의 음택이 길지에 자리잡고 있음을 가늠케 해 준다.

필자와 일행은 우선 마을 뒷산인 봉화산이라 불리우는 현무봉에 올랐다.

그런데 마을에서 보이는 뒷산 봉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특립특출한 수려한 산봉이 200여m 뒷쪽 우측에 솟아 있는데 가히 군왕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탐랑성의 수봉이었다.

특히 그 주산을 세우기 위해 기복, 위이, 과협 등의 생황룡이 내룡해 소조산을 드높이 세운뒤에 오른쪽으로 낙맥 결인한 뒤 영송과협을 거쳐 마을 뒷산 봉화산을 세워 놓고 거기서 양 날개를 활짝 펼치 듯 개장(開帳)해 오른쪽으로 백호맥을 만들어 마을을 싸 안고 내려갔다.

왼쪽으로는 청룡맥을 발달시켜 병풍바위를 곁들이면서 내려 흐르고 그 양 날개 가운데서 마치 땅속 깊이에서 뚫고 나오 듯 중출맥이 발달, 낙맥하면서 두 마디 석맥의 취기맥을 이루며 급히 내려 오다 생가터가 가까워지자 서서히 나려 앉은 맥으로 변환한 뒤 60도 꺾어 돌아 생가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눈으로 보이는 형기적인 관점에서 용맥의 겉모습을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이기적 관점에서 측정했을때 비로서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

진혈을 만드는 용맥은 일정한 법칙에 입각해 교도를 이루며 행도했을때 그 뜻을 달성한다 해서 용진혈적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봉화산 뒷쪽 우측에 빼어나게 솟아 있는 군왕봉(필자의 관찰 결과)에서 부터 14절을 좌우로 백환, 위이하거나 상하로 기복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어긋남도 없이 좌선룡의 사태 교구통맥을 이뤄 생가의 집터를 만들었으니 제왕지지의 천하대지가 틀림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 것과도 일치했다.

2002년 1~2차에 걸친 답산때는 생가터를 둘러보고 뒷산 현무봉과 주위의 산세만 먼 발치에서 보고 나서 간산평을 했던 사실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래서 필자는 노 대통령의 생가터를 만들기 위해 줄기차게 내룡한 용맥은 어디서 그 본원이 시작됐고, 어떤 경로를 거쳐 마을까지 이르렀는지 소상히 분석해 나갔다.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인 거창군의 남덕유산에서 발로된 다음 해발 1천m가 넘는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을 타고 산청군과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며 합천군으로 내룡하는 1113.2m의 황매산을 높이 세운다. 이후 매봉, 검무봉이 진양호로 잠룡된 용맥을 따라 진주시의 백운산, 철마산으로 북진하다가 함안읍과 마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여항산, 서북산, 봉화산을 거쳐 창원시의 천주산과 정병산, 응봉산까지 끊임없는 행룡을 거친 뒤 드디어 진해시 진영읍 주산인 271.9m의 금병산을 세운 뒤 대창으로 결인맥을 거쳐 본산과 돌고개를 분지점으로 삼아 한 자락은 조부모산소를 결혈하는 용맥으로 용진처를 만들었다. 그 옆자락은 우측으로 용성천을 따라 들녘으로 빠져 봉하마을의 안산을 짓고, 다른 한자락의 용맥은 돌고개, 대현을 거쳐 생가터의 소조산을 일으켜 세운 다음 우선으로 회두해 주산격인 군왕봉을 수봉으로 응결시킨 뒤에 거기서부터 좌선의 사태교구통맥의 행도를 그리면서 봉화산, 즉 생가터에 온전하게 감돌아 서리게 한다.

이런 주룡의 행도를 확인하지 않고 노 대통령이 중학교 1학년때 이사해서 성장기를 지낸 집터가 더 길지의 취기처로 오인할 뻔 했던 1~2차 간산 경험이 떠 올랐던 것이다.

간산은 몇차례든 정확성이 확인될때까지 시행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용진혈적의 요건이 충족되면 주위의 사(砂·혈처 주위의 산세로 혈을 보필해 주는 역할을 함)는 그에 맞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후룡의 출중한 기상과 수려함은 앞서 기술한 대로 이며 안산과 물이 빠져 나가는 수구쪽의 조산 형세는 군왕지지의 양택이 있음을 입증해 주듯 3봉의 일자문성을 비롯 천마사가 3개 봉에 관모사 등 이른바 국중인물이 태어난다는 귀사(貴砂)들로 병풍을 이뤘다. 그리고 마을 앞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개천은 좌선룡의 주룡과 조화합국을 이루고 생가터 가까이 횡대수를 이루니 빠른 당대발복을 예고한다.

다만 병풍바위가 곁들인 청룡맥이 생가터와 마을을 포옹하지 못한데다 끝내 안산과 어우러져 교쇄를 이루지 못해 수구쪽의 문이 열려 있듯이 공허한 것으로 인해 장손의 잘못됨과 재력이 미치지 못한점이 아쉽다.

생가터의 생기를 받아 극귀의 인물이 배출되어도 그 행로가 순탄치 못하고 우여곡절의 파란만장한 과정과 구비구비를 극복한 연후에야 성공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생가터를 아우르는 좌우 청룡과 안산·조산의 조화로운 국세가 집터로 포근히 감싸지 못한 결점으로 인해 생가터에 서리는 생기가 가끔 흩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산세는 사여미인이다. 그리고 집둘레의 담장이 약간 허술해도 당주가 강하면 잡인의 범접이 어렵다고도 했다. 용이 생기있고 그 교도가 싣고온 지기를 한 곳에 서리어 감돌게하는 용진혈적이 충복되면 그 혈은 제몫을 다한다. 봉하마을 노 대통령의 생가터는 다른 대통령과 비교해도 결코 격이 떨어지지 않는 명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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