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재~건의령~푯대봉~덕항산~큰재~황장산~댓재(하)
고랭지 채소밭 계곡에 옹기종기 정겨운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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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흐른 날씨에다 우거진 수풀로 인해 섬뜩한 기운마저 들었던 구비시령을 지나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 들었다. 이번 오르막에 정상인 ‘덕항산에 서면 멀리 동해바다까지 조망된다’는 백두대간 안내서를 믿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땀이 쉬 흘러내렸지만 깊은 산중에서 만나는 푸른 바다를 생각하니 한결 걷기가 편하다. 게다가 이 구간은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아 이전에 비하면 훨씬 편한 산길이다.
45분쯤 길을 재촉하자 먼저 산불감시 초소가 나타났다. 바로 덕항산 정상이다. 봄 한철 제 할일을 다한 감시초소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바라 볼 수 있다는 동해바다는 볼 수 없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 높은 지열로 연무가 계곡을 가득 메웠다. 아쉬운 마음에 삐걱거리는 초소에 올라 보았지만 역시 바다는 멀리 있었다. 조금은 맥이 빠진 기운을 잠시 추스리고 급경사를 이룬 오른쪽을 조심하면서 15분쯤 산행을 이어가면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하나 더 나타난다. 바로 환선굴 쪽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다.
갈림길을 출발해 40여분쯤 더가면 또 다른 등산로 갈림길에 닿는다.
1천79m봉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깎아지른 절벽이다. 멀리 까마득하게 환선굴을 찾은 버스며 관갱객들이 보이지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아득하다.
조심스럽게 길을 20여분즘 내딛다 보면 환선봉(지각산) 이라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이 구간은 외로운 백두대간 산행에서 환선굴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을 비교적 자주 볼 수 있어 산행의 심심함을 조금은 달랠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다시 10분쯤 가면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 등산로로 2시간쯤 내려서면 환선굴에 닿을수 있다.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며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또 채소밭 계곡에는 옹기종기 정겨운 민가가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잠시 마을로 들어서 시원한 물에 점심을 해결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불쑥 올라오는 유혹을 견디며 배추밭을 지나 등산로로 들어섰다.
고랭지 배추밭은 점심때여서인지 반대편 봉우리의 몇몇을 제외하곤 사람 구경이 힘들었다. 채소밭 사이를 잠시 벗어난 대간 능선은 결국 다시 채소밭으로 돌와왔다. 할수없이 능선을 버리고 대단위로 조성된 채소밭 사이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었다. 한낮의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콘크리트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표지기가 채소밭사이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며 임도에 닿는다. 큰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던 대원들을 결국 아무렇게나 임도 그늘에 주저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늘도 없던 콘크리트길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임도를 5분여 내려서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 억새가 무성한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바로 큰재였다. 코 앞에서 주저앉았다는 생각에 대원들 사이에 허무한 웃음이 잠시 흘렀다.
큰재에서 목적지인 댓재까지는 외길이다. 또 멀리서 보면 큰 봉우리 몇을 넘어야 할것 같지만 막상 능선으로 들어서면 고만고만한 능선들이 어깨를 맞대며 넘어간다.
#그림1중앙#
지친 몸이었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황장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부쩍 힘이 실렸다. 1시간여를 낮은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갑자기 커다란 황장목(黃腸木)이 나타난다. 쭉 뻗은 소나무을 일컫는 황장목은 궁궐을 지을 때 대들보로 쓰거나 왕실의 관재(棺材)로 사용됐다. 얼마전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의 장례에 쓰였던 관도 조선시대 황장목으로 만들어진 왕실의 마지막 관이기도 했다.
황장산을 지나면 사실 이번 구간도 마무리 됐다고 보면 무방하다. 황장산 정상은 황장목은 없고 잡목숲이다. 그나마 그동안 정상으로 여겨지던 봉우리도 GPS를 통해 다시 측정해본 결과 바로 옆 봉우리가 새로운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황장산을 지나 산죽밭을 20여분 내려서면 댓재다. 오후들어 잠시 게으름을 부린탓에 넉넉히 잡았던 예상 산행 시간과 별반 다를바 없는 12시간이 소요됐다. 댓재 고갯마루엔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인근 휴게소에 설치된 수도에서 등목을 했다. 한순간 더위가 가시고 서늘함이 밀려왔다.
한숨을 돌리고 바로본 다음 구간의 두타산과 청옥산이 더욱 당당해 보였다.
강현석 기자 kaja@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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