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백두대간을 가다

[백두대간을 가다]200m 절벽 위 만경봉…“이곳이 仙界련가”

화이트보스 2009. 1. 24. 17:31

[백두대간을 가다]200m 절벽 위 만경봉…“이곳이 仙界련가”

희운각산장∼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로프 잡고‘버둥버둥’…대간길 최대 난코스
산장서 3㎞거리 양각봉 공룡능선 최고 절경
너덜지대 험로 통과해야 비로소 황철봉 도달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바라 본 풍광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동해바다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설악산 대청봉 아래 희운각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남도일보 백두대간 종주팀은 이른 새벽 ‘몸조심하라’는 산장지기의 환송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미시령을 향해 출발했다. 이 구간은 대간길 최악의 코스로 꼽히는 공룡능선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종주팀은 채비를 꼼꼼히 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혼선이다. 대청봉과 공룡능선이 갈리고 비선대로 내려가는 세갈래 길이 갈리는 무너미고개에서 한참을 헤맸다. 어렵게 발견한 작은 경고판이 공룡능선길을 알려준다. 출발부터 종주팀을 바짝 긴장케 만든다.

가파른 비탈길의 연속이다. 로프를 잡고 바동거리며 기어오르니 암봉이 반긴다. 30분만에 오른 신선봉, 천화대와 범봉, 1천275m 양각봉과 나한봉으로 이어진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공룡능선의 절경에 빠진 건지 아니면 뾰족한 암봉들에 겁이 질린 건지. 동 틀 무렵 암봉들 사이로 펼쳐지는 음영의 신비로움은 대원들 입에서 감탄사를 저절로 내뱉게 만든다.

“선계가 여기련가!”

#그림1중앙#

절벽을 오르는 대간길 곳곳에는 로프가 설치돼 산행을 돕고 있다.

오르락내리락 기암들과 숨바꼭질을 한다. 수시로 만나는 기암절경에 탄성을 질러대지만 아득한 절벽 앞에서는 기가 질린다. 숨을 헐떡이며 기어오르지만 경치에 취한 입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탄사가 절로 이어질 뿐이다.

그러기를 여러번. 갑자기 길이 보이질 않는다. 높이가 200m는 족히 됨직한 아찔한 절벽을 앞에 두고 종주팀은 또한번 혼란에 빠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관찰한 결과 저 멀리 절벽 중턱에 노란 표지리본이 보이는 듯하다. 얼음이 번들거리는 수직절벽을 조심스럽게 오르기 시작했다. 아찔하다. 숨이 턱을 차오른다. 그러기를 20여분. 양각봉 정산이다. 공룡능선의 중심부다. 산은 힘들게 올라온 만큼의 대가를 충분히 지불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희운각산장에서 3㎞거리의 양각봉은 공룡능선 최고의 절경이다.

뾰족탑 같은 바위산을 수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산장에서 출발한 지 3시간20분만에 나한봉에 도착했다. 뒤돌아보니 대청과 중청, 소청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한봉은 공룡능선이 마무리되는 부분이다.

나한봉을 지나면서부터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산장을 출발한 지 4시간. 마등령(1천240m)에 도착한 종주팀은 때늦은 아침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했다. 분지형태인 마등령에는 대간돌이들의 비박(bivouac·텐트 없이 밤을 지새우는 것)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전에는 이곳에 간이휴게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비선대다. 그러나 종주팀은 마등령 정상 공터에 세워져 있는 출입금지 표지판 뒤의 산길로 접어든다.

대간꾼들 만이 도둑 산행을 하는 길이라 이정표도 없다. 오로지 선답자들이 달아 놓은 리본에 의존해 걸어야 한다.

마등령에서 미시령에 이르는 구간은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백두대간 순례자들에게는 편의를 봐준다는 소문이 있다.

#그림2중앙#

1천326.7m봉을 지난다. 길이 험해지기 시작한다. 크고작은 바위들이 떨어져 내려 쌓여 있는 너덜지대가 계속 나타난다. 까딱 잘못하면 발목을 다치기 십상이다. 또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수도 없이 반복돼 지루하면서도 몹시 힘이 든다.

저항령이 바로 밑에 내려다 보이는 암봉에 올라선다. 전망이 매우 좋다. 등상로가 이 암봉의 정상을 넘어서 저항령으로 내려가게 돼 있다.

저항령을 떠나 황철봉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중턱에서부터 가파른 바위너덜지대를 만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야만 했다. 너덜지대를 통과해 황철봉 바로 못 미친 곳에 있는 암봉에 오른다. 이 암봉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이제부터 너덜지대 진수를 만끽하는 차례다. 너덜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선답자들이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방향삼아 후들거리는 풀린 다리를 조심조심 한발 한발 내려선다. 발바닥에선 불이 나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백두대간에 정나미가 완전히 떨어지는 곳이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너덜지대가 끝나는 곳. 황량한 돌무더기 끝. 나뭇가지에 걸린 오색의 리본들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숲길로 접어든다. 발밑에 느껴지는 포근한 감촉과 싱그러운 풀냄새. 다왔다는 안도감. 그러나 숲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미시령은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는다.

인제군과 양양군, 그리고 고성군의 경계가 되는 산봉우리에 올라선다. 여기서 1천92m봉을 지나 울산바위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길은 이제 평지거나 내리막길이다. 한동안 잡목숲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키작은 잡목과 풀들이 자라고 있는 구릉지대가 나타나면서 저 앞에 미시령 휴게소가 보인다.

미시령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고개다.

이제 남한지역만의 반쪽 백두대간 산행도 서서히 작별을 고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지막 한구간만이 남았을 뿐이다.


사진/신광호 기자 sgh@namdonews.com


박영래 기자 young@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