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스크랩] “아! 고구려, 그리고 압록강” (상)

화이트보스 2009. 1. 27. 19:09
“아! 고구려, 그리고 압록강”
-고구려의 발상지 오녀산성
-중국동북의 중심도시 심양
-세계최대의 동굴 본개수동


고구려의 발상지 오녀산성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성벽 수도라는 것이 불가사이하며 중국에서는 유일하게 팔괘성으로 구성, 중국 유적이 아닌 고구려 유적임을 증명해주고 있다./기경범 기자 kgb@
압록강을 돌아보니 아, 바로 앞에 펼쳐진 북한 산하를 가지 못하니 어찌 하리….
남도일보 고구려 유적탐사단이 2박3일간의 짧은 일정동안 우리 역사상 가장 힘찬 기상과 패기가 넘쳤던 고구려의 발상지 오년산산성을 둘러봤다. 광활한 영토 확장의 대명사격인 광개토대왕릉과 광개토대왕비, 그리고 장수왕릉 등은 한민족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가슴 뭉클함이 느껴졌다. 압록강변에선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광주공항에서 심양, 본계, 환인, 집안, 심양, 다시 광주였다.
중국 동북 중심도시 심양 시가지

광주공항에서 직항선을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요녕성 심양.
중국 동북의 중심도시로 지형적으로 백두산에서 뻗은 용상의 산맥이 흘러 용의 꼬리 부분에 속하는 곳이다. 승천을 하는 용문 터로 혼화강(삼수강)이 휘둘러 흐르는 양지바른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 후금(청나라)의 시조 누루하치가 태어난 곳이며 청나라 첫 수도이며 만주족의 주 무대였다. 지금도 청나라 초기 수도로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5대 도시답게 550만 인구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주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16명밖에 되지 않아 역사상 단 한 번 중국을 지배했던 청나라 문화의 역사 고증을 제대로 하지 못해 머지 않아 잊혀진 역사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과거 한민족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고구려의 숨결이 이곳 심양에서 꿈틀거림을 느끼며 그래도 우리 민족은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독창적인 언어가 있다는 것에 새삼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잊혀지는 만주족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 민족의 역사인 고구려의 옛 영화를 되찾아야겠다는 애국심(?)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솟구침을 느낄 수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심양에 도착한 첫 날은 도심을 휘돌며 도시 풍경과 현지인들의 삶을 느끼고파서 드라이브를 즐겼다.
도심 여기저기에 수풀이 우거진 공원은 맑은 공기를 공급해 상쾌함을 여정에 지친 몸을 상쾌하게 해줬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실개천과 그 고수부지에 자리를 잡은 골프장, 그리고 도시를 활보하는 자전거 탄 풍경들. 아름다운 도시 자태가 그대로 묻어났다. 다만 도심속 거대한 모택동 동상은 여기가 고구려의 옛 영토가 아닌 중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잡고 있구나 하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여장을 챙겨 고구려 발상지 오녀산산성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속도로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수수밭길을 따라 본계시까지 2시간여를 내달렸다.
이곳에서 쌀농사 보다는 옥수수 농사가 이익이 많단다. 옥수수는 고량주, 빵재료, 가공식품, 기름, 사료로 쓰이고, 옥수수 대는 땔감과 건축용 재료 및 공업 제품을 만드는데 쓰기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400∼500만년전에 형성된 세계최대동굴 본개수동.

400만~500만년 전에 형성됐다는 세계 최대 동굴을 둘러본 후 다시 오녀산산성을 향해 4시간여를 달렸다.
본계시까지는 고속도로여서 비교적 편안하게 이동했지만 여기서 오녀산산성까지는 도로 굴곡이 심하고 흠집이 많이 난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일부 비포장 도로까지 털털거리면서 달려 여행의 피곤함을 더했다. 오죽했으면 ‘벌떡도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는 도중 의자에서 몸이 벌떡벌떡 일어나 피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고생해 도착한 곳은 고주몽이 고구려의 첫 수도로 세운 환인(졸본성).
흔히 고구려의 수도를 오녀산성이라고 하는데 이 산성은 환인에 위치해 있다.
한국의 동대문시장과 같은 심양 오일시장.

오녀산의 오녀산성을 고구려 수도라고 하지만 이곳은 졸본국의 수도이며 고구려 제2의 행성이다. 고구려는 항상 두 개의 도성을 가졌는데 도성 안에 도성을 가지고 있었다. 환도 산성은 국내성 안에 있었으나 오녀산성은 환인성 밖 오녀산에 있었다.
오녀산성은 5명의 신녀가 살았다고 해서 오녀성이라고 불렀다.
870m의 기암절벽의 산상에 가로 1천500m, 세로 300m의 광활한 평지가 형성돼 있다. 이 성에 오르려면 버스로 20분을 올라 해발 500m에서 무려 999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정상적인 성인들도 숨을 헐떡일 수 밖에 없을 만큼 험준하다. 난을 피해 임시로 거주한 수도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자유로워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녀산성은 세계에서 유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성벽 수도라는 것이 불가사이하며 중국에서는 유일하게 팔괘성으로 구성, 중국 유적이 아닌 고구려 유적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오녀산성 가기전 비포장 공사중인 도로

999개 계단을 올라 정상부에서 만나게 되는 문이 서문이다. 서문은 폭이 3m로 방어를 위한 옹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바닥에는 계단과 주춧돌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러한 유적은 주몽 시기에 만든 것이 아니고 후대 왕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에서 오른쪽으로 남문쪽을 향하다 보면 처음 만나는 것이 ‘1호 대형 건축기지’이다. 가로 13.5m, 세로 5m의 6칸짜리 건물로 발굴 당시 고구려 초기 도자기 등 그릇이 발견되어 고구려 초기 왕궁터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태극정에 이른다.
태극정은 일종의 전망대로 동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혼강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은 안개가 끼어 조망이 좋지 않았다. 뿌연 안개 속에서 혼강이 모습을 잠시 드러내고, 오녀산성 역시 안개와 함께 환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출처 : 기경범의 사진, 여행 이야기
글쓴이 : 기경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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